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5.06 유네스코가 지정하고 세계가 함께 보호하는 우리의 문화유산들
  2. 2008.05.06 정신적 “국보 1호” 한글과 민족의 스승 세종대왕
  3. 2008.05.06 일제 강점기에 우리 문화재의 유출을 지켜낸 문화 수호자 간송 전형필
2008.05.06 11:04

유네스코가 지정하고 세계가 함께 보호하는 우리의 문화유산들

유네스코는 인류 문명 및 자연사적 관점에서 세계적으로 귀중한 유산들을1972 년부터 전 인류가 함께 보존하는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고 있다. 세계유산은 역사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문화유산과 지구의 역사를 잘 나타내고 있는자연유산’,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성격을 함께 가지는 복합유산으로 구분되며, 이 이외에 기록유산무형유산이 있다.

2004년 현재,
125 개국에서 730 (문화유산 563 , 자연유산 144 , 복합유산 23 )의 세계유산이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유산으로 7 , 기록유산과 무형유산을 합하여 12 건이 등록되어 있다. 많은 역사 유물과 넓은 활동 범위를 자랑하던 그리스
(16 ), 이태리(35 ), 중국(28 ) 등과 비교하여 볼 때에도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결코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없다. 더우기 이웃 일본의 경우 교토 내의 많은 유물들이 개별적으로 등록된 데 반하여 우리나라의 경우 경주시 전체가 하나의 유산으로 묶여서 지정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 ‘문화유산으로 1. 경주 역사지구, 2. 석굴암과 불국사, 3. 팔만대장경 장경각, 4. 고인돌 유적, 5. 종묘, 6. 창덕궁, 7. 수원 화성, ‘기록유산으로 1. 훈민정음, 2. 조선왕조실록, 3. 승정원 일기, 4. 직지심경, 그리고 무형유산으로 종묘제례악이 있다.

1. 이미
1979 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10대 유적지의 하나로 소개된 바 있는 신라의 고도 경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으로, 다섯 개 지역의 하나인 남산지구에만 460 점이 넘는 유적이 있을 정도이다. 지금도 경주의 지하에는 금관이나 천마도와 같은 유물들이 이제껏 발굴된 양보다 더 많이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경주는 로마 등과 더불어 도시 자체가 역사지구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 석굴암과 불국사
는 첨성대, 석빙고, 에밀레종 등 과학적 예술적 업적이 찬란한 빛을 발하던 8세기 통일신라의 작품들로,  특히 석굴암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건축기법 아래 기하학적인 배치와 자연 채광 및 온습도 유지 등의 과학성을 신비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 두 곳에 있는 불상들은 신라적인 특성과 당시 동아시아 세계의 국제적 보편성을 함께 보여주는 세계적인 수작들이다. 불국사 동편의 여성적인 다보탑과 서편의 남성적인 석가탑이 장중한 청운교 백운교와 작으나 화려한 연화교 칠보교와 이루는 조화와 대비도 절묘하다.
 

3.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의 선정 기준이 유적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은 팔만대장경 자체는 등록되지 못하고 이를 저장하는 장경각만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 대장경은 포괄성과 정확성, 그리고 예술성에 있어서 현존하는 대장경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온도와 습도를 유지, 조절할 수 있게 지어진 장경각의 구조는 현대 보존과학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겨질 만큼 높게 평가되고 있다.

4. 신석기 및 청동기 시대의 사회 문화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는 고인돌의 경우, 한국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남아있는 전체 고인돌 수의 약 40 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는 고인돌 대국이다. 고인돌은 종교적인 제단, 무덤, 또는 공공집회 상징물 등의 용도로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 고인돌의 연대는 대개 2500~4000 년 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 종묘는 조선의 왕도 서울의 도시 구조를 축소 반복하고 있는 대규모 목조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 의례와 제례악 등 오백 년 조선 왕조의 유무형 유산들이 함께 유지 보존되고 있는 종합 문화유산의 드문 예이다. 왕조의 상징이기도 했던 종묘는 조선 건국 후 서울에 최초로 세워진 기념비적인 건축물로서,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난 후에도 궁궐보다도 먼저 개축될 만큼 중요하게 여겨졌다.

6.
창덕궁은 조선왕조 전 기간에 걸쳐 가장 오래동안 역사의 무대가 되었된 궁궐로서
, 임진왜란 이후로는 경복궁을 대신하여 정궁으로 사용되었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건물들을 배치하고 지었던 만큼 환경과의 조화가 뛰어난 창덕궁은 동아시아 궁궐 건축 및 정원 디자인의 원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보 249 호 동궐도에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당시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7.
수원 화성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평지산성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기능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조의 문예부흥 아래 발달했던 실학의 성과들을 바탕으로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지어진, 건축사적 의의가 큰 동양 성곽의 백미이다. 정약용이 축성을 위하여 거중기를 발명한 점, 공사 기록이 정확하게 남겨진 점 등이 그 역사적 가치를 더해준다.  

8. 세계 무형유산으로는 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이 있는데, ‘보태평정대업등을 직접 작곡하였던 세종대왕이 박연 등으로 하여금 이를 체계화하게 하였고 그의 아들 세조가 제례악으로 확립한 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후 500 년간이나 계승되어 오고 있다.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우리 문화재들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9.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는 한글의 의의와 그 해설서 훈민정음에 나타난 세종대왕의 창제 동기 및 과정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 유네스코에서는 세종대왕의 큰 뜻을 기려 오늘날 문맹퇴치에 공헌한 자들에게 세종대왕상을 수상하고 있다.

10.
조선왕조실록 조선시대의 정치, 외교, 군사, 행정, 법률, 경제, 사회, 예술, 종교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백과사전적 역사서로서, 1,893 권에 6,400만 자나 되는, 단일 왕조의 기록으로는 세계 최장 기간동안 씌여진 세계 최대 분량의 실록이다. 왕조차도 당시의 기록을 볼 수 없었을 만큼 엄정했던 전통으로 진실성과 사실성이 최대한 확보될 수 있었다는 점은 역사서로서 매우 중요한 일면이다.


11. 왕조실록이 왕이 작고한 뒤에 모든
1차 사료들을 바탕으로 편찬된 2차 사료였던 데 반하여, 승정원 일기는 국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에서 왕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매일매일의 날씨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기록하고 정리한 1차 사료이다. 따라서, 지난 역사의 객관적인 단면들이나 문장 기록의 변천 과정 등을 여과없이 보고자할 때 승정원일기야말로 더없이 귀중한 기록이 된다. 일례로, 여기에 매일 기록된 날씨 자료는 지난 이백 년간의 기상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데에 유일무이한 데이터로 제공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12. 최근 미국의
Life 지는 지난 천 년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인쇄문화를 꼽았는데, 세계적으로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되고 있는 직지심경이 출간되었던 고려 후기의 활자 기술은 이후 동아시아 및 서역으로 전파되어 그곳의 인쇄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직지심경은 병인양요 이후 프랑스에 억류되어오고 있는 우리의 보물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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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10:57

정신적 “국보 1호” 한글과 민족의 스승 세종대왕

정보의 양이 급증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이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대사회에서 한 언어를 쉽고 온전하게 기록할 수 있는 문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현존하는 4,000여 개의 언어들 중 많은 수가 아직도 그 언어를 올바르게 기록하여 남길만한 자기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것에 반해, 우리말은 한글이라는 고유의 도구를 갖추므로써 우리에게 세계사적 문명의 흐름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여 주고 있다. 더우기, 1446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표된 우리의 문자는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이제 인류가 함께 보호하는 세계인의 유산이 되었다. 그 기원이 분명치 않거나 더러는 로마 알파벳 등을 차용하여 쓰고 있는 많은 다른 문자들과 달리 한글은 훈민정음해례본에 명시된 바와 같이 분명한 목적과 기원을 바탕으로 정교한 기능을 염두에 두고 고안되었다는 점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경우에 속한다.    

세계적 언어학자들이 칭송할 만큼 독창적이고 우수하다는 우리 문자 한글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선, 각 글자의 모양이 그 해당 소리와 근본적인 연관성을 나타내는 점과 유한한 숫자의 문자 단위가 조합되어 수많은 글자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한글은 과학성과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목구멍소리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잇소리 ㅅ은 치아의 모양을 따서 만들어졌으며, 하나의 소리 그룹 안에서의 발성적 차이는 ㄱ, , (어금니소리) 또는 ㄷ, , (혀소리)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청음 (, ), 전탁음 (, ), 차청음 (, )이 각각 규칙에 따라 그 유사성과 차이점을 글자 모양에 반영하고 있다. 모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하늘과 땅과 사람을 상징하는 ㅣ, , · 의 세 기본 단위가 결합하여 ㅏ,,,ㅜ 등의 글자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당시 중국의 음운학이 이분법을 취하므로 ()”이라는 말을 ”+“의 결합으로 보았던 것을 훈민정음은 이를 우리말의 실정에 맞게 세분하여 ”+“”+”의 삼분법을 취하고 있다. 이는 당시 우리 언어의 음성적 특성에 대한 자주적이고 심도있는 관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했던 새로운 음운 및 문자 체계의 확립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과 의의를 바탕으로 일각에서는 훈민정음이야말로 국보 제 1호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여론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 이 한글은 누가 만들었는가? 조선왕조실록과 동국정운은 각각 훈민정음의 창제가 어제(御制)”친제(親制)”라고 기록하므로써 왕이 창제 과정에 직접 간여한 점을 밝히고 있다. 물론 한글 창제의 실무 작업은 주로 집현전 학자들이 주관하였을 것이다. 왕의 역할은, 적어도 관리자로서 프로젝트 기획, 추진, 지원 등의 분야에서 많은 기여와 동기부여를 했을 것이란 점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왕이 직접 연구와 창제 작업에 참여하여 주도적인 기여를 하였다는 주장도 전해지고 있다. 어느 쪽이 옳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는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과 학문에 대한 열정이 발로가 되어 나타난 추진력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뛰어난 학자이자 인격자요 훌륭한 지도자였던 세종대왕의 통치관은 하나도 둘도 백성을 기준으로 삼는 애민사상에 있었다. 일반 백성들이 글을 읽고 쓸 줄 몰라 고생하던 일을 가슴아프게 생각했던 그는 이러한 애정을 바탕으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을 창제하게 되는데, ‘훈민정음해례본의 첫머리에는 그와 같은 취지가 잘 나타나 있다.

왕이 지은 훈민정음: 우리 말은 중국의 것과 달라 한자로는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이 자기 의사를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왕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이는 모두가 쉽게 배워 편하게 사용하도록 하고자한 것이다...”   

하나의 문자 체계가 만들어지는 일은 방대한 연구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태종 대까지만 해도 육조직계제아래 왕이 모든 정무를 직계하던 것을 세종은 재상들이 대개 결재하고 왕은 보고만 받는 의정부심의제로 전환하는데, 본격적인 언어학 연구에 착수하게 되는 즉위 19 년부터는 그나마 남은 결재권도 대부분 세자(훗날의 문종)에게 이양하고 왕은 언어학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수 년에 걸쳐 각국으로부터 언어학 서적들을 수집하고 부족한 부분을 집현전 학자들로 하여금 보완하게 하면서, 한자, 이두, 외국 문자 및 고대 문자들을 선별적으로 참조하여 마침내 독창적인 한글을 완성하였고 세종 25 (1443)에 이를 전격적으로 공표하였다.               

우리의 문자를 만드는 작업은 6 년 간이나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그것은, 당시 신분과 권력을 유지하는 첩경이었던 학문의 길이 더이상 독점되지 않고 일반 대중에게 개방되는 것에 대하여 양반 기득권층이 가지는 강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실제로, 공표 직후 한자를 저버리는 것은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길이다는 등의 논리를 들고 반발하는 사대부들이 적지 않았다. 세종 시대 이후에 한글은 같은 이유로 인하여 탄압 또는 금지 처분을 받고 고의로 멸시되거나 일부 계층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다가, 1897 년 고종의 칙서에 의해 비로소 권장되기에 이른다. 한글이 '모든 이의 글'로서 공인된 기간은 우리 역사에서 불과 백 년이 조금 넘는 것이다.

퓰리처 상을 수상한 “Guns, Germs, and Steel”의 저자 Jared Diamond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유명한 세종대왕의 글자를 가는 곳마다 보는 즐거움을 누렸다고 고백하고,한글은 전 세계의 언어학자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게 고안된 문자라는, 어쩌면 당연한 칭송을 듣고 있다”라며 높이 평하고 있다. 세계 언어학사의 획을 긋고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서 보호되고 있는 우리 글자와 그 창제자 세종대왕의 존재는 그 문화적 기반위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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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10:37

일제 강점기에 우리 문화재의 유출을 지켜낸 문화 수호자 간송 전형필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과 역사적 자긍심의 실체라고 할 수 있는 역사 문화재가 외침과 일제 점령기를 거치면서 해외로 유출된 규모는 현재 파악된 숫자 만으로도 약 6만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몇 해 전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 직지심경의 반환 추진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기도 하였다. 문화재의 유출 실태를 국가별로 살펴보면 일본으로의 유출 규모는 단연 압도적인데, 그 중 상당수는 현재까지도 목록 및 소재 파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문화재 유출과 반환은 그 자체가 우리 민족의 수난과 극복의 역사를 말해주는 일면이 있다.

서울시 성북동에 자리잡은 간송미술관에 가면 해외로 유출될 뻔한 위기에 처해있다가 한 개인의 사명감과 노력으로 지켜진 우리의 문화재들 다수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간송 전형필 (1906-1962) 이라는 한 민간 문화재 수집가가 수집한 훈민정음 원본을 비롯한 고려청자, 조선백자, 불탑, 김홍도와 신윤복의 민속화첩 등 국보급 문화재들이 다수 보관되고 있는 것이다. 전형필은 일제 강점 아래 우리의 국가적 문화재들이 마구잡이로 도굴, 훼손, 매매 및 유출되는 시대적 상황 가운데서 문화재 수집 보호에 전력을 다한 사람이다. 민족 문화 전통을 단절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에서 그의 많은 개인적 유산을 털어 귀중한 문화재들을 사모았고, 후에 이를 바탕으로 한국 최초의 민간 박물관인 간송미술관을 설립하였다. 그는 문화사 연구에 필요한 우리 문헌 자료를 수집하는 일에도 열정을 쏟았으며, 경영난에 빠진 보성고보를 인수하여 인재 양성에 힘쓰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들이 알려져 1956년에는 교육공로자로 표창되었고 1962년 그의 사망 직후에는 대한민국 문화포장과 문화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물 수집에 관한 일화는 다양하다. 일본인이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여 반출한 고려시대 석탑이 인천항에서 흘러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가로막고 되사오기도 하였으며
, 훈민정음 원본의 경우에는 6.25 전쟁 당시에도 이 한 권을 들고 피난을 다니면서 잘 때조차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가장 귀중한 문화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현장이면 경매장이든 일본 땅이든 달려가 당시 기와집 수십 채에 해당하는 비싼 값일지라도 가지고 있는 재산을 처분하여 주저없이 값을 치르고 되찾아오곤 하였다. 그렇게 수집한 유물들은 해방 후에 대부분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형필은 암울했던 시절에 우리의 것을 지키는 일에 자신의 위치에서 헌신했지만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는 차츰 잊혀져가고 있던 많은 선각자 중의 한 명이다
.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점차 확대되어 가면서 그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발굴과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날 그가 지녔던 뜻과 그가 수호하고자 애썼던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돌아보면서 오늘 시대의식을 지닌 한 소명인으로서의 나의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동대학교 학보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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