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비판'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9.02.20 그들의 영이 안다! (2)
  2. 2008.12.01 사랑 (2)
  3. 2008.11.17 a new phase!
  4. 2008.07.22 '무숙자와 이웃되기' 실험 - Ch. 1 (8)
  5. 2008.06.23 침묵으로 드리는 기도 (2)
  6. 2008.06.09 next ten years...
2009.02.20 18:30

그들의 영이 안다!

다른 이와 만나고 말씀을 나누며 삶을 나누는 현장에 설 때마다 문득문득 '무서운'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의 영이 안다'는 생각이 리마인드될 때이다. 
 
일례로, 코스타와 같은 모임이 끝나고 나면 수많은 참석자들로부터 자신 또는 그 주변 누군가의 인생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고 터취되었는지에 관해 직간접적인 고백을 수없이 듣게 되는데,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그러한 일의 통로가 되어주었던 누군가의 이름은 많은 경우 소수의 특정 이름들이 계속 반복되어 거론되곤 한다는 점이다. (물론 소수에게 정성껏 진실하게 집중하였으나 끝내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이야기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비록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참석자들 자신은 나이가 어리거나 신앙적으로 초보 단계에 머물러있을 수 있다. 아직 그들의 세계관이나 인격이 많이 변화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하나님과 깊이있게 교제하는 법에 대해 미처 눈뜨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잘못된 것들에 마음이 기울고 환호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존적이고 존재적인 인생의 목마름 앞에 진솔하게 서있을 때에만은, 무엇이 진짜인지, 또 누가 진짜인지를 그들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들의 이성과 분별력으로 판단하고 표현할 수 없을 때조차도 그들의 '영'은 알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그 표현할 수 없는 '생명력'에 관해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이다.  

멘토에게 물었다. "사역자로서의 삶을 잘 살아내는 데에 꼭 필요한 덕목은 무엇입니까?" 그가 주신 대답은 예상치 못한, 그러나 매우 인사이트풀한 것이었다. "그것은 장인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자가 하나님과 더불어 말하려하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진 자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려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더라도 하나님과 함께하려하지 않는다. 아주 멀리까지 잘못나간 경우엔, 하나님을 위하여 시작했던 일이 자기 자신의 영적 커리어 관리로 전락하게 되기도 한다. 하나님이 도구화 되어가는 삶으로부터 큰 생명력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긴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의 시선이 기준이 되기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기준이 되어 거기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삶의 모습은 '피상성'이다. 만남과 예배와 교회 모임과 각양 활동, 헌신 및 사역들이 '외형적'으로 넘쳐나지만 정작 그 '안에' 삶을 변화케하는 생명의 힘이 깃들지는 못하는 것이다. 결코 시작할 때의 의도가 악하거나 잘못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딱히 하나님 편에 서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어정쩡한 삶의 모습. 그것이 피상적인 삶의 아픈 모습이며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가 '목마름의 시대'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이 시대가 그 어떤 시대 못지않은 '피상성의 시대'인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시장에서 충분히 팔릴만한 백 개의 도자기를 구워놓고도 장인으로서의 양심과 자신에게 정직한 기준 때문에 95개나 손수 깨버리는 '장인정신'이 피상성을 극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삼아질 만할 것이다.  

그럼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방향성에 관한 이야기는 도대체 누구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인가? 이제 각자가 그런 인사이트를 알려줄 선생과 멘토를 찾아나서야만 하는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런 류의 가르침은 대개 약한 자가, 낮은 자가, 가난한 자가, 어린 자가, 배우는 자가, 피인도자가 강한자에게, 높은 자에게, 부유한 자에게, 나이든 자에게, 선생에게, 지도자에게 훨씬 잘, 그리고 자주 가르쳐주는 일들인 것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나아가 귀기울이고 그들로부터 배워야만 할 것이다. 이런 컨텍스트에서라면 세상의 눈으로 보는 이른바 '베풂'은 더이상 내가 '가진' 무언가로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다. 가장 귀한 것들을 '가르쳐주는' 그들에게 은혜갚는 마음으로 하는 '섬김'이 된다. 
   
지금 조국의 백성들은 고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 앞에서, 이 땅의 종교인들에게, 리더들에게, 또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들이 가진 목마름은 어떤 것인지, 그들은 어떤 사람을 기다리는지에 관해 조용히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들이 무언으로 전하는 이 큰 울림의 메세지를 진지하게, 겸허하게, 아프게, 그러나 소망 가운데 오늘 귀기울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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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1 08:15

사랑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고전 13:2)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8)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2)

내 안에 참 사랑이 보이질 않습니다.
눈물로 구하오니, 주께서 가르치신 사랑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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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7 11:09

a new phase!

6년 단위로 의미적 일관성을 지녀왔던 지난 삶의 phase들...
그 또 하나가 지난 주말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다시 새로운 phase가 시작되고 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전에서 보낸 대학-대학원 시절 6년, 미국와서 보낸 유학시절 6년, 그리고 hp에서 풀타임으로 보낸 지난 6년...

그 중간중간마다 안식년의 의미로 삼아진 시간들도 있었다.
고등학교때 1년간 가졌던 휴학 시기, 대전시절 이후에 회사생활 및 유학준비로 보낸 2년 반의 시절, 그 이름도 거창한 General Nanoelectronics LLC에서 일한 반년, 그리고 학위를 마칠 것인가 회사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동안 UCB와 hp에서 각각 해프타임으로 보냈던 한 학기...  

지난 phase는 아마도 위로, 치유, 결혼, 회복, 휴식, 공동체성 눈뜨기, 리더쉽 레슨, 공적 소속감의 결여와 사적 연대감의 강화, 형통의 함정, 내면의 어두움, 영적 목마름, 멘토링, 내면여정 시작하기, 공적 삶을 향한 발돋움, 등의 표현들로 특정지워질 만한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고난과 꺾임과 내려놓음이라는 일관된 커리큘럼에 따랐던, 그러나 영적으로는 가장 영광스런 시기이기도 했던 그 직전의 phase와는 여러 면에서 대조/비교를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만난 하나님은 가까이에 계셨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훨씬 subtle하게 말씀하셨고, 이성-의지적 접근 및 공동 참여에의 영역으로 한 발자욱 더 가까이 다가오도록 초청하신 분이셨다. 전반 3 년간의 영적 상승기와 후반 3 년간의 하강기를 가지게된 정확한 원인들과 의미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밖에, 돈이나 기득권에는 naive할 정도로 마음쓰지 않았지만, 위압, 통제욕, 이기심, 무정함, 판단정죄함, 권위주의, 위선과 같은 인격/자세의 측면들과 대면하는 곳에서는 왜 그리 분노하고 offended되며 집착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죽음 앞에서 다소 의외일 정도로 두려움이나 불안함의 동요가 엿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 기저에 흐르고 있던 싸한 슬픔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등에 관한 해석이 과제로 남는다. 적용적 측면에서는, 그런 점들을 가지고서 어떻게 앞으로 다른이를 돕는 일의 도구로 승화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야할 것이다.  
 
새 회사는, 곧 만들어질 더욱 새로운 회사를 spin off시키는 우산 역할을 하게될 former partner 회사이다.
허황된 꿈이나 야망으로 시작하기보다는 소박하고 인간적인 두 가지 이유로 시작하는 그 동기들이 감사하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채택해주지 않으니 스스로 한번 만들어보자는 '소박한' 엔지니어 정신이 그 첫 번째 이유요, 비정규직 네 명을 계속 유지/간직할 수 있으려면 자리와 펀드를 마련해야 한다는 다분히 '인간적인'(실용적인 면도 있긴 하지만..) 필요가 두 번째 이유였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은, 내면의 문제와 씨름한다는 명목 하에 팀의 한 멤버로서 회사와 동료들을 위해 이전만큼 기도하지 못했고 업무 충실성과 기여 측면에서도 마음의 빚을 지게된 것 같다. 한편, 직장인으로 부르신 곳에서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배우는 점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시간 많은 위로와 영감이 되어준 이 팀과 리더에게 대한 마음의 빚을 갚고, 직장인으로 부름받은 삶에 대해서도 좀 더 제대로 배우는 이 두 가지 의미를 잘 채워가는 앞으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잘되는 것'을 나의 업무 목표로 삼아 매일 실천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기간 동안 가정의 영역에서는 어떻게 심고 열매맺는 의미를 가지게 될런지 궁금하다. 때로 서로 마주보고 때로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펼쳐가고 맞이하여야 할 각자의 삶의 반경들의 총합은 과연 어떤 새로운 다이내믹스와 궤도를 형성하게 될까? 가족들과 영적 가족들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허락될런지...  

내적으로 먼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신 후에 외적 환경의 phase도 새로이 조성해주신 점에 무엇보다 감사한다. 
마침 지난 주말을 마지막으로 시편 150편의 묵상도 절묘한 타이밍으로 보조를 맞추어 마쳐지게 된 점 또한 '한 대목의 마무리'라는 측면에서 의미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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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2 15:35

'무숙자와 이웃되기' 실험 - Ch. 1

'무숙자와 이웃되기' 프로젝트.
그것만이 씨티로 이사온 100%의 이유는 아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이웃이 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던 아내의 갸륵한 뜻을 남편이 되어 돕지는 못할망정 가로막진 말자...
 
그럼, 이전의 아파트에 계속 살았다면 필요했을 2nd car를 사는 대신 그 경비로 이 비싼 도시의 도심에서 한번 살아보자.. 며 Tenderloin 지역과 새로 개발되는 타운의 borderline 쯤에서 두 지역에 '양다리를 걸친'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온지 일년 반. 이제 다음달 말이면 아파트 계약도 끝나고 2nd car용으로 잡아놓았던 예산도 거의 다 채우게 된다.

이 실험의 성과는 어떠했는지, 이 시점에서 중간평가를 한번 내려봄이 적절할 듯하다.

워낙에 홈레스 분들을 위한 컴패션으로 차있었던 아내야 "난 내 이웃이 정말 자랑스러워"하는 등의 놀라운 말들을 진작부터 쏟아내왔지만, 돌이켜보면 난 오히려 매일 아침저녁으로 수없이 만나는 그들을 대면하며 overwhelmed된 느낌을 가지게될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 만큼, 컴패션이 늘어나기는 커녕 기존에 있었던 만큼의 대화나 eye contact 보다도 오히려 더 줄어든 형국이 되고 말았으니.. 그로 인한 자괴감이 더 커지기도 했다. 이 실험의 첫 장은 내겐 '실패'였던 것일까..?

이런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가져본 후에 나름대로 내리게된 한 자그마한 결론은 이것이다.

그들 곁에 가까이서 살아보는 '환경적 변화'만으로 인간의 심성이 바뀌진 않는다...
마음이 온전히 수반되지 못한 상태에서 몸만 가까와지는 것만으로는 되레 마음이 더 멀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환경' 이전에 사람의 '마음'이다...

다행히 지금은 처음 이사온 몇 개월 후에 비하면 그들을 마주함에 있어 그때보단 훨씬 더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담게된 것 같긴하다. 하지만 그것은 여기에 오래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재즈와 블루스를 appreciate하게 되면서 이 '위대한 흑인음악'의 밑바탕을 마련했던 underprivileged 흑인들의 존재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된 이유가 더 컸던 것 같다. 즉, 이것도 결국엔 관심과 마음의 문제...
 
그치만, 아내를 보면서 느끼는 면은 조금 달랐는데, 그것은 마음이 이미 충분히 담겨진 경우라면, 환경(또는, 어떤 '구조적 틀')이 수반되는 일에 의해 기존의 마음도 더욱 자라나고 실질적 기여도 더 잘 이루어지는 시너지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러가지 돌아봄과 반성을 간직한 채, 이제 앞으로 펼쳐질 실험 Ch. 2를 기대해본다...


cf. Acknowledgement - A conversation with the mentor helped articulate the im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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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3 12:10

침묵으로 드리는 기도

침묵은 소란하다.

한동안 놓고있던 침묵을 다시 집어드는 순간
일상을 스쳐지나던 의미있고 의미없는 여러 일들이 무질서하게 메아리쳐 오는 것은 물론
마음 깊은 곳에 자리했기에 드러나지 않던 슬픔과 회한과 욕망과 불안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마치 질주하던 자동차가 정지하고자 할 때
뒤에 실은 물건들이 앞으로 쏟아져올 것만 같은 불안정함, 혼란스러움과도 같다.

그렇지만, 꾸준히 마음을 올려드리며 조금만 그곳에 머물러보자.

자동차의 모멘텀은 180도 방향을 바꾼 끝에 이윽고 정지 상태로 다가간다.
소란함은 잦아들고, 분주함도 멈추며, 눈물은 진정되고, 외침도 제자리를 찾아간다.
모든 것이 온전히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면 다시 분주하고 소란스런 세상으로 나아가도
즉각적으로 외부환경에 따라 좌지우지되지는 않는다.
마치 정속주행의 궤도에 오른 차에 달리는 속력은 있을지언정 가속도는 없는 것과도 같다.

이 때에는, 소란함도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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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9 12:57

next ten years...

경배 말씀 기도 묵상 분별 포기 순종
부르심 소명 절제 습관 prune refine focus
SJ 가족 약한자 사마리아인 빚갚기 생명 열매
넓이 깊이 영성 직관 contents 소통 inspiration
사랑 헌신 함께 joy 은혜 창조 참자유

(as of 6/2008)


말씀 기도 묵상 분별 순종
부르심 하나님나라 소명 우선순위 통합
육의가족 영의가족 영적스승 영적은인 한영혼
동행 직관 컨텐츠 소통 공감
참사랑 참자유 은혜 은혜 은혜

(updated, 8/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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