'JAZZ'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08.11.19 [music] "St. Thomas" - by Sonny Rollins (1956) (3)
  2. 2008.11.05 [music] "Tea for two" - by Art Tatum (1933) (2)
  3. 2008.07.12 [music] Billie Holiday, "Fine and mellow" (1957) (2)
  4. 2008.06.19 Chuck Colson on Duke Ellington - "A jazz genius" (4/1999)
  5. 2008.06.19 [music] Duke Ellington, "Take the 'A' train" (1956)
  6. 2008.06.11 나는 왜 재즈를 좋아하는가?
  7. 2008.05.23 Clifford Brown - a jazz musician most respected & loved by fellow musicians
  8. 2008.05.16 'All-time greatest' 재즈 앨범 Top 10
  9. 2008.05.06 Coltrane on Coltrane - A Down Beat article (9/1960)
  10. 2008.05.06 초심자를 위한 재즈 음반 10선 (2)
  11. 2008.05.05 가장 위대한 재즈 앨범? (1)
2008.11.19 00:05

[music] "St. Thomas" - by Sonny Rollins (1956)

소니 롤린스는 5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도록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는 최장수 재즈 뮤지션의 한명이다. 지난 여름에도 80을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로 이곳 베이지역에 와서 연주를 하고갔다. 
 
오랜 커리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중반에 이르는 10년 동안의 연주들이 워낙 찬사를 독점하다보니 이후의 시기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같은 기간 동안 테너 섹소폰 계를 양분하다시피한 존 콜트레인이 끊임없는 변신을 이루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던 것을 고려할 때, 그의 경우는 일찌감치 창작력의 탄약이 고갈되어 조로 현상을 나타낸 것처럼 비교되기도 하였다.  

콜트레인의 경우는 사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100미터 달리기' 식의 스타일을 보인 커리어였다. 하드밥에서 모드음악으로, 아방가르드에서 발라드와 다시 프리재즈로, 2~3년 사이마다 그의 음악 스타일은 그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10년 동안 활동한 것 치고는 실로 수많은 음반(또는 음원)을 남겼다. 후대의 팬들과 음악인들은 이러한 그의 구도자적인 dedication에 아낌없는 존경을 보냈지만, 40세에 때이른 죽음을 맞이한 것에는 사실 과로사의 의미도 적지않았다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이에 반해, 롤린스의 경우는 철저한 '마라톤' 스타일이었다. 그는 연주와 창작활동을 하다가 영감이 고갈되면 몇년 동안 잠적했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는 일을 반복했다. 그의 길디 긴 커리어는 그러한 재충전이 없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콜트레인이 '짧고 굵게' 살다 갔다면 롤린스는 상대적으로 '가늘고 길게' 살았다고나 할까? 아뭏든, 한 시대를 상징한 두 사람은 이렇듯 다른 두 가지 삶의 방식의 강렬한 대조를 보여준다. 

"St. Thomas"는 1956년 앨범 "Saxophone Colossus"에 실린 그의 대표곡이자 카리브해의 칼립소 리듬을 도입해서 하드밥으로 소화한 명곡으로 유명하다. 색소폰도 훌륭하지만, 그의 단짝이자 당대 대표 드러머의 한 사람이었던 맥스 로취가 마치 정교한 붓으로 수채화를 그리듯 만들어내는 드럼의 조형미 또한 대등한 솔로 악기로서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그들의 젊은날이 함께 빚어낸 욱일승천하는 듯한 창작력의 기개는 50년의 세월을 넘어 동일한 신선함을 전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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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5 06:36

[music] "Tea for two" - by Art Tatum (1933)

Art Tatum은 미국 재즈 음악의 비교적 초창기인 30 년대에 등장하여 클래식, 스트라이드, 스윙, 부기우기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을 선보인 아티스트이다.

빠른 손놀림과 정확한 박자 감각, 그리고 동일한 곡이지만 코드 진행의 변화를 주어 독특한 느낌을 주는 방식의 화성 응용법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40 년대 비밥/모던재즈 혁명의 주역들에게도 큰 영감이 되었다. 그의 영향력은 특별히 아티스트들에게 더욱 커서, 모던 재즈의 꽃이 만개한 50 년대 중반에 한 잡지사에서 현역 재즈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재즈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하고 설문을 하였을 때 2/3가 그의 이름을 언급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창조적 음악성과 실력은 클래식 음악의 대가들에게도 정평이 나있어서, 토스카니니, 호로비츠, 루빈스타인 등 당시 뉴욕에 살았던 음악가들도 그가 연주하는 클럽을 즐겨찾곤 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에 대하여, 재즈 음악 씬에서 그 자신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인 오스카 피터슨, 데이브 브루벡, 테디 윌슨이 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자 (from wikipedia):  
   
 오스카 피터슨 - "If you speak of pianists, the most complete pianist that we have known and possibly will know, from what I’ve heard to date, is Art Tatum."

 데이브 브루벡 - "I don't think there's any more chance of another Tatum turning up than another Mozart."

 테디 윌슨 - "You get all the finest jazz pianists in the world and let them play in the presence of Art Tatum. Then let Art Tatum play ... everyone there will sound like an amateur."

그는 흑인으로 거의 눈이 실명된 상태에서 태어났으며, 거의 독학으로 피아노를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장로 부부인 부모 밑에서 어릴 때부터 교회 음악을 접하며 자라난 것이, 척박한 조건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정신적인 힘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아마도 남보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세워나갔기에 거꾸로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할 수 있었을 것이다.

"Tea for two"는 1933 년에 녹음한 그의 첫 데뷔 녹음 4 곡의 하나로, 당시 잘 알려진 곡을 그의 스타일대로 jazzy하면서도 classical한 멋이 풍기도록 편곡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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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2 14:02

[music] Billie Holiday, "Fine and mellow" (1957)



빌리 할리데이는 참으로 드라마틱한 삶을 산 재즈 보컬리스트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엄마는 불과 열세 살의 '철부지' 소녀였고, 그의 아빠는 몇 년 동안의 동거기간 후에 곧 가족들을 떠나는 "무책임한" 열여섯 살 십대 소년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할렘에서 엄마와 함께 먹고살기에 급급한 하루하루를 살면서 마약, 매춘, 폭행, 감옥생활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가수로서 성공하고난 후에도 남편(들)로부터의 abuse와 마약중독에 시달리곤 했다. 아마도 1920~30 년대의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 여성으로 살았던 많은 이들이 그와 비슷한 연약함과 고단함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Fine and mellow"는 질곡의 삶을 살았던 그가 남긴 몇 안되는 자작곡의 하나로, 그 자신의 삶을 전통적 블루스-재즈의 틀 안에 있는 그대로 담아낸 투명한 자전적 고백이다. 여기에선 그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쏟아내는 사랑받고픈 자의 목마름과 좌절감이 삶의 육성으로 묻어나온다.  

 "My man don't love me, he treats me, oh, so mean...
  But when he starts in to love me, he's so fine and mellow."

 "Love will make you drink and gamble, make you stay out all night long.
  Love will make you do things that you know is wrong."

 "Treat me right, baby, and I'll stay home everyday..
  But you're so mean to me, baby, I know you're gonna drive me away."

 "Love is just like the faucet. It turns off and on.
  Sometimes when you think it's on, baby, it has turned off and gone."

건강 악화로 1959년 44세의 나이에 노환에 가까운 건강 상태로 생을 마감한 그의 '50 년대 performance에는 많은 이들의 호불호가 엇갈린다. 한창 때와는 크게 비교될 정도로 피폐해진 목소리와 기력 때문에 '40 년대 결과물들에 비해 음악적으로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메마르고 연약한 목소리를 상쇄하는 더욱 풍성해진 표현력과 empathy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생의 매 시점마다 '그 자신'이었다는 면에서 모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 이 곡은 전통적인 '12-bar 블루스'(열두 마디가 한 코러스를 이루어 기본단위를 구성하는 형태의 블루스)의 형식과 내용적 틀에 충실한 곡으로, 여기서의 연주는 각각의 연주자들이 기본적으로 한 코러스(i.e. 12 마디)씩을 담당하는 형태로 반복된다.

 A1  /  B1 - B2
 A2  /  B3 - B4
 A3  /  B5 - B6
 B6'  /  A4 - A4'

(A는 빌리 할리데이가 담당하는 보컬 파트를, B는 각 솔로악기를 맡은 연주자들의 즉흥연주를 가리킨다.)
 
 B1 -  Ben Webster (tenor saxophone)
 B2 -  Lester Young (tenor saxophone)
 B3 -  Dick Dickenson (trombone)
 B4 -  Gerry Mulligan (baritone saxophone)
 B5 -  Coleman Hawkins (tenor saxophone)
 B6 & B6' -  Roy Eldridge (trumpet)  <-- 아마도 노장을 우대한 듯...

이 비디오 클립은 CBS의 1957년도 TV 기획물인 "The Sound of Jazz" 프로그램에 실린 한 부분으로,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드문 라이브 재즈 영상물들 가운데서 첫 손에 꼽히는 '보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연주자 한명 한명은 재즈의 역사를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가들로, 그들의 이름을 듣고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낄 재즈 애호가들이 많을 것이다.

듀크 엘링턴 밴드와 카운트 베이시 밴드에서 활약했던 소위 '3대(?) 색소폰 거장' 벤 웹스터, 레스터 영, 콜맨 호킨스와 '쿨 재즈'의 선봉장 제리 멀리건, 스윙 시대의 대표 주자라고 할만한 트럼펫의 로이 엘드릿지와 드럼의 조 존스... 올 스타를 모아놓았다고 해서 그 결과도 꼭 최고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 연주의 경우는 올 스타가 모여 만들어낸 명연주라는 면에서 어쩌면 흔치않은 예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여기에 나오는 빌리 할리데이와 레스터 영은, 같은 해에 생을 마감한 그들이 죽기 2년 전의 모습들로,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이 하나의 기록만으로도 후세에 훌륭한 재즈 뮤지션으로 기억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백조의 노래'를 선보이고 있다. (이 둘은 당시 서있기 힘든 건강상태 때문에 앉아서 연주하도록 배려되었다.)  빌리의 보컬은 다른 악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당한 하나의 '악기'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모두의 즉흥 연주가 탁월한 가운데에서마저도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레스터 영의 연주는(두 번째 솔로) 어떤 한 평론가의 다소 열광적인 표현에 따르면 "한 번만 들어도 DNA에 새겨지듯 기억되는" 명연주이다. (And he adds, "Lester Young stole the whole show with that 38 seconds!" - Ken Burns documentary "Jazz")  20 년간이나 함께 연주해온 레스터로부터 지금 막 펼쳐지고 있는 이 연주가 어떤 의미인지를 빌리는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기쁘게 반응하는 그의 얼굴을 이 비디오에서 볼 수 있는 점도 잔잔한 감흥을 주는 대목이다.    

인생의 무게가 실린 음악...
화려하고 상업적인 음악의 홍수 속에서 한 잔의 '마실 물'을 찾기란 요원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시대이기에, 자신들의 삶의 질곡과 고난의 한 가운데에서 물에 빠진 이가 지푸라기를 붙잡듯 붙잡은 결과물이었던 '그들의' 음악은 흑백 영상에 담긴 빈약한 사운드이건만 오늘날에도 시공을 초월한 어떤 메세지들을 더욱 힘있게 전달해준다.

흔히 재즈는 '자유'의 음악이라고들 한다. 
그들은 struggle하였고, 자유로운 영혼을 노래하고자 하였으며, 그래서 때로 '음악'이라는 이름의 '진주조개'를 잉태하기도 하였지만, 과연 한 '인생'으로서 그토록 갈망하던 참 자유와 참 사랑을 끝내 맛보았을까? 그런 생각에 더욱 인간적이고 마음이 울릴 수 밖에 없는 '삶의 testament'로서의 그들의 음악..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솔직하였고 치열하였기에, 그들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 만들어낸 이 '흑인 음악'은 인간사의 한 위대한 다큐먼트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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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9 23:33

Chuck Colson on Duke Ellington - "A jazz genius" (4/1999)

A JAZZ GENIUS
The Music of Duke Ellington

By Chuck Colson
4/29/1999

Today marks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birth of Duke Ellington, one of the giants of twentieth century music. Few would contest the claim that Ellington contributed more to the development of jazz music than anyone else who ever lived. But there is one thing about him that is not widely known: his abiding Christian faith.

Ellington was raised in a deeply Christian home. Every Sunday his mother took him to at least two church services, and she frequently told her son that he was blessed and that God would take care of him. The Duke never forgot those early lessons.

As a young man, Ellington immersed himself in the Scriptures. A friend from Ellington's early days in Washington, D.C., recalled how the musician would often come home after a performance and read the Bible while taking a bath, and continue reading until the water turned cold. Ellington was meticulous about saying grace before meals, and he once wrote that "the greatest thing one man can do for another man is to pray for him."

During his middle years Ellington was not exactly a model Christian. He was thought to be somewhat of a womanizer, and he didn't attend church regularly. But according to biographer James Lincoln Collier, "there can be no questioning the sincerity of his religious feelings."

It was in 1965 that Ellington made his deep faith public. That year he was commissioned to do a liturgical composition for the inauguration of San Francisco's Grace Cathedral. This work, the first of three sacred concerts, signaled a permanent change for Ellington.

"This music," he declared,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ve ever done or am ever likely to do. This is personal, not career. Now I can say openly what I have been saying on my knees."

The centerpiece of this concert from Duke Ellington: A Concert of Sacred Music from Grace Cathedral is a 15-minute piece entitled "In the Beginning God." There was also an a cappella version of the Lord's Prayer, and the closing number, featuring famous tap dancer Bunny Briggs, is called "David Danced Before the Lord with All His Might."

From then on Ellington saw himself as "God's messenger," and he dedicated his last years to serving God through his music, writing three sacred concerts before his death in 1974.

The reception to these works was mixed. Some religious people thought jazz inappropriate for praising God. And many jazz musicians thought praising God inappropriate for Duke Ellington.

When people complained that Ellington's third sacred concert was taking too long to complete, Ellington defended his meticulousness, saying "You can jive with secular music, but you can't jive with the Almighty."

Ellington joins other musical giants like Bach and Mendelssohn as geniuses who sought to serve God through their music. Music historians rarely mention Ellington's faith but you and I ought to reclaim cultural heroes like Duke Ellington and proclaim the truth about his beliefs.

Why not celebrate the Duke's birthday today by purchasing his sacred concerts. Listen to them with an unsaved friend who likes jazz. After all, God has never been praised in quite the same way... before or since.


Copyright (c) 1999 Prison Fellowship Ministries (http://www.breakpoin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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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9 02:59

[music] Duke Ellington, "Take the 'A' train" (1956)

그 유명한 듀크 엘링턴의 "Take the 'A' train".
56년 Newport 재즈 페스티발에서의 실황 연주이다.
충분히 흥겹고, 음악적으로 세련미가 있으며, 라이브 연주의 분위기도 한껏 살아난 스윙재즈의 명곡이다.

그가 작곡하여 연주한 곡이 천 곡이 넘을 정도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지난 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대표 작곡가의 한 사람이었지만, 막상 그 자신의 signature tune으로 알려진 이 곡은 그와 평생을 같이하며 음악적 파트너쉽의 롤 모델을 함께 세웠던 빌리 스트레이혼의 작품이다.
경제 공황의 여파와 세계대전으로 인해 고단해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제시하고자 했던 시대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작곡되었고, 낙관주의가 흐르고 있던 50년대 미국의 컨텍스트 가운데서 연주되었다.

음질과 스타일의 한계를 넘어 '음악의 에센스'에 귀기울여보면 누구든 쉽게 매력을 발견할 만한 accessibility가 있다.


cf. 'A' 라인은 할렘으로 들어가는, 당시에 신설된 뉴욕 지하철 노선이다. 한편, 할렘에는 오랜 기간 동안 그의 빅밴드와 함께 정기적으로 연주했던 카튼클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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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1 14:09

나는 왜 재즈를 좋아하는가?

1. 흑인들의 삶의 무게가 실린 음악이다.
- 억압받고 고단하고 가난했던 흑인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있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정서가 절대자를 바라보게 하는 마음과 결합되어 나온 가스펠을 기반으로 하여, 블루스와 재즈가 발전되었다. (블루스 또한 재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재즈에서 관악기들이 주류를 이루는 이유도 뉴올리언스에 해군기지가 폐쇄되면서 버려진 군악대 악기를 흑인들이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즈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50~60년대에 녹음된 Prestige, Blue Note 레이블의 명반들 대부분이 그저 불러주는 곳으로 달려가는 세션맨들이 한두 번 정도의 리허설만 허락받은 상황에서 만들어낸 것들일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는 사람의 역량에 의존하는 의존도가 클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표현하는 음악에도 그래야만 하는 어떤 필연적인 이유들이 담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만큼 가식적이지 않은 인간의 솔직담백한 아우성과 풋내가 묻어나는 진솔한 음악이기가 쉬웠다. (그런 면에서, 재즈의 현대적 이미지가 중산층 이상이 즐기는 칵테일바/와인바 분위기의 음악으로 자리잡히게 된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다.)

2. 함께하는 음악이다. 
- 재즈는 아주 드물게 독주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앙상블 음악이다. '상호 의존적'인 즉흥 음악인 만큼 밴드의 모든 구성원들이 거의 '동등하게' 중요하며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강한 신뢰'를 가져야 마음놓고 즉흥 연주를 펼쳐가는 것이 가능했다. 솔로도 돌아가면서 하고, 팝이나 록 등 다른 장르에 비해 베이스, 드럼 주자도 밴드의 리더가 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유명한 밴드 리더들 가운데, 아트 블레이키와 맥스 로취는 드럼 주자, 찰스 밍거스와 데이브 홀랜드는 베이스 주자들이다. Serving하는 악기/연주자와 served되는 악기/연주자가 따로 존재하는 음악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마일스 데이비스의 제 2기 quintet의 경우, '리드악기'(관악기) 주자들은 같은 음만 계속 연주하면서 철저히 곡의 백업을 맡고, 통상적으로 '리듬악기'인 베이스와 드럼이 곡의 진행과 솔로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 식의 신자유주의적 경향으로부터 가장 역행하는 음악 장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소편성 밴드를 중심으로한 50~60년대 류의 재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인간 의식을 반영한 음악이다.
- 왕년의 소프라노 색소폰 주자 시드니 베셋에 의하면, 즉흥연주는 흑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감정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백인성을 탈피해서 흑인성의 존엄함을 음악적으로 실현하고자 한 노력이 발견된 방식과 예는 허다하다. 백인 구매자들이 좋아하는 멜로디와 춤곡 위주의 상업적인 음악에 반발하여 예술성을 추구하고 화음과 박자를 세분화하여 그 변형의 지경을 끌어올린 것(찰리 파커의 bebop), 아프리카의 poly-rhythmic 패턴으로 백인/서구의 리듬 구조의 틀을 벗어나고자 한 것(아트 블레이키의 hard bop), 모드를 사용하여 백인/서구의 화성 구조의 틀을 벗어나고자 한 것(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연주자의 즉흥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박자와 화성의 제한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탈피하고자 한 것(오넷 콜맨 등의 free jazz), 존 콜트레인이 상투적인 스탠다드 멜로디들을 해체하여 재구축하고 구도자적인 예술성을 추구했던 것("Giant steps," "My favorite things," "A love supreme"), 등... (이런 면에선, 현대에 유행하는 smooth jazz류의 음악들은 상대적으로 거의 '아무생각 없는' 음악인 것처럼 들린다...)  흔히 재즈의 코드는 '자유'라고들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 '자유 실험'이 어떻게 성공하였고 어디서 왜 한계에 봉착하거나 실패하였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음악에의 적용뿐만 아니라 인간의 추구와 반응과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삶의 모습에 관해서도 많은 insight을 제공한다.    

4. 열린 음악이다.
- 재즈의 본질은 애초의 태동기 때부터 퓨전이었다. 아프로-아메리칸의 리듬감과 웨스턴 음악의 화성적 틀이 결합하여 근간을 이룬 음악으로 발전한 것이다. 초기 발전 과정에서 흑인과 유럽/프랑스인의 혼혈인 크레올(예: 듀크 엘링턴)들이 이 음악을 주도한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즈는 이미 이룬 것에 타협하지 않고 'Next!'를 추구하는 뮤지션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형 및 발전을 이루어왔으며, 다른 장르로부터의 학습 또는 다른 장르와의 결합이 그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드뷔시 등 인상파 음악가들이나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등 현대음악가들뿐만 아니라, 쿠바, 브라질, 인도, 동구 유렵의 음악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90 년대 이후 음악계의 특징 중 하나로 나타난 '월드 뮤직'의 전형을 모드 음악, 보사노바 등의 형태로 수십 년 전에 이미 제시하였다. 이는, 미국 문화의 두드러진 특성이자 그들이 지난 세기 끊임없이 생동감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던 면들과도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면에 관해서도, 재즈를 가리켜 "the American music"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당히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5. 나름대로 예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음악이다.
-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뮤지션들이 화성의 한계를 추구하고 리듬의 한계를 추구하였으며 지속적으로 실험하였고 음악에 헌신했다. (그렇기에 클래식을 이해하려면 작곡가들을 짚어가야 하고, 재즈를 이해하려면 연주자들을 짚어가야 한다.) 자기 장르 안에서 음악적 한계치에 이르도록 예술성을 추구한 음악의 예는 사실 그리 많지는 않다. 이것이 내가 그 큰 스타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클래식과 재즈를 동시에 좋아하는 이유이다. 사실 이 두 음악에 헌신했던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영역에 깊은 관심을 보인 이가 많았다. 쿨 재즈나 빌 에반스 식의 피아노 트리오는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깊이 받은 것이다. 한편, 스트라빈스키나 바르톡같은 이는 재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당대의 지휘자 토스카니니, 피아니스트 호로비츠 등이 살고있던 뉴욕은 또한 재즈의 본거지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할렘에서 태어난 가난한 맹인으로서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워 자기 스타일의 음악을 개척한 아트 테이텀 같은 이가 연주하는 클럽을 즐겨찾고 칭송한 팬들로도 알려져있다. 그러나, 자유와 음악성을 추구하고 그 스트레스로 인한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많은 뮤지션들이 마약중독에 빠지거나 자신을 망친 사례가 적지않았던 것은 또한 인간의 가능성에 수반하는 한계성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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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3 15:32

Clifford Brown - a jazz musician most respected & loved by fellow musicians

From CLIFFORD BROWN JAZZ FOUNDATION


"Here are a few quotes from friends, historians and loved ones
compiled from books and liner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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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Rue Brown Watson

Liner notes, The Complete Blue Note and Pacific Jazz Recordings of Clifford Brown (Mosaic Records) 
 

"When I met Clifford, I was a music snob. I was writing my thesis in which I was trying to prove that jazz was not a form of art. Clifford and I debated the subject often. Can you believe I actually told Clifford Brown that he could not play? I even strongly recommended that he stick to ballads and the Raphael Mendez songs that he used to practice breathing and fingering. Clifford was patient with me but stuck to his belief in the music. In order to break the stalemate, I decided to take him to visit my music (classical of course) teacher. I was sure he could convince Clifford that the fast paced, dissonant racket was not music. When my teacher answered the door, he said, "Is this who I think it is?" He hugged Clifford and took him inside. I was left standing on the porch...crushed!! When I went inside, I asked my teacher if he knew of Clifford and what he thought of his playing. His answer was "This man is a musical genius! You don't understand the complexity of this music. Your music is formal, structured, this music is pure soul, free flowing." In a state of total disbelief, I started to really listen to the music. I asked Clifford questions and finally I was able to hear MUSIC. I also discovered that when Max Roach said Cliff was beautiful, he was not  referring to physical beauty. He had recognized the beauty that dwelled within and exuded from him.

 

"Another shocker happened during the time Clifford was educating me. We found that we not only respected each other and shared a valuable friendship, we were also in love.


One starlit evening we went to Santa Monica Beach. Clifford was playing with the sounds of the Pacific Ocean accompanying him. The music was lovely! The tune was one that he had just written and I was hearing for the first time. He called it "LaRue". He asked me to marry his music and him."

 

Leonard Feather

Liner notes, Memorial Album (Blue Note BST 81526)
 

"Clifford was born Oct. 30, 1930, in Wilmington, Del., he received his first trumpet from his father upon entering senior high school in 1945, and joined the school band shortly afterward. It was not until a year or so later that the mysterious world of jazz chord changes and improvisation began to shed its veil for Brownie. A talented musician and jazz enthusiast named Robert Lowery was credited by Brownie for the unveiling.

 

"The teen-aged trumpeter began playing gigs in Philadelphia after in graduating in 1948. That same year, he entered Delaware State College on a music scholarship, but there was one slight snag; the college happened to be momentarily short of a music department.

 

"Brownie remained there a year anyway, majoring in mathematics, and taking up a little spare time by playing some Philadelphia dates with such preeminent bop figures as Kenny Dorham, Max Roach, J. J. Johnson and Fats Navarro. He acquired considerable inspiration and encouragement from Navarro., who was greatly impressed by the youngster's potential.

 

"After the year at Delaware State, Brownie had a chance to enter a college that did boast a good music program, namely Maryland State. They also had a good 16-piece band, and he learned a lot about both playing and arranging. One evil evening in June 1950, when, on his way home from a gig, he was involved in the first of three automobile accidents, the last of which was to prove fatal.

 

"For a whole year in 1950-51, Clifford Brown had plenty of opportunity for contemplation, but precious little for improving his lip. It took just about a year, plus some verbal encouragement from Dizzy Gillespie, to set him back on the path from which he had been so rudely sideswiped.

 

"He had his own group in Philly for a while, then joined the Chris Powell combo, with which he was working at Cafe Society when the [6/9/53] date with Lou Donaldson was cut. There followed a stint with Tadd Dameron in Atlantic City, after which he joined Lionel Hampton, touring Europe with him until the fall of 1953. In 1954 Brownie won the Down Beat critics' poll as the new star of the year. Moving out to California, he formed an alliance with Max Roach that was to last until death broke up the team."

 

Benny Golson

Liner notes, Jams 2 (EmArcy 195 J 2), by Kiyoshi Koyama
 

"It was on the night of June 27, 1956. At that time I was playing in Dizzy Gillespie's band, and that night we were on the stage of the Apollo Theatre in New York. The first show ended and we came off the stage. After the intermission, everyone was preparing to return to the stage. Suddenly, Walter Davis, Jr. ran on stage while crying, and said to everyone, `You heard? You heard? Brownie was killed yesterday (June 26, 1956).'

 

"Of course, no musicians walking on stage could believe it. Some covered their faces with their hands and said, `Oh no!' Everyone couldn't move with shock. With tears all over, Walter said, `Clifford Brown was killed in a car accident yesterday! Pianist Richie Powell and his wife also killed!' Still I can't believe it. I felt like I almost fainted. That such a sweet guy should die in a car crash! That Richie Powell and his wife should die with him!

 

"Then the stage director shouted, `It's time, everyone! Play!' No one could do anything, although we took our seats, but of course we couldn't play. Dizzy somehow encouraged us, and the curtain was raised. Many of the musicians were crying while playing, and the music tended to be cut off from time to time. I said to myself, `This is a nightmare! It's a nightmare!' And I tried to awaken from the nightmare. But the next morning I found Brownie's death in the paper.

 

"For some time after that, all the musicians talked about was Clifford Brown."

 

Quincy Jones

Liner notes, Jams 2 (EmArcy 195 J 2), by Kiyoshi Koyama 
 

"Clifford's self-assuredness in his playing reflected the mind and soul of a blossoming young artist who would have rightfully taken his place next to Charlie Parker, Dizzy Gillespie, Miles Davis and other leaders in jazz. The record companies owe it to the future of jazz to make every possible fragment of the beautiful musical gifts Clifford gave the world with unbounded love."

 

Harold Land

Liner notes, Clifford Brown in Paris (Prestige PR 24020) 
 

"Clifford Brown was a very beautiful person. He had a very warm personality and usually seemed so relaxed it made me relaxed to be around him. In my opinion Brownie had a very even temperament, if that's the best way to describe it, and a kind of wisdom or knowledge of himself and those around him, and of life in general, that one associates with someone quite a bit older than he was at the time. And to me these same qualities were evident when he expressed himself through his instrument. I have had more than one talented musician say to me, referring to Brownie, that he played his instrument like a young old man! And in each instance I'm sure they meant this statement to be an extremely beautiful compliment, that a man so young in years could acquire such command, depth, and broad musical scope in such a relatively short span of time. Playing with the fire and creativeness of a young man, and with the depth, tenderness, and insight into past, present, and future of an older man."

 

Michael Cuscuna

Liner notes, Alternate Takes (Blue Note BST 84428)
 

"Clifford Brown was certainly a master and a major link in the history of the trumpet. This instrument has always had two kinds of stars; those who advance the mainstream evolution of the instrument and those who are of such unique proportions that they remain phenomena unto themselves with perhaps a few disciples. Miles Davis is indicative of the latter, but Brown is certainly a prime example of the former. Without Brownie, it would be hard to imagine the existence of Lee Morgan or Freddie Hubbard or Booker Little or Woody Shaw or Wynton Marsalis.

 

Donaldson (Donald) T. Byrd

Tempus Fugit, an open letter from Donald Byrd 

 

Tempus Fugit, which means in Latin, "Time Flies." This is the name of a Composition Dizzy Gillespie wrote and used to play at a ridiculous tempo.When Dizzy played this composition, I marveled at his technical ability, his magnificent range, and his distinctive tone quality. My attention was drawn to the composition: the way it was constructed, the chord progression, and the melodic lines. These were the elements that captured my attention. I gave little if any attention to the title of the tune, for the title was just two significant words written in a dead language which is still written but not spoken.

 

How many times have we heard words or phrases that have very little meaning and how many times has it taken a significant occurrence to bring about an awareness and to give meaning to a saying or phrase that you have often heard? Just such an occurrence happened to me two weeks ago in Wilmington, Delaware. All of the sudden, forty years passed through my mind at the speed of light.

 

Forty years ago (June,1956) I was shocked to hear that one of my favorite trumpeters and idols had died on the Pennsylvania Turnpike, due to bad weather and miscalculation and confusion by the driver. It brought about the demise of three persons: Clifford Brown, Richard Powell and his wife.

 

This was a great loss to the music world. Even today, his ability to perform on the trumpet is unparalleled and indelible. This I can attest to by the many requests I get to explain his approach to the art of playing trumpet. This is further seen by the popularity of his recordings, written music, and the performance of his music. All of those who have followed his lead have been impacted upon in one way or another, including me. Trumpet players such as Roy Eldridge, Charlie Chavers, Clark Terry, Harry "Sweets" Edison, Buck Clayton, Edrees Sulieman, Dizzy, Miles, Art Farmer, Nat Adderley, Benny Bailey and many others who came before him and his contemporaries were in awe of his dedication and awesome talent. Those who started out of his talent have names which run into infinity such as Bill Hardman, Lee Morgan, Freddie Hubbard, Booker Little, Woody Shaw up to and including the trumpeters of today such as Wynton Marsalis, Terrance Blanchard, Darren Barrett and many others (including Randy Brecker, Tom Harrell, Marvin Stamm, Joe Schepley). Many have written about him or quoted him musically in their performances. Clifford truly redirected the art of playing trumpet. All trumpet players from various disciplines and of different persuasions know of him and acknowledge his greatness. Clifford is immortal.

 

In Wilmington, they have named an auditorium at the Christina Culture Center in his honor. The city has further honored him by creating a Jazz Festival using his name. People from all over the world come to the festival and world class musicians perform there often dedicating compositions in his honor or playing his music. His contributions and name are timeless. His greatness can also be measured by the sales of his records, sheet music, and the honors that are still given to him. Further evidence is seen by the articles and dissertations written about him. He is held in the highest esteem by all musicians: jazz, classical and any others. As I stood before his grave, I was awestruck by his accomplishments. But as I looked at his beautiful headstone, then looked around at the cemetery where he was laid to rest, I was taken aback by the conditions of the active historical Black cemetery.

 

What had a further impact on me was the fact that he is buried with his family -- mother, father and others. Which is also near the place where the famous vibra-harpist Len Winchester is interred. Len's death is another story I will tell at a later date and time. Another point that left me speechless was at this Wilmington historical burial ground/site, there are many slave markers which have dates that are in the early 1800s, before emancipation. I had only experienced this once before, so right away I became profoundly involved. Here was my friend, idol, and one of the greatest trumpet players of this century interred beneath the garbage, rubbish, and abandoned auto parts scattered among the many pools-flooded roads, paths, and swamps of water. Here is a place surrounded by overturned headstones, desecrated grave markers, and situated only five feet from the railroad tracks. It is more to believe that Wilmington was still a segregated city in the summer of 1956, than to believe this black cemetery and others a couple of blocks down the main street were in such a condition.

 

Respect, honor and admiration do not diminish nor die at the funeral. They grow, if anything. Nothing in terms of love and devotion are lost, they are heightened, for the total picture is rarely seen.

 

My father said, "we will be judged by what we have accomplished. All of our efforts will be measured, all of our actions accounted." To sum it up it is like Max Roach's album, "Little Deeds", not words. I've never head a disparaging word spoken about Clifford Brown, only praise. Praise in terms of honor, dedications, and songs, such as Benny Golson's "I Remember Clifford."

 

How time flies is seen by the fact of all who come to the festival in his name, from all over the world. The many hundreds and thousands that go to the concert that is named in his honor, and the hundreds that pass and sit in the shadow of his bust in the Education and Humanities building at Delaware State University. They have not seen nor know the state of the burial grounds.

 

I must say to all the hundreds and thousands of young trumpet players who copy, imitate, emulate, great and not so great, young, middle aged and old, "you are next."

 

A tradition, culture, or heritage will only last--will only survive--if it is carried on and promoted. What makes a tradition and culture viable when the principles are kept alive and are used? That is what makes a culture, a society, a tradition, and heritage great! We must not only never forget but we must always remember. To use a very old expression, "how soon we forget." A phrase that is often used and sometimes looses its meaning, but then you have some events like Clifford's death and the grave site which revitalize that meaning. As I stood before his headstone and reviewed the last forty years of my life since his death, I could see how quickly time passes and in terms of his gravesite and the condition it is in, how soon we forget.

 

Too often, we have a bad habit of separating a man from his music. The music of Clifford is soul, heart, mind, and belief. As his music lives, so will his existence. Let us honor him as we honor his talent. We will always be grateful for his inspirations.

 

Sincerely,

Dr. Donaldson T. By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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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6 12:19

'All-time greatest' 재즈 앨범 Top 10

이런 류의 리스트가 일종의 cliche이긴 하지만, 초심자들에게 대한 안내라는 면에선 나름대로의 역할도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선정했던 '가장 위대한 재즈 앨범' Top 10은 다음과 같다 (2008년 3월 기준으로):


1. John Coltrane, "Giant Steps" (1959)  ~  하드밥의 완성, 분절화음과 즉흥연주의 최고치
2. Miles Davis, "Kind of blue" (1959)  ~  modal 음악과 즉흥연주의 이정표, post-hard bop의 기틀 마련
3. Bill Evans, "Live at Village Vanguard" (1962)  ~  클래식과 결합한 피아노 트리오의 한 독창적인 전형
4. Sonny Rollins, "Saxophone Colossus" (1956)  ~  칼립소의 소개, 하드밥 색소폰의 새로운 지평
5. Clifford Brown, "All-star jam sessions" (1954)  ~  virtuoso 트럼펫 연주와 라이브 잼의 지평을 넓힘
6. Charlie Parker, "Savoy & Dial recordings" (1945-48)  ~  모던 재즈의 혁명, 재즈의 예술화
7.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 "Moanin'" (1958)  ~  하드밥의 역사 그 자체인 Blakey의 대표작
8. Duke Ellington, "At Newport 1956" (1956)  ~  한 시대의 집대성 및 Newport festivity의 진정한 서막
9. Louis Armstrong, "Hot 5 & Hot 7 recordings" (1920s)  ~  이후 거의 모든 재즈의 foundation. period.
10. Billie Holiday, "The ultimate collection" (1930s-50s)  ~  '인생의 무게가 실린' 보컬, 악기로서의 보컬


*  이 앨범들이 '역사적으로 위대한' 이유는, 연주가 출중한 면도 있지만, 그보다도 당시에 genre-defining album 역할을 한 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50 년대가 '재즈의 황금기'였다고 하는 말은 옳은 이야기였다고 생각된다...

** 이전 시대의 재즈가 위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가지가 있는 가운데, 당시 흑인들이 가졌던 고단한 삶의 요인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약자, 낮은 자, 억압받는 자로서의 그들의 삶이 표현된 음악으로서의 재즈는 블루스와는 '같은 이유-다른 표현'이란 대칭점에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기반은 흑인영가에서 비롯된 가스펠이다.  

*** Miles Davis는 언젠가 "재즈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이 짧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고 한다. "루이 암스트롱. 그리고, 찰리 파커!" 그들이 여기 선정된 50 년대 이전의 두 연주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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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17:23

Coltrane on Coltrane - A Down Beat article (9/1960)

Coltrane on Coltrane

 

                                                                              on Down Beat, by John Coltrane (9/29/1960)

 

I've been listening to jazzmen, especially saxophonists, since the time of the early Count Basie records, which featured Lester Young. Pres was my first real influence, but the first horn I got was an alto, not a tenor. I wanted a tenor, but some friends of my mother advised her to buy me an alto because it was a smaller horn and easier for a youngster to handle. This was 1943.


Johnny Hodges became my first main influence on alto, and he still kills me. I stayed with alto through 1947, and by then I'd come under the influence of Charlie Parker. The first time I heard Bird play, it hit me right between the eyes. Before I switched from alto in that year, it had been strictly a Bird thing with me, but when I bought a tenor to go with Eddie Vinson's band, a wider area of listening opened up for me.

 

I found I was able to be more varied in my musical interests. On alto, Bird had been my whole influence, but on tenor I found there was no one man whose ideas were so dominant as Charlie's were on alto. Therefore, I drew from all the men I heard during this period. I have listened to about all the good tenor men, beginning with Lester, and believe me, I've picked up something from them all, including several who have never recorded.

 

The reason I liked Lester so was that I could feel that line, that simplicity. My phrasing was very much in Lester's vein at this time.

 

I found out about Coleman Hawkins after I learned of Lester. There were a lot of things that Hawkins was doing that I knew I'd have to learn somewhere along the line. I felt the same way about Ben Webster. There were many things that people like Hawk, Ben, and Tab Smith were doing in the forties that I didn't understand but that I felt emotionally.

 

The first time I heard Hawk, I was fascinated by his arpeggios and the way he played. I got a copy of his "Body And Soul" and listened real hard to what he was doing. And even though I dug Pres, as I grew musically, I appreciated Hawk more and more.

 

As far as musical influences, aside from saxophonists, are concerned, I think I was first awakened to musical exploration by Dizzy Gillespie and Bird. It was through their work that I began to learn about musical structures and the more theoretical aspects of music.

 

Also, I had met Jimmy Heath, who, besides being a wonderful saxophonist, understood a lot about musical construction. I joined his group in Philadelphia in 1948. We were very much alike in our feeling, phrasing, and a whole lot of ways. Our musical appetites were the same. We used to practice together, and he would write out some of the things we were interested in. We would take things from records and digest them. In this way we learned about the techniques being used by writers and arrangers.

 

Another friend and I learned together in Philly--Calvin Massey, a trumpeter and composer who now lives in Brooklyn. His musical ideas and mine often run parallel, and we've collaborated quite often. We helped each other advance musically by exchanging knowledge and ideas.

 

I first met Miles Davis about 1947 and played a few jobs with him and Sonny Rollins at the Audubon Ballroom in Manhattan. During this period he was coming into his own, and I could see him extending the boundaries of jazz even further. I felt I wanted to work with him. But for the time being, we went our separate ways.

 

I went with Dizzy's big band in 1949. I stayed with Diz through the breakup of the big band and played in the small group he organized later.

 

Afterwards, I went with Earl Bostic, who I consider a very gifted musician. He showed me a lot of things on my horn. He has fabulous technical facilities on his instrument and knows many a trick.

 

Then I worked with one of my first loves, Johnny Hodges. I really enjoyed that job. I liked every tune in the book. Nothing was superficial. It all had meaning, and it all swung. And the confidence with which Rabbit plays! I wish I could play with the confidence that he does.

 

But besides enjoying my stay with Johnny musically, I also enjoyed it because I was getting firsthand information about things that happened way before my time. I'm very interested in the past, and even though there's a lot I don't know about it, I intend to go back and find out. I'm back to Sidney Bechet already.

 

Take Art Tatum, for instance. When I was coming up, the musicians I ran around with were listening to Powell, and I didn't listen too much to Tatum. That is, until one night I happened to run into him in Cleveland. There were Art, Slam Stewart, Oscar Peterson and Ray Brown at a private session in some lady's attic. They played from 2:30 in the morning to 8:30--just whatever they felt like playing. I've never heard so much music.

 

In 1955, I joined Miles on a regular basis and worked with him till the middle of 1957. I went with Thelonious Monk for the remainder of that year.

 

Working with Monk brought me close to a musical architect of the highest order. I felt I learned from him in every way--through the senses, theoretically, technically. I would talk to Monk about musical problems, and he would sit at the piano and show me the answers just by playing them. I could watch him play and find out the things I wanted to know. Also, I could see a lot of things that I didn't know about at all.

 

Monk was one of the first to show me how to make two or three notes at one time on tenor. (John Glenn, a tenor man in Philly, also showed me how to do this. He can play a triad and move notes inside it--like passing tones!) It's done by false fingering and adjusting your lip. If everything goes right, you can get triads. Monk just looked at my horn and "felt" the mechanics of what had to be done to get this effect.

 

I think Monk is one of the true greats of all time. He's a real musical thinker--there's not many like him. I feel myself fortunate to have had the opportunity to work with him. If a guy needs a little spark, a boost, he can just be around Monk, and Monk will give it to him.

 

After leaving Monk, I went back to another great musical artist, Miles.

 

On returning, this time to stay until I formed my own group a few months ago, I found Miles in the midst of another stage of his musical development. There was one time in his past that he devoted to multichorded structures. He was interested in chords for their own sake. But now it seemed that he was moving in the opposite direction to the use of fewer and fewer chord changes in songs. He used tunes with free-flowing lines and chordal direction. This approach allowed the soloist the choice of playing chordally (vertically) or melodically (horizontally).

 

In fact, due to the direct and free-flowing lines in his music, I found it easy to apply the harmonic ideas that I had. I could stack up chords--say, on a C7, I sometimes superimposed an E%7, up to an F#7, down to an F. That way I could play three chords on one. But on the other hand, if I wanted to, I could play melodically. Miles' music gave me plenty of freedom. It's a beautiful approach.

 

About this time, I was trying for a sweeping sound. I started experimenting because I was striving for more individual development. I even tried long, rapid lines that Ira Gitler termed "sheets of sound" at the time. But actually, I was beginning to apply the three-on-one chord approach, and at that time the tendency was to play the entire scale of each chord. Therefore, they were usually played fast and sometimes sounded like glisses.

 

I found there were a certain number of chord progressions to play in a given time, and sometimes what I played didn't work out in eighth notes, 16th notes, or triplets. I had to put the notes in uneven groups like fives and sevens in order to get them all in.

 

I thought in groups of notes, not of one note at a time. I tried to place these groups on the accents and emphasize the strong beats--maybe on 2 here and on 4 over at the end. I would set up the line and drop groups of notes--a long line with accents dropped as I moved along. Sometimes what I was doing clashed harmonically with the piano--especially if the pianist wasn't familiar with what I was doing--so a lot of times I just strolled with bass and drums.

 

I haven't completely abandoned this approach, but it wasn't broad enough. I'm trying to play these progressions in a more flexible manner now.

 

Last February, I bought a soprano saxophone. I like the sound of it, but I'm not playing with the body, the bigness of tone, that I want yet. I haven't had too much trouble playing it in tune, but I've had a lot of trouble getting a good quality of tone in the upper register. It comes out sort of puny sometimes. I've had to adopt a slightly different approach than the one I use for tenor, but it helps me get away--let's me take another look at improvisation. It's like having another hand.

 

I'm using it with my present group, McCoy Tyner, piano; Steve Davis, bass, and Pete LaRoca, drums. The quarter is coming along nicely. We know basically what we're trying for, and we leave room for individual development. Individual contributions are put in night by night.

 

One of my aims is to build as good a repertoire as I can for a band. What size, I couldn't say, but it'll probably be a quartet or quintet. I want to get the material first. Right now, I'm on a material search.

 

From a technical viewpoint, I have certain things I'd like to present in my solos. To do this, I have to get the right material. It has to swing, and it has to be varied. (I'm inclined not to be too varied.) I want it to cover as many forms of music as I can put into a jazz context and play on my instruments. I like Eastern music; Yusef Lateef has been using this in his playing for some time. And Ornette Coleman sometimes plays music with a Spanish content as well as other exotic-flavored music. In these approaches there's something I can draw on and use in the way I like to play.

 

I've been writing some things for the quartet--if you call lines and sketches writing. I'd like to write more after I learn more--after I find out what kind of material I can present best, what kind will carry my musical techniques best. Then I'll know better what kind of writing is best for me.

 

I've been devoting quite a bit of my time to harmonic studies on my own, in libraries and places like that. I've found you've got to look back at the old things and see them in a new light. I'm not finished with these studies because I haven't assimilated everything into my playing. I want to progress, but I don't want to go so far out that I can't see what others are doing.

 

I want to broaden my outlook in order to come out with a fuller means of expression. I want to be more flexible where rhythm is concerned. I feel I have to study rhythm some more. I haven't experimented too much with time; most of my experimenting has been in a harmonic form. I put time and rhythms to one side, in the past.

 

But I've got to keep experimenting. I feel that I'm just beginning. I have part of what I'm looking for in my grasp but not all.

 

I'm very happy devoting all my time to music, and I'm glad to be one of the many who are striving for fuller development as musicians. Considering the great heritage in music that we have, the work of giants of the past, the present, and the promise of those who are to come, I feel that we have every reason to face the future optimist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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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09:26

초심자를 위한 재즈 음반 10선

'All-time greatest jazz albums' 류의 리스트의 상위에 꼽힌 음반이라고 해서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듣기에 늘 좋기만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수많은 리스트에서 넘버 원 또는 상위 랭킹으로 꼽히곤 하는 Miles Davis의 "Kinds of blue" 앨범이나 John Coltrane의 "A love supreme" 같은 앨범들의 경우 숱한 찬사를 미리 접한 후 그 만큼의 기대감을 가지고 이 음반들로 재즈 감상을 시작하면 대개 좌절감을 느끼거나 '재즈란 나에겐 안맞는 음악이구나' 하는 확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지금 '가장 훌륭한 음반'이라고 선정한 콜트레인의 "Giant steps"도 십 년전에 처음 들었을 땐 상당히 지루했고 도무지 왜 좋다고들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래 리스트를 보완하고 또 혹시 있을 초심자 추천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 재즈를 처음 접하던 때를 돌아보며 '초심자 추천용 재즈 음반 10선'을 꼽아본다.

1. Dave Brubeck, "Time out" (1959; West Coast/cool saxophone)
2. Sonny Rollins, "Saxophone Colossus" (1956; hard bop/calipso)
3. John Coltrane, "Ballads" (1962; saxophone ballad)
4. Stan Getz & Joao Gilberto, "Getz & Gilberto" (1963; bosa nova)
5. Bill Evans, "Waltz for Debby" (1961; classical-styled piano trio)
6. Charlie Parker, "With strings" (1949; bebop w/strings accompaniment)
7. Ella Fitzgerald, "Best of the songbooks" (1964; female jazz/pop vocal)
8. Sarah Vaughan, "Sarah Vaughan" (1954; female vocal+trumpet solo)
9. Keith Jarrett, "My song" (1977; Bill Evans-styled piano trio)
10. Ken Burns Jazz Collection (5CDs; a comprehensive samp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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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5 20:14

가장 위대한 재즈 앨범?

재즈의 역사는 백년 남짓하다고들 이야기한다.

다른 음악 역사에 비해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재즈는, 어찌보면 독특하나, 달리보면 인간 역사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형태의 '흥망성쇠' 또는 '정반합'의 발전 과정을 거쳐왔다. 그렇게해서 나타난 다양한 재즈 장르가 빅밴드, 비밥, 쿨, 하드밥, 아방가르드, 퓨전, 등의 이름으로 현재 알려지고 있다.    

개인적인 리스트에서, 많은 이들이 흔히들 꼽는 Miles Davis의 "Kind of blue"를 제치고 영예의(?) 넘버 원 자리에 등극하는 앨범은 John Coltrane의 1959 년작 "Giant Steps"이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하드밥(hard bop)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기호가 많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류의 리스트가 기본적으로 주관적인 선호도에 크게 좌우되는 만큼,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르의 앨범이 조명을 받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앨범이 꼽힌 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하드밥의 수준을 극한에까지 끌어올렸다.
하드밥 자체가 아티스트의 음악적 표현과 테크니컬 virtuoso를 추구하여 발생한 음악임을 고려하면, (약간 과장하여) 이는 재즈 음악 전체에서 추구할 수 있는 음악성과 테크니컬 virtuoso의 한계에 거의 도달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의 성취이다. 

2. 그 한 예로, 화음의 세분화를 들 수 있다.
한 마디 안에서도 수 차례 화음을 바꾸고, 유사한 화음군 안에서 여러 형태로 화음을 변화시키며, 화음의 구성음을 발판으로 또 다른 화음군으로 튀어나가는 등 화성 실험을 거의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면서도 각 음들의 조합은 어떤 특정한 유기적인 흐름을 구성하므로 거의 기억할 수 있는 멜로디로 만들어지는 경지를 보여준다. 여러 음을 쌓아올려서 자신만의 스케일로 이끌어가는 그의 방식을 당시의 평론계에서는 "sheets of sound" 라고 부르며 칭송하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은, 같은 해 Miles Davis와 녹음한 "Kind of blue"에서는(서로 6주 간격으로 녹음되었다고 함) 반대로 하나의 화음을 바꾸지 않고 길게 끌면서 그 안에서 모드만 바꾸어나가는 modal jazz 방식의 연주를 거의 같은 시기에 동시에 진행시켜 나갔다는 점이다.

3. 다른 예로, 즉흥 연주의 극한을 추구하였다.
특히 앨범 제목과 동명의 곡의 경우, 당시에 함께 녹음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연주가 일단 시작된 후 콜트레인의 코드가 어디로 튈지 몰라서 진땀을 뺐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이 곡은 보통 한번 또는 두번 정도에 녹음을 마치는 여타 재즈 세션 녹음의 경우와는 달리 수많은 버전('take'라고 부른다)이 존재하는데, 각 버전마다 사뭇 다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것이 매우 재미있다.  

4. 완벽한 팀웍을 구현하였다.
Pop music scene에서는 대개 한 명의 가수 또는 일단의 독주자가 튀고 나머지 연주자들은 모두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이들을 써포트하는 데 머무는 모습이지만, 재즈는 본질적으로 앙상블이다. 즉 혼자하는 음악이 아니라 '함께하는' 음악이다. 이는 내가 재즈를 좋아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 앨범의 음악처럼 복잡한 음악을 즉흥연주로, 그것도 완성도있는 결과물이 되도록 연주해내려면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의지와 지원이 필수적이다. 여기 참여한 세션맨들은 각각 자신의 연주에 있어서도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함께 보조를 맞추어 하나의 음악으로 만들어낸 점에 있어서도 탁월했다. 이 앨범을 감상하는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운 방법은, 한 번에 각각 한 파트씩, 그리고 나서는 솔로와 다른 한 파트씩만을 집중적으로 들어보는 방식이다. 전체를 한꺼번에 다 들을 때에 미처 느끼지 못하던 각 파트 및 상호간의 조합의 진정한 묘미를 경험할 수 있다.

5. 콜트레인의 음악에 대한 헌신을 엿보게 한다. 
후세의 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을 높이 여기고 특히 연주자들이 롤모델로 삼는 부분은 그의 음악에 대한 '전적인 헌신'이라고들 이야기한다. 그가 이전에 추구했던 음악은 여기에서 그 정점에 도달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실험과 확장을 계속한다. 즉, 오늘의 완성은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치열한 구도자와도 같았던 이런 측면은, 그가 1966 년에 작고하기 전까지 그의 음악적 스타일이 매 1~2 년마다 지속적으로 확연히 새로워지는 면모로부터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의 하드밥은 모드 음악과 결합되고 즉흥연주의 지경을 한 걸음 더 확장시키는 아방가르드적 실험을 더해서 프리재즈의 형태라는 또다른 '표현의 극한'을 추구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베토벤이 삶의 고통을 승화시켜 만든 음악을 그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즉, 인류가) 누리는 것과도 비슷한 면이 그에게서 보여지는 것이다.  

6. 마지막으로, 창작과 자유에 대한 추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지만, 창작과 자유에 관한 그의 이러한 '절대성의 추구'는 절대자에 대한 귀의와 spiritual 영역에 이르기까지 정신 작용이 확장되어가는 계기로도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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