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09.07.22 용서에 관하여 (7)
  2. 2009.06.01 자유함에 관하여
  3. 2008.12.17 라벤스부르크 처형장에서 발견된 기도문
  4. 2008.12.03 12-Step Program
  5. 2008.12.02 자유롭다는 것
  6. 2008.11.14 시편 묵상의 기쁨 (2)
  7. 2008.09.16 본회퍼가 말하는 공동체 (2)
  8. 2008.09.05 강함의 장애 (앞 글에 이어서...) (4)
  9. 2008.05.22 "Heavenly" 교향곡과 함께 여는 아침 (3)
  10. 2008.05.21 기도하는 마음...
  11. 2008.05.16 데일리NK의 '2007년 10대인물'로 선정되었던 신동혁씨를 만나다...
  12. 2008.05.06 [이코스타 기고] 헨리 나우웬의 “아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읽으며... (8/2004)
2009.07.22 19:30

용서에 관하여

T. Keating says...

"용서란, 모든이와 평화에 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이를 내 마음 안에 받아들이고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내 자신의 것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열림'은 너무나 서로에게 가까운 것이기에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게 되며, 따라서 영적 여정은
개인적 수련에 머물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영적 여정을 시작할 때마다, 모든 인류와, 더 나아가서는 창조세계까지도 그 여정을
우리와 함께 나누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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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say...

용서는 현재가 더 이상 과거에 속한 어떤 것들에 의해 지배당할 필요가 없음을 말하는 '자유함'의 선언이다.
용서는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내 자신의 의도를 내어드리는 '현재진행형' 프로세스이다.
용서는 그 또한 나와 같은 연약한 죄인이라는 사실 위에 그분의 긍휼함으로 함께 덧입는 '공동체성'의 회복이다.
용서는 잃어버린 샬롬의 회복이며 그분의 부르심대로 걸을 수 있도록 방해물을 제거하는 '영적 초기화' 작업이다.  

(a review inspired by luckhee'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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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8:25

자유함에 관하여

자유함은 구원이다.
구원이란 말의 의미 안에는 인간 실존의 모든 제한과 갇힘으로부터의 해방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만드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죄도 아픔도 눈물도 죽음도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자유함의 속성을 가진 구원의 완전한 모습인 것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구원하시는 그분의 속성을 배우며 체험케하는 은혜의 시간들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제한됨의 결과로 나타나는 '고통'은 제한됨이 없으신 그분의 속성을 직시하게 만드는 특별한 은혜의 장치이다.

병든 몸으로부터, 힘든 인간 관계로부터,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열리지 않는 앞길로부터, 풀리지 않는 어려움으로부터, 채워지지 않는 갈망으로부터, 이해되지 않는 생각의 한계로부터, 사랑없는 마음의 한계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라는 감옥'으로부터 자유케됨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매 순간 그분의 구원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낀다.   

그런 만큼, 자유함은 목말라할 만한 가치이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귀중한 선물이다. 

그러나, 자유함이 귀중한 '과정'일지언정 그 자체가 궁극의 '목표'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또한 깨닫는다. 자유함만을 위한 자유함은 그 자체로 '제한된' 자유함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의 자유함은 어떤 것이었는가?

하나님의 충만하신 성품은 자유함이란 말조차 필요없을 정도로 이미 완전히 자유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자유함의 속성은 스스로의 자유함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함이고 자유의지였다. 사랑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비울 수 있는 자유함이며, 섬김을 위하여 성육신할 수 있는 자유함이며, 다른이의 자유함을 위해 자신을 속박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함이었다. 곧 '자유함으로부터도 자유할 수 있는' 그런 자유함이었다.

나 자신의 '거짓 자아'라는 가장 '자유롭지 못한' 실존을 대면하고 나서야 자유함의 그 다음 단면을 가슴으로 엿보는 access를 얻는다는 사실에 경이로움과 humbled됨을 느낀다. 오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빌립보서 2:5-11의 'Christ Hymn'을 다시금 묵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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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7 20:28

라벤스부르크 처형장에서 발견된 기도문

주님,

좋은 뜻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만 기억하지 마시고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들도 기억하소서.

하지만, 그들이 저희에게 준 고통만을 기억하지 마시고,
그 고통으로 인해 저희들이 얻게 된 열매인
저희들의 우정과 충성심, 겸손함과 용기, 관대함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을 통해 성장한
저희들 마음의 위대함도 생각하소서.

그리하여 마지막 심판 날에 저희가 맺은 이 모든 열매들이
저희에게 고통을 준 그 사람들을 위한
용서의 제물이 되게 하소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라벤스부르크에 존재했던 수용소는, 오랜 시간에 걸친
중노동, 혼잡하고 쥐가 들끓으며 난방이 없는 건물, 극소량의 식사, 잔인한 경비병,
몸이 허약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 죄수들을 처형하는 가스실이 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모두 9만 6천여 명의 어린이와 여성이 이곳에서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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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3 09:45

12-Step Program

2박 3일 동안 12-Step Program 멤버들이 주관하는 주말 prayer retreat에 참가하면서도 이 프로그램이 뭐하는 모임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내를 비롯하여 관심있는 사람은 사실 이미 다 알고 있었듯, 알콜 중독자의 재활을 돕는 측면에서 가장 크고 가장 널리 알려진 Alcoholic Anonymous(AA) 프로그램이었다. 

25명 가량 모인 기도 수양회는 12 스텝들 중 11 번째 스텝에 해당하는 과정을 돕고자 마련된 것이었다. 참가자 전원이 자신을 알콜 등 여러가지 중독자라고 소개하는 자리에서 '내가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되었는가!' 하는 당혹감의 순간을 잠시 가지기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여지껏 가본 모임들 가운데 가장 open & authentic한 곳의 하나에 참가하였다는 감사하고 영광스런 마음을 가지고서 돌아오게 되었다. 모임은 몇몇 자원자들의 sharing과 기도, 웍샵으로 이루어졌으며, 보통 "Prayer of Serenity" 또는 "Prayer for Peace"로 마무리되었다.

한 남자와 두번 결혼하고 두번 이혼하는 십년의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이 다 망가졌지만 이제는 그런 수렁에서 벗어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이를 돕고자 수양회를 인도하고 다닌다는 Joelle, 자신이 어떻게 abuse와 adultery에 이르는 온갖 잘못을 범했는지를 개인적으로 들려준 Larry, 정서적 isolation의 무서움과 그로 인한 자살 기도의 순간들을 마치 영화처럼 자세히 들려준 Vicky, 자신의 아들과 딸이 성 중독자인 아빠의 모습을 알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Tom, 사흘만에 처음 입을 열고는 "Simple conversation is so difficult for me" 하며 우는 Jane, 중독과 우울증을 딛고 일어서서 지금 기도의 사람이 되기까지 한 영적 멘토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가 얼만큼 큰 힘이 되었는지를 들려준 Barbara...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7)
 
과연 그들은 이 성경 말씀을 자신들의 존재로 입증해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오픈하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들이었고, 서로로 하여금 '이 안에서 만큼은 supported되고 secure하다'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배려하는 넉넉한 사람들이었으며, 거만하거나 judgemental한 모습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기도에 임하는 모습은 '영적 사치'같은 것이란 엿보이지 않는 소박한 간절함과 진지함이었기에, 소위 '강한' 자로서 그들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모임의 또 한 가지 아름다웠던 점은, 모임을 인도하는 서너 명의 사람들도 다 AA 출신이라는 것. 그래서 누군가가 "I'm OOO, I'm an alcoholic."하고 자신을 소개하면 모두가 합창으로 "Hi, OOO"하고 맞이하는 면에서 아무도 예외가 없었다. 그만큼 그들은 leader와 leadee가 따로 없는 '하나'였고, 동시에 자신의 현재의 '약함'이 어떻게 나중에 다른이를 돕는 '은사'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서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모임을 만들고 있었다. 그곳에서 함께 기도했던 그들 모두가 이제 12 번째 스텝으로까지 다 나아가서 다른이들을 복되게 하는 사람들로 구체적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THE TWELVE STEPS OF AA

1.       We admit we are powerless over alcohol that our lives have become unmanageable,

2.       come to believe that a Higher Power greater than ourselves can restore us to sanity,

3.       make a decision to turn our will and our lives over to the care of God as we understood Him,

4.       make a searching and fearless moral inventory of ourselves,

5.       admit to God, to ourselves and to another human being the exact nature of our wrongs,

6.       are entirely ready to have God remove all these defects of character,

7.       humbly ask Him to remove our shortcomings,

8.       make a list of all persons we have harmed, and become willing to make amends to them all,

9.       make direct amends to such people wherever possible, except when to do so would injure them or others,

10.    continue to take personal inventory and when we are wrong promptly admit it,

11.    seek through prayer and meditation to improve our conscious contact with God, as we understand Him, praying only for knowledge of His will for us and the power to carry that out.

12.    Having had a spiritual awakening as the result of these steps, we try to carry this message to alcoholics, and to practice these principles in all our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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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2 10:13

자유롭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유롭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이야말로 나를 그분께 묶어주기 때문이다.
오로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는 자유롭다.

-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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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4 09:00

시편 묵상의 기쁨

세상살이에도 즐거움은 있다. 
그러나 이는 마치 조그마한 무언가가 바쁘게 up & down하며 왔다갔다하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것과 같은, 말하자면 '촐싹거리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묵상이 있는 곳에 찾아드는 기쁨은 때로 가랑비처럼, 때로 거대한 파도처럼 '조용하게 그러나 탱크처럼' 밀고 들어온다. 마음을 찌르는 참회나 아픔도 터져나오는 자유함과 병행된다. 세미하여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시편 묵상이 특히 그런 기쁨을 안겨준다. 

세상 즐거움은 즉각적이고 종종 강렬하며 예측이 가능하다. 
그에 반해, 묵상의 즐거움은 노력과 기다림이 필요하고 예측이 어려운 측면이 많다. 
그래서 '뚝배기 진국'같은 묵상의 즐거움보다는 '설탕물'같은 세상 즐거움으로 기울기 쉬운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목마르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아직 참맛을 모르거나 쉽게 잊는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이 영역에서만큼은 참맛을 추구하며 '입맛 까다롭게'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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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11:49

본회퍼가 말하는 공동체

“The physical presence of other Christians is a source of incomparable joy and strength to the believer... The believer feels no shame, when he yearns for the physical presence of other Christians.”

“Christianity means community
through Jesus Christ and in Jesus Christ. No Christian community is more or less than this… We belong to one another only through and in Jesus Christ.

- from Life Togther


 

Human community
Spiritual community
자기 자신을 위한 동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동기
욕망에 근거를
진리에 근거를
계산적이고 agenda있는 섬김
단순하고 겸손한 섬김
형제자매를 자신에게 복종시킴
형제자매에게 겸손히 복종함
상대의 이미지를 스스로 만듦
그분에게 받은 그분의 이미지로 인식
말씀+사람의 영향력이 결속케
말씀이 결속케 (주께로)
Immediate relationship
No immediate relationship
필요한 놓아주지 못함
자유함
유익관계의 상실시에 중단됨
유익을 넘어선 지속
Human absorption
그리스도의 소유일 자유 인정
원수를 사랑할 없음
원수를 사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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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명저 "Life Together"에 나와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참다운 '영적 공동체'와 '인간적 공동체'에 관한 비교이다. 본회퍼는 당시 나치 치하에서 독일교회가 변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핍박 상황 아래에서 복음의 가치를 지키고자 고백교회 신학교 공동체와 함께하면서 이 책의 묵상들을 하게 된다.  
 
참된 '영적' 공동체성이 상실되어가면 공동체의 모습에 변질이 일어나는데, 일례로 리더 자신의 '사역적 커리어'라는 욕망이나 어떤 특정한 결과들을 염두에 둔 계산적 아젠다가 말씀이 제시하는 바와 공존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그는 경고하고 있다. 즉, 말씀의 영향력과 사람의 영향력이 공존하는 형태가 되어, 사람의 영향력만 있는 경우에 비해서도 오히려 덜 위험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게 된다. 그 결과로, 구성원들은 사람의 아젠다와 목적에 복종하게 되고, 사람들의 이미지는 그리스도의 이미지의 반영이기 보다는 그러한 아젠다의 도구로서 삼아지게 된다. 이런 경우, '조직'은 필요한 자를 놓아주기 어려우며, 거꾸로 더이상 도움이 되지않는 사람과 함께할 수도 없게 된다. 또한, '조직'의 유지를 위해 리더 개인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활용하는 모습과 인간적인 매력을 (세상적인 측면으로서의) 강화하고 호소하는 'human absortion'이 기능하게 된다. 이 모든 결과로 공동체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는 공동체가 된다...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당시 나치 치하에서의 상황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본질적 의미에서도 다르다고 결코 안심할 수만은 없는 모습들을 오늘날 조국의 교회와 주변의 공동체들로부터 그리 드물지만은 않게 볼 수 있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 더 무서운 것은, 성령의 다스리심에 충분히 굴복하지 않고 있을 때에는 내 안에서조차 그러한 어두운 면모가 언제든지 튀어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일이다. 당시 일차적으로 히틀러를 두고 했던 본회퍼의 이야기들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기억되어야할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가진 권위의 근거와 권한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은 리더는 잘못된 리더(misleader) 되기 쉽다. 사람들은 자기가 따르는 지도자를 우상화하고자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되는데, 이에 스스로 굴복할 리더는 하나님을 모방하는 자의 자리에 앉게 되며,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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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5 13:52

강함의 장애 (앞 글에 이어서...)

삶을 돌아보는 때마다 종종 흥미롭게 관찰되곤 하는 점 한 가지는, 통념과 다르게도, '약함'이 주는 장애보다 '강함'이 주는 장애가 더 훨씬 더 크고 치명적일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약함의 장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하는 정도에서 대개 그치지만, 강함의 장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에서 내 손으로 자신과 이웃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파괴하고 희생시킬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강함의 장애가 가지는 또 한가지 무서운 면은, 이 장애 자체를 본인 스스로가 확대하고 싶어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따라서, 세상 방식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고 오히려 그 시스템 안에서 인정받을 수도 있을 만큼의 힘과 지식과 skill과 권한과 영향력이 내게 '충만히' 있을 때에는 대개 '무력하게' 세상의 논리를 따르게 되기가 쉬운 것 같다. 본인이 가진 권리와 권한에 자신 스스로가 한계를 설정하고 언제든 '내 소유됨'으로부터 내려놓을 수 있는 '청지기의 마음가짐'을 점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기엔 거의 '장사'가 없는 듯 보인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역하는 때에 조차도 상황은 별반 크게 다르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거룩하신' 하나님의 세계를 목표로 하여 '거룩하지 않은(=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을 동원하는지 알 수 없다. 사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방식이기 이전에 먼저 마음가짐이요 자세이다. 다른 이를 볼 때에는 '자신을 비운' 사람을 대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환호하고 찾으며 때론 그렇지 못한 이를 두고 정죄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자기 스스로가 그런 길을 의지적으로 선택하여 가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다.('황금률' 적용의 문제?!)  세상을 거스르는 일이란 그만큼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오히려 인간 스스로의 힘은 이를 거스르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 때가 많다. 그 길은 오직 십자가에 '내'가 그와 함께 못박힐 때가 아니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오늘 지금의 나는 '내가 살아있는' 나인가 아니면 '십자가에 죽은' 나인가?

내게 있는 약함을 탓하기 전에, 내게 주어진 강함을 의지하기 전에,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물어야할 'question'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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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2 15:59

"Heavenly" 교향곡과 함께 여는 아침

분주한 아침 준비를 마치고 기차 시간에 맞추어 역에 도착해 이윽고 기차 위에 몸을 실었다.
이제서야 드디어 들고 온 빵과 커피를 마음놓고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무사히 기차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것에 짧게 감사 기도를 드리고 한숨을 거두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CD 플레이어의 버튼을 누른다. 오늘 이 안에 들어있는 CD는 말러의 4번
교향곡, 일명 "Ode to Heavenly joy"이다. 지휘는 브루노 발터. 컬럼비아 교향악단 연주.
1945 년 녹음.

3 악장이 시작되자 현악의 흐름이 파도처럼 다가온다.

평화.

잔잔하고 고요하되 큰 파도처럼 힘있게 밀려들어오는 평화다.
고요한 기도시간 중에, 특별히 그분의 마음과 맞닿은 것을 느끼게되는 순간에 부어주시는
그 평화와 어딘가 모르게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아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다.

리스트를 보니 3 악장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있다. 
"Ruhevoll, poco adagio"  (Peacefully, somewhat slowly)

이 곡은 어린 아이의 눈으로 천국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담은 한 가곡을 동기로하여
만들어진 곡이다. 음악적으로 원숙해진 말러의 음악이 점차 복합적이고 역동적이어져가는
가운데 조용한 섬처럼 쉬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그의 4번 교향곡이다.
그의 교향곡들 중에서 악기편성도 제일 수수하고, 길이도 가장 짧은 곡이다. 4 악장에
원곡인 그 가곡이 나오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단연 3 악장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도입부에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평화의 선율을 좋아하여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곤 한다.  

좋아하는 곡이다보니 여러 연주를 모으게 되었다.
화려한 해석(카라얀), 장중한 해석(클렘페러), 담백한 해석(아바도), 현대적 소편성의
해석(하딩), 다 나름의 맛이 있다. 그런 가운데, 발터의 연주는 그 나름의 '진한' 맛을 낸다.
우선 그 자신 많은 말러의 곡을 초연한 수제자인 만큼 서로 통하는 점이 많아서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말러의 예민하고 다소 심각한 세계는 발터의 인격적 따뜻함과 만날 때에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따뜻한 인격자' 발터의 연주일지라도 듣다보면 종종 불안과 긴장감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있다. 오스트리아생 유태인으로 나치 유럽에서 벗어나 미국에 망명한
그가, 독일계 유태인인 말러의 곡을,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유태인 망명자들로 주로 구성된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1945 년에 연주한 점을 생각하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곡의 진가가 드러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안과 긴장의
한복판에서 음악적 상징으로 노래하는 '천국'이기에...

4 악장에 나오는 가곡의 가사에는 베드로와 요한과 마르다의 이름들이 나오고, 특히
죽임당하는 어린양의 이야기가 나온다. 내용을 가사로 나타내고 중심이 되는 선율이 제시
되는 만큼 가장 중요한 4 악장이지만, 오히려 가사 없이 변주곡의 형태로 제시되는 3 악장
에서 내 자신의 상상이 작용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발견하곤 한다.

이 아침 분주한 삶의 현장 한가운데서 음악 덕분에 기억된 '평화'에 용기를 얻어 이 하루를
'평화를 갈망하는 날'로 삼아본다. 거짓 평화가 아닌 '참 평화' - 이 earthly한 삶의 온갖
아우성들 한 복판에서 천국과 화목케하는 바로 그 heavenly한 평화를 갈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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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1 11:34

기도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은 주님과의 친밀함과 그분의 사랑을 동경하는 가난하고 약하고 불안한 마음이다.

동시에, 나보다 훨씬 더 큰 아픔을 지닌 많은 이들과 다소나마 일체감을 느끼기위해 그분 안에서
기꺼이 날마다 조금씩 죽고자하는 용감하고 넉넉한 마음이기도 하다.

- 수 모스텔러, 헨리 나우웬의 "Reaching out"을 인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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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6 00:22

데일리NK의 '2007년 10대인물'로 선정되었던 신동혁씨를 만나다...

⑦ 완전통제구역 탈출한 신동혁

북한 인권운동 진영에서는 정치범수용소에서 출생해 22년간 수감 생활을 하고 탈출한 신동혁(24) 씨의 증언이 단연 화제였다. 그는 영국의회 증언, 북한인권 관련 국제회의, 각종 강연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증언하고 있다.

신 씨는 자신의 저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 완전통제구역 - 세상 밖으로 나오다』를 통해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시도했다 붙잡혀 공개 처형되는 것을 지켜봤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정치범 수용소’의 참혹함을 전세계에 알렸다.

[데일리NK - '2007년 10대인물' 선정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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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의 집에서 열린 LiNK 베이지역 모임에서 신동혁 씨와 그가 망명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준 LiNK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신동혁 씨는 20대 중반의 '앳된' 청년이었다. 누군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결코 그의 얼굴만 보고서 평생을 겪어온 그 험난한 이야기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그는 한국에 와서 본 '자유롭고 발전된'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순간은 수용소에서 나온 직후에 바라본 '수용소 밖의 북한'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색이 있는 옷을 입고 '자유로이' 가고픈대로 활보하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은 꿈을 꾸듯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놀라운 세계였단다. 이때의 '충격'에 비하면 중국, 한국, 미국에서 본 모습들은 상대적으로 그다지 놀랍지 않았단다.

~ 그는 수용소에서 '죄수'로 태어나서 그곳에서 '죄수'로 자랐다. '3대 연좌제', 즉 가족 안에 정치범이 발생하면 3대를 처벌하는 구석기적 제도의 결과였다. 당연히 주민증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다. 그는 심지어 탈출하기 전까지 김일성과 김정일이 누군지도 몰랐다.

~ 그는 14살의 나이에 어머니와 형이 사형당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어머니와 형이 탈출하려다 잡혔기 때문이다. 눈도 가리지 않은 채 어머니가 교수형을 당하고 16세의 '민족반역자' 형이 세 발의 총탄으로 총살형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 그 일로 그도 끌려가서 손발이 묶이고 쇠꼬챙이로 뱃가죽이 관통되어 낚인 형태로 화로 위에서 '구워지는' 고문을 당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의 화상이었지만, 감방 동료가 식사 때 나온 소금국으로 상처를 씻겨줘 두 달 만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에 입은 화상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 그의 아버지는 형이 6.25때 월남했다는 죄목으로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들어온 이유는 모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을 열심히 한 자에게 주는 '포상 결혼'으로 결혼해서 신동혁 씨를 낳았다. 결혼하면 신혼 5일간 함께 살 수 있을 뿐, 그 후론 기숙사나 공장, 탄광의 집단시설에서 살아야 한다. 아이들도 12살 이후로는 엄마와 함께 생활할 수 없다.

~ 그는 감정을 알지 못했다. 지금도 감정 처리 문제가 가장 어렵다. 사랑한다, 행복하다, 불행하다, 억울하다, 저항하다는 말이나 개념을 배워본 적이 없다. 어떻게 행복해지고 싶느냐는 참석자의 질문에 끝내 대답다운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죽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태어나면서부터 보아온 세상이라 따로 죽고싶다는 생각은 안해보았다고 하면서, 부유한 나라 사람들이 자살은 더 많이하는 것 같더라고 했다. 수용소에서는 가족이 총살되어 죽고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 사는 것이 행복이라면 행복이라고 했다. 맞아죽지 않고 공사현장 사고로 죽지 않고 저녁에 무사히 들어오는 것이 행복인 것이다.

~ 가장 힘든 것은 배고픈 일이라고 했다. 일하고 맞는 것이 대개의 일과인데, 맞더라도 뭘 좀 먹으면 힘있게 맞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탈출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 또한 평양에서 온 사람이 들려준 '먹는 이야기'였다. 이후 틈만 나면 먹는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했단다. 그리고 스스로 탈출을 제안하게 된다.

~ 평생 가장 좋았던 기억은, 어릴 때 수용소 안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가끔 30분 정도씩 이야기하고 놀았던 기억이다. 앞으로 소원이 있다면, 수용소에서 같이 있었던 동료들과 어디 잔디밭 같은 곳에 앉아서 함께 이야기나누는 것이란다.


- LiNK (Liberty in North Korea) Bay Area meeting에 다녀와서 (5/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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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18:45

[이코스타 기고] 헨리 나우웬의 “아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읽으며... (8/2004)

동양 속담 중에 이외의 모든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은 본받을 만한 모델로서, 어떤 사람은 본받지 말아야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나름대로 배울 만한 점들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말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면, “모든 사람으로부터 최소한 가지씩의 장점을 발견할 아는눈을 가지도록 하는 권유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인격적으로, 또는 등을 통하여 직간접적으로 만나게 되는 만남이 믿는 이들에게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사람들에게서 부분적으로만 드러났던 하나님의 형상 만남과 나눔들 가운데서 더욱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헨리 나우웬(Henry Nouwen) 간접적으로만나는 만남도 우리의 묵상과 깨달음에 풍성함을 더하여 주는 좋은 예인데,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는 일에 탁월하였던 그를 통하여 우리 역시 주님을 만나기를 소망한다.

 

헨리 나우웬의 삶은 사역적인 면에서 크게 시기로 나눌 있다.  예일대에서 신학적 심리학을 가르쳤던 70 년대, 하버드에서의 파트타임 강의와 남미 선교를 병행하였던 80 년대, 그리고 캐나다의 라르쉬 공동체 데이브레이크에 들어가서 장애인들, 특별히 아담이라고 하는 중증 장애인과 함께 남은 생애를 보낸 90년대가 그것이다.  그가 유명 작가와 일류 대학의 교수라는 영향력을 뒤로 하고 (사실은 그의 모든 존재를 집약해서!) 영혼을 섬기는 삶을 사는 데에 생의 마지막 10년을 보낸 사실은 알려진 대로이므로, 그런 면에서 아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라는 책에는 그의 인생의 무게가 실려있다고 말할 있다.   

 

아담과의 만남

 

아담 아네트(Adam Arnett) 1996 2월에 34 년의 생을 마감하였으며, 헨리 나우웬도 책을 쓰고 직후인 같은 9 , 마치 자신도 일을 하였다는 아담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아담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과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관에 누워있는 아담의 시신을 순간부터, 그의 삶과 죽음의 신비에 사로잡혔다. 그때 섬광처럼 가슴에 와닿은 사실은, 바로 장애인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며 독특한 사명을 띄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 그리고 이제 사명을 완수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그런 시선으로만 아담을 보았던 것은 아닌 같다.  그를 아끼던 많은 친구들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도움, 체계적인 인도함, 섬김의 기회들을 마다하고 이런 곳에 있는 그를 이해할 없었다.

 

““헨리, 자네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데가 여기인가?” 그는 혼란스러워했을 뿐만 아니라 화를 내고 있었다. “아담에게 자네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던 대학을 떠났단 말인가?”...”

 

생각의 변화

 

사명감과 의욕으로 시작하였던 새로운 섬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과 방황과 영적 침체의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오게 된다.  그러던 그의 마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어 갔다.    

 

“... , 달이 지나면서 나는 아담과 함께하는 한두 시간을 사모하게 되었다... 형세가 역전되고 있었다. 아담은 나의 선생이 되어가고 있었고, 삶의 광야를 혼란 가운데 헤메고 있는 나와 함께 걷고 있었으며, 나를 이끌어주었다. 아니,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와 함께있는 동안 나는 그를 돌보는 모든 활동을 넘어, 내면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간은 순수한 선물이요, 묵상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어떤 부분과 만나고 있었다. 아담과 함께 나는 거룩한 존재의 현존을 알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

 

모두의 눈에 선생이었고 돕는 였던 그가, 실제로 주님 안에서 배우고 도움을 받은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섬김과 양육의 대상이 되어주므로써, 그러한 일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하였을 배움과 자라남을 가능케 했던 아담이야말로, 자신을 위하여 세워주신 영적 스승이요 영적 은인이었다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아담을 통하여 만나는 예수님, 그를 통하여 만나는 우리 자신

 

“...예수님은 권세와 힘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연약함의 옷을 입고 오셨다. 나는 아담이 2 예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예수님의 연약함 때문에 아담의 극도로 연약한 삶을 최고의 영적 의미가 있는 삶으로 바라볼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담에게는 내면의 공간을 채우려는, 마음의 산란함이나 집착 그리고 야망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아담은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비우는 영적 훈련을 필요가 없었다. 소위 그의 장애 그에게 이러한 선물을 것이다... 대부분은 아담을 불구자로 보았다. 우리에게 것이 거의 없고, 가족과 공동체와 사회에 짐만 되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가 그런 식으로 여겨지는 , 그의 진리는 숨겨진 채로 있을 것이다...” 

 

헨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아담의 참된 가치를 보았으며, 아담을 통하여 세상이라는 거품을 걷어낸 예수님의 모습을 그의 마음에 되새길 있었다.  내게 다가오는 예수님의 이미지는 정직한 의미에서 어떤 모습일까?  나는 내가 보기 원하는 주님의 모습만 보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눈을 덮고있는 비늘 벗겨주기 위하여 때때로 삶의 한복판으로 찾아오는 장애 고난 의미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은 그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자로, 철저한 연약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가 되도록 하기 위해 보내신 자로 환영했다. 그를 이렇게 바라보면 근본적으로 모든 것이 바뀐다. 그때부터 아담은 특별하고, 경이롭고, 타고난 재능이 있는 약속의 사람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의 경이로운 존재 자체와 믿어지지 않는 가치는 우리에게, 우리도 그처럼 하나님께 귀히 여김을 받고 은혜를 입었으며 사랑받는 자녀임 자신을 부자라고 생각하건 가난하다고 생각하건, 지성인으로 보든 불구자로 보든, 잘생겼다고 생각하든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든 상관없이 이해할 있도록 안내해줄 것이다...”

 

우리는 존귀한 존재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 자체를 그토록 귀히 여겨주시며 사랑하고 계시는 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을 너무도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그렇기에, 나의 수고와 지식, 성취에 기대어 존귀함을 획득하고자 애쓰기도 하고, 같은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네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네가 진실로 아느냐? 네가 이토록 귀하기 때문에 값으로 인하여 네가 죽는 보다는 내가 대신 죽는 편이 낫겠다고 여긴 것이란다...”  

 

존재 관하여...

 

“...인생은 선물이다. 우리 사람은 독특하며, 우리 이름이 아신 되었으며, 우리를 만드신 그분의 사랑을 받는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로부터 우리에게 다가오는 너무 크고 끈질기며 강력한 메세지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가진 그리고 성취할 있는 것으로 사랑받는 존재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믿도록 한다. 우리는 이생에서 무언가 해내는 몰두해 있으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 우리의 기원과 종말에 대한 진리를 이해하는 너무나 느리다...  그들은 아담의 장애만을 보게 하는 시험을 이겨냈다. 그들은 그가 돌을 떡으로 바꾸거나, 높은 탑에서 안전하게 뛰어내리거나, 부를 획득할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였다. 아담은 이런 세상적인 일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그가 사랑받는 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로서만은 귀히 여겨질 없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두려워질 때가 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심지어는 가정에서조차, 우리가 귀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무엇 때문에라고 말할 있는 이유들이 필요하다.  용모가 아름답거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으며 좋은 결과를 내고 있기 때문에, 학벌이나 지위가 주는 신분적인 잇점들 때문에...  믿는 이들의 모임은 대개 이런 점들에서 다소나마 위로와 소망을 주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서도 이보다 낫다고 자신할 있을까?  출석과 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책임과 섬김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좋기 때문에, 말씀이 좋기 때문에 귀할 , 그러한 이유들을 상실할 때에는 더이상 귀중한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면 말이다.  사람 사람이 존재 하나만으로도 귀중히 여김을 받을 수는 없는걸까?  잘못했던 일까지 칭찬하고 내버려둘 수는 없겠지만, 어느 경우에도 존재 자체만은 남겨져서 최소한 계속 더불어 살아갈 수는 없는걸까?  모든 수고와 섬김과 업적들은, 이미 귀중한 존재 위에 더하여진 감사 제목일 수는 없는걸까?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그러한 세상과 공동체와 만남을 만들어가고 있는 당사자라는 점일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평가받고 때로는 버려지기도 하는 우리가 동시에 우리의 옆사람들을 평가하고 때로는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밀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에... 너희는 그저 '' 것은 '' 하고 '아니오' 것은 '아니오' 라고만 하여라.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 5:37)”

 

사역 관하여...

 

아담이 기도를 있었을까?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의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있었을까?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를 이해했을까?” 나는 오랫동안 이런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얼마나 아담이 있는지 그리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바를 얼마나 아담이 이해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이 아래로부터 오는질문들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나의 걱정과 불안이 반영된 질문이었다. 하나님의 질문, 위로부터 오는질문들은 아담이 너를 기도로 이끌도록 맡길 있느냐? 너는 내가 아담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다는 사실과 그의 삶이 기도라는 사실을 믿을 있느냐? 아담이 너의 식탁에서 살아있는 기도가 되도록 있느냐? 너는 아담의 얼굴에서 얼굴을 있느냐?” 였다...”

 

너는 그의 얼굴에서 나의 얼굴을 있느냐?”  사역하느라 정신이 없고 씌임받느라 지금 분주한 나에게, 주님께서 옆의 사람 사람을 가리키시면서 이렇게 물으신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대답하게 될까... 

 

“...나는 내가 일과 얼마나 많이 이루어낼 있을지에 대해 염려하는 동안, 아담은 내게 행위보다는 존재가 중요합니다라고 선포하고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떤 말을 하는지에 몰두해 있을 , 아담은 내게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의 칭찬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중요합니다내가 나의 개인적인 성취에 관심을 쏟고 있었을 , 아담은 내게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나를 일깨워주었다. 그는 바로 자체로, 내가 접한 인생의 진리를 가장 철저하게 증거해 주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 16:15)” 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예언을 하고” (설교, 말씀 선포, 성경공부 인도를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주를 영접시키거나 내적 상처를 치유하고) “권능을 행하여도” (살리고 변화시켜도)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 7:21-23).  중요한 것은,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가고, 일을 통하여 나의 존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닮아가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은 결코 선하고 의로운 자체를 위하여 쫓아다니지 않으셨으며, 다만 하나님께서 지금 순간 명하시는 일들을 헤아려 순종하셨다 ( 1:35-39).  바쁜 사역의 가운데에서도 종종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 하나님과 대화하고 그분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시간을 가지셨기에, 하나님의 안에서, 허락하신 이들과 더불어 지내며 행하시는 삶이 가능하셨다.  많은 책임과 의무와 기회와 성취가 있는 삶의 한복판에 우리 또한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묵상하고 따르기를 중단하지 않고 있는지...

 

강함 약함

 

“...그렇다. 그들은 말을 없었지만 나는 너무 많은 말을 했다. 그렇다. 그들은 걸을 없었지만 나는 인생이 비상사태의 연속인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렇다. 그들은 일과 중에 도움을 필요로 했지만 역시 줄곧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하고 외쳤다. 나의 정서적인 필요, 기도할 없는 모습, 성급함, 불안함, 수많은 근심과 두려움에 직면했을 , ‘장애라는 단어가 전체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불안정하고 궁핍하고 연약한 인간, 바로 자신을 만났다. 이제 나는 자신의 장애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아담처럼 되는 저항하고 있었다. 나는 의존적이거나 나약한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그렇게 궁핍한 사람이 되고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디에선가 아담의 , 철저한 연약함의 길은 예수님의 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성경 말씀을 조금씩 깨달아오는 동안, 나는 오히려 믿음의 분량을 충분한 것으로 여기고 나의 깨달음의 수준에 만족스러워하면서 영적으로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미 거둔 작은 업적에 쉽게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매일매일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도전들 앞에서는 오히려 나약하기 일쑤이지 않았는지...  자신에게는 끝없이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끝없이 엄격한 이중적인 잣대에 그만 익숙해져 버려서 더이상 아무런 문제의식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강함과 성숙함을 드러내야만 정도로 아직 연약하고 미숙한 것은 아닌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없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기다리기에는 너무나도 성급하며, 제자의 삶을 살기에는 아직도 몸에 지녀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 무거운 것은 아닌지...  헨리와 같은 인물이 아담이라는 창문을 통해서 자신의 장애 직시하게 되었다면, 나와 같은 사람의 장애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영적 인도 관하여...

 

“...두려움, 불안, 고독, 우울, 상실감 등에 오염되어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인도자를 찾아다닌다. 우리는 누군가 영적 지도자 혹은 영혼의 친구 우리를 도와 혼란에서 벗어나게 하고, 내적인 완전함, 자유, 평안에 이르는 길을 보여줄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우리는 대개 명성있고 지혜롭고 심리적인 통찰력과 영적 민감함과 견실한 인생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찾는다. 아마도 문제는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그들 역시 너무 많은 것을 주고싶어 한다는 사실인 듯하다. 따라서 우리는 의존하게 되고 그들은 지배하게 된다. 아담은 내가 만난 인도자 중에서 가장 비지배적이며가장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본회퍼(Bonhoeffer), “자신이 지니는 권위의 근거와 권한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은 리더들은 잘못된 리더(misleader) 되어버리기 쉽다. 사람들은 자기가 따르는 지도자들을 우상화하고자 하는데, 이런 바램에 스스로 굴복할 리더는 하나님을 모방하는 자의 자리에 앉게 되며,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된다 경고한 있다.  비지배적인 인도자란, 예수님이라는 목적지까지 안내한 뒤에는 자신은 옆으로 비껴날 아는 참다운 여행 가이드 같은 인도자를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적 운명을 그리도 쉽게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버리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직접 찾고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에 직접 귀기울이는 것이 어느덧 너무나 지루하고 막막한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런데, 스스로에 관하여는 그렇게도 연약하기만 했던 우리가 막상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이끄는 입장에 서게 되면, 어떻게 그토록 신속하고도 쉽게, 우월감과 다스리고자 하는 마음과 칭송받기 원하는 마음을 가진 자로의 변신을 이룰 있는 것일까?   

 

사역자 우리들...

 

아담이 자기를 통해서,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의 사역은 독특했다. 그는 돌봄이나 사역, 치유, 섬김이란 것들에 대해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데이브레이크가 아담이 공적인 사역을 장소였다고 하는 것이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처럼 아담도 독특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세우신 사역자들이다.  하나님의 일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 6:29)” 이며, 우리 모두는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의 삶들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모습은 다양할 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그분을 알고 그분을 닮아가는 점에서,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점에 있어서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서로의 사역적인삶이 주는 귀중한 의미들을 함께 발견하고 기뻐하며 축하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온전히 보고 주님을 온전히 배우기 위하여 섬김 가르침 자리로 나아가야만 한다.  곳에 나아갔을 때에만, 우리가 만나는 영혼들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얼굴을 뚜렷이 있도록 도와줄 있기 때문이다.  곳에 나아갔을 때에만, 그들이 우리로 하여금 온전히 그분의 뜻을 배우도록 가르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라는 창문 통해서만 주님은 그분 자신의 형상을 우리에게 조금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그의 위대한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당신들이 사랑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을 때에만, 당신들이 서로 사랑할 때에만 나는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삶은 쓸모없고 나는 짐이 뿐입니다.” 아담은 우리에게 경쟁이 아닌 긍휼만이 인간의 소명을 완수하는 길이라고 믿도록 분명하게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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