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09.03.18 [Family BS] 아브라함의 일생 (2)
  2. 2009.01.29 A conversation with Fr. Keating
  3. 2009.01.22 [music]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 by Furtwangler & Berlin Phil. (1943) (4)
  4. 2009.01.09 The David Psalms (10)
  5. 2009.01.07 Stanford BS - David Story (The books of 1,2 Samuel & Psalms) (4)
  6. 2008.12.02 자유롭다는 것
  7. 2008.11.05 [music] "Tea for two" - by Art Tatum (1933) (2)
  8. 2008.09.16 본회퍼가 말하는 공동체 (2)
  9. 2008.07.23 [Stanford BS] 바울의 제 3차 선교여행 preview (7/17/2008) (3)
  10. 2008.07.12 [music] Billie Holiday, "Fine and mellow" (1957) (2)
  11. 2008.06.19 Chuck Colson on Duke Ellington - "A jazz genius" (4/1999)
  12. 2008.06.04 [music] Bach, "Liebster Jesu, wir sind hier" BWV 731- by Albert Schweitzer (1936)
2009.03.18 21:24

[Family BS] 아브라함의 일생

11:27~32  [Toledoth] 데라의 자손들                                                                   우르 à하란

                (사래의 자식 없음이 언급됨; 데라/아브람의 “toledot” 시작)

                                               

12:1~9   언약의 시작: 하나님의 부르심  Up!  (75세)

               (부르심의 의미: 과거로부터의 단절; 믿음의 응답에 뒤이은 기근)                    à(가나안)벧엘

    12:10~20   애굽에서 사래를 누이라 칭함  Down!                                              à애굽

                       (하나님의 보호하심; 위기에 뒤이은 재산 형성)

        13:1~18   롯 이야기: 소돔으로 향하는 롯  Up!                                            à벧엘 à헤브론

                           (보이는 것 vs 보이지 않는 것; 물질적 부에 뒤이은 가족간의 이별)

            14:1~24   아브람이 롯과 소돔을 구함  Up!                                             헤브론(단까지 진출)

                                (민첩하고 전략적인 ‘9번’; 보이는 전리품 vs “상급”되신 하나님)

                15:1~21   하나님의 계획들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주심  Down! 

                                     (믿음으로 응답함 vs “언약”이 처음 언급되나 성립되지 않음)

                    16:1~16   아브람이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음  Down!  (86세)

 아브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아브라함의 집안 vs “살피시는 하나님”)

---------------- 17:1~22  Turning Point: ‘언약과 새 이름을 주심  (99세)  -----------

 아브라함                                  (“내 앞에서 완전하라”; “언약(covenant) 13 차례 언급)

                    17:23~27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음  Up! 

                                          (이스마엘과 이방에서 사온 자가 “다” 할례를 받음)

                18:1~21   하나님의 계획들에 대하여 알려주심  Up! 

                                     (아브라함과 친구처럼 의논하심;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 언급)

            18:22~33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함  Up! 

                                 (persistent peacemaker – 건강한 ‘9번’)

        19:1~38   롯 이야기: 소돔에서 나오는 롯, 소돔과 고모라 심판

                          (롯의 선함/ moral hazard/ 세상적 추구/ 자녀에 대한 영향)

    20:1~18   그랄에서 사라를 누이라 칭함  Down!                                      그랄

                     (두려운 아브라함 vs 그를 “생각하시는” 하나님; 닫힌 태를 여시는 하나님)

21:1~21   언약의 성취 (1): 아브라함이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음  Up!  (100세)

                (“말씀하신 대로” 신실하신 하나님; 첫 번째로 “그의 아들”을 믿고 맡기는 사건)

21:22~34  언약의 성취 (2): 아비멜렉과의 맹세 & 정착  Up!                           브엘세바

                (“무슨 일을 하든지 함께 계시는” 하나님;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하나님의 “영원하심” 인식)

22:1~19   언약의 성취 (3): 이삭을 바침 & 언약의 확증  Up!  (115?)

                (부르심의 의미: 미래로부터의 단절; 아브라함의 “바라봄”과 하나님의 “공급하심”;

                 하나님의 자기를 향하신 맹세와 언약의 불파기성)

    

22:20~24  나홀의 자손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가 언급됨)

 

23:1~20   소명의 성취 (1): 사라의 죽음 & 장지 구입  (137세)   

                (‘땅’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소명을 이룸)                                                 헤브론

24:1~67   소명의 성취 (2): 이삭의 아내를 데려옴  (140세) 

                (‘자손’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소명을 이룸)

 

25:1~10   아브라함의 말년과 죽음  (175세) 

                (이스마엘과 이삭의 “toledot”로 연결)  

             [Toledo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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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한 영적 legacy를 남기는 삶이 되시길 간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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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9 04:40

A conversation with Fr. Keating

"The key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은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잘 감당하고 있다는 증거는 고난과 persecution이다."

내가 만난 그는 사랑의 사람이었으며, 내가 듣는 그 또한 고난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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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23:42

[music]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 by Furtwangler & Berlin Phil. (1943)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청력 상실의 고난과 싸우며 불후의 명작들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로서 원래 연주방면으로 보다 많은 활동을 하고있던 그가 훗날 작곡에 '전념'하게 된 것도 어쩌면 이런 고난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선배 작곡가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그만의 '장르'를 개척할 뿐만 아니라 곡들 자체의 깊이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는 그의 'Middle Period'의 시작점이 청력 상실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 시기와 오버랩된다는 점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운명'으로 더 잘 알려진 5번 교향곡과 6번 '전원' 교향곡은 그의 청력 상실이 본격화되어가는 시점에 착상되어 거의 같은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처럼 서로 전혀 상반된 분위기의 두 곡을 동시에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다는 점으로부터도 당시 그의 내면에서 겪고 있었을 감정적 동요와 굴곡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7번 교향곡은 그가 더이상 아무 것도 들을 수 없게 된 시점인 1812년에 작곡되었다. 완전한 청력 상실이 이제 현실로 다가온 시점에서 쓴 첫 곡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전반적으로 밝고 역동적인 느낌을 주지만, 2악장에서 만큼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흐르고 있었을 절제된 아픔과 슬픔에 대한 단상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최근의 "베토벤 바이러스"나 예전의 "Mr. Holland Opus" 같은 드라마/영화를 보면 등장인물이 청력을 상실하는 장면에 이 2악장의 선율이 흘러나오는데, 이러한 곡의 배경을 생각하면 매우 적절한 선곡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세기의 연주가들 가운데 베토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의 하나는 단연 지휘자 푸르트뱅글러이다. 그는 레코딩 및 라디오 기술의 태동과 시대를 같이하며 '수퍼스타 지휘자' 시대의 문을 연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그의 생을 이야기할 때 나치 독일 치하에서 겪은 고난과 영욕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점은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일찌기 30년대 초부터 나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유태계 작곡가 힌데미스의 곡이 금지 처분되었을 때에는 맡고있던 여러 자리로부터 사임하기도 하였다. 그의 망명설이 흘러나오면서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으로부터 상임 지휘자 제안이 밀려들기도 하였지만, 막상 전쟁이 일어나고 나치의 잔혹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때에 그는 오히려 본국에 머물 것을 결정하였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자기 조국으로의 망명'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였고, 다른편에서는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나치의 선전에 활용된 면을 들어 그의 본국체류 결정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물론 나치 협력에 관하여 그에 대해 이루어진 모든 고발은 전후에 벌어진 재판 및 심사 과정에서 모두 무혐의로 선언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유대인 음악가들을 숨겨주고 탈출을 도왔던 사례들이 후에 알려지기도 하였다. 종전 직후에 예후디 메뉴힌과 같은 유태인 음악가들이 종종 그와 협연한 사실은 많은 유태인들이 심정적으로 그를 지지했음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오히려 그는 나치의 지배하의 조국에서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던 듯하다. 그가 종전 재판 과정에서 한 말을 들어보자.
 
"독일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고, 나는 독일 음악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이 위기 상황에서 가능한 한 살아남는 것이 나의 임무였습니다. 나의 음악이 (나치의) 선전에 오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독일인들에게 주어진 음악을 지켜야만 한다는 더 큰 우려 앞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바하와 베토벤, 모짜르트 및 슈베르트와 같은 혈통을 지닌 이 사람들은 이제 전면적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정권의 컨트롤 아래에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이 상황 안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그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판단할 수 없을 것입니다...

'히믈러(유태인 대량 학살의 기획/실행자)의 독일' 치하에선 베토벤 음악이 연주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히믈러의 공포 아래에 살고있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자유와 인류애라는 베토벤의 메세지에 그 누구보다 더 필요와 갈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었겠습니까? 나는 그들과 함께 머물기로 했던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습니다."

(from Wikipedia; "The Furtwangler Record" by John Ardion)

여기에 링크된 연주는 1943년도 베를린필의 전용 연주회장에서 이루어진 연주 실황녹음이다. 당시 나치는, 지휘자를 체포하겠다, 교향악단을 해체하겠다, 연주자들을 모두 군대에 보내겠다, 하는 식으로 협박과 회유를 반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43년 당시는 또한 유태인들이 수용소에서 본격적으로 죽어나가고 있는 시점이었으며, 그럼에도 나치 독일은 아직 유럽의 여러 곳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함'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악인'이 다름아닌 자신의 나라라는 자괴감, 그리고 자신들 각자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등이 아마도 복잡하게 연주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본 연주가 이루어진 베를린필 전용 연주장은 몇달 후인 44년 1월에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지게 될 만큼 그들은 전화의 한 가운데에 서있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현이 울고있는 듯한 환청에 잠기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이 연주에 대한 고난은 작곡자와 연주자들의 것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45년에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은 이 녹음 마스터를 포함한 베를린필의 연주녹음 테입들을 모두 소련으로 압송해갔다. 테입이 본 주인들의 손에 되돌아오기까지는 앞으로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데 걸려야할 40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렇듯 본 연주는 한 시대와 인간의 실존적 고난에 대한 여러가지 방향의 증언을 담고 있다.  

이 음악을 들으면 늘 떠오르곤 하는 한 사람이 있다. 이 음악이 연주되고 있을 같은 무렵 같은 독일 땅 어딘가에서 차가운 감방에 갇힌 채, 안으로는 "나는 누구인가?" 고뇌하고 삶으로는 '그리스도의 사람'다운 양심과 온화함을 몸으로 보여주던 디트리히 본회퍼가 바로 그이다. 그 또한 모든 망명 제의와 권유를 뿌리치고 "그들과 함께 고난의 현장에 있기 위해" 동포들이 있는 독일로 다시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피아노에 능했던 그도 음악을 무척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푸르트뱅글러가 말하는 '자유와 인류애'의 메세지가 그 이상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작곡도 연주도 녹음도 모두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있기에 우리에게 오늘날 또 다른 이야기를 불러일으켜주는 이러한 연주야말로 '인류 문화유산'이라고 불러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실존적 고난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자신들의 마음을 노래했고 다른이를 위로해온 음악이었기에, 오늘날 고난의 현장에 서있는 이들에게도 이 음악은 그들의 상한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지는 손으로서 동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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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9 06:30

The David Psalms

David Narrative

Occasion

David Psalm

Title

1Samuel 19:11-17

When Saul had sent men to watch Davis’s house in order to kill him

Psalm 59

Of David. A miktam.

For the director of music

1Samuel 21:10-15

When he pretended to be insane before Abimelech, who drove him away, and he left

Psalm 34

Of David.

When the Philistines had seized him in Gath

Psalm 56

Of David. A miktam.

For the director of music

1Samuel 22:6-23

When Doeg the Edomite had gone to Saul and told him: “David has gone to the house of Ahimelech”

Psalm 52

A maskil of David.

For the director of music

1Samuel 22:1,

  24:1-7

When he had fled from Saul into the cave

Psalm 57

Of David. A miktam

For the director of music

When he was in the cave

Psalm 142

A maskil of David.

A prayer

1Samuel 23:14,

  24:1

When he was in the Desert of Judah

Psalm 63

A psalm of David

1Samuel 23:19,

  26:1

When the Ziphites had gone to Saul and said: “Is not David hiding among us?”

Psalm 54

A maskil of David.

For the director of music. With stringed instruments

2Samuel 8:13-14

When he fought Aram Naharaim and Aram Zobah and when Joab returned and struck down twelve thousand Edomites in the Valley of Salt

Psalm 60

A miktam of David.

For teaching.

For the director of music

2Samuel 11-12

When the prophet Nathan came to him after David had committed adultery with Bathsheba 

Psalm 51

A psalm of David.

For the director of music

2Samuel 15:13-31

When he fled from his son Absalom

Psalm 3

A psalm of David

2Samuel 16:5-9,

  20:1

He sang to the Lord concerning Cush, a Benjamite

Psalm 7

A shiggaion of David

2Samuel 22

(same as the psalm without 18:1)

When the Lord delivered him from the hand of all his enemies and from the hand of Saul

Psalm 18

Of David the servant of the Lord.

For the director of music

 Rearranged; C. Hassel Bullock, “Encountering the Book of Psa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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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7 23:14

Stanford BS - David Story (The books of 1,2 Samuel & Psalms)

지난 3년 반 동안 스탠포드 성경공부 모임에서 공부한 책은 베드로전후서, 요한복음, 창세기(12장부터), 
그리고 사도행전이었다. 특별히 의도한 바는 없었지만, 사도 베드로-사도 요한-아브라함 및 족장들-
열두 사도들 및 사도 바울로 연결되는 인물별 맥락을 가져왔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런 연속선상에서, 이번에는 다윗의 일생을 한번 같이 조명해보자는 제의가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그동안 내러티브가 많이 다루어졌다는 점과 선지서가 아직 한번도 다루어져본 적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이사야서가 잠시 거론되기도 하였지만 결국 다윗의 일생을 중심으로 사무엘상하-역대상-관련 시편을
함께 보자는 쪽이 우세한 반응을 얻었다. 

작년에 10 개월간 공부했던 사도행전은 개인적으로 "인생이 바뀌는" 계기를 맞게하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었다. '다윗과 함께' 보내게될 금년은 앞으로 어떤 의미를 담게 될런지 사뭇 궁금해진다. 


Books of Samuel: An overview                                                               

 

1Sam 1-7:  Samuel’s birth and rule

1Sam 8-15:  Saul’s reign, failure, and rejection

1Sam 16-20:  David in Saul’s court

1Sam 21-31:  David as a political fugitive

2Sam 1-8:  David as king over Israel

2Sam 9-20:  David’s failure and its consequences

2Sam 21-1Kings 2:  Solomon’s succession

 

              

Samuel succeeds Eli  (1Sam 1-7)

   • Hannah’s song – my horn, my rock, grave, death, thunder, heaven, exalt, armed with strength,

                              darkness, feet, anointed one, gives the king, humble, proud, God’s uniqueness

   • Fall of Eli’s priestly line

   • God’s plaques and human efforts to stop them (1Sam 4:1-6:21)

   • Two cows offered as burnt offerings (after plaques ceased), using wood as fuel

                

          King Saul’s failure  (1Sam 8-15)

             • War against king Nahash of Ammon – triggered by Nahash’s humiliation

             • Saul’s sins, their uncovering, and condemnation by prophet Samuel

             • Saul makes excuses

                                  

                    David’s rise to popularity in Israel  (1Sam 16-20)

                       • Saul initially accepts David, then opposes him

                       • David is anointed by Samuel

                       • Michal’s marriage to David

                       • Members of Saul’s family were kind to David

                                                   

                              God in action to prepare David  (1Sam 21-31)

                                 • Saul sought to kill David, but was himself killed

                                 • David suffered innocently, but was being prepared to be a king

                                                                      

                    David’s rise to power in Israel  (2Sam 1-8)

                       • Saul’s kingdom initially opposes David, then accepts him

                       • David is anointed by Judah

                       • Michal’s re-marriage to David

                       • David was kind to members of Saul’s family

                                                    

          King David’s failure  (2Sam 9-20)

             • War against king Nahash of Ammon – triggered by Nahash’s humiliation

             • David’s sin, its uncovering, and condemnation by prophet Nathan

             • David repents

                                 

Solomon succeeds David  (2Sam 21-1kings 2)                 

   • David’s song – my horn, my rock, grave, death, thunder, heaven, exalt, armed with strength,

                           darkness, feet, anointed one, gives the king, humble, proud, God’s uniqueness

   • Fall of Eli’s priestly line

   • God’s plaques and human efforts to stop them (2Sam 21, 24)

   • Two oxens offered as burnt offerings (after plaques ceased), using wood as f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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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2 10:13

자유롭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유롭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이야말로 나를 그분께 묶어주기 때문이다.
오로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는 자유롭다.

-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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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5 06:36

[music] "Tea for two" - by Art Tatum (1933)

Art Tatum은 미국 재즈 음악의 비교적 초창기인 30 년대에 등장하여 클래식, 스트라이드, 스윙, 부기우기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을 선보인 아티스트이다.

빠른 손놀림과 정확한 박자 감각, 그리고 동일한 곡이지만 코드 진행의 변화를 주어 독특한 느낌을 주는 방식의 화성 응용법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40 년대 비밥/모던재즈 혁명의 주역들에게도 큰 영감이 되었다. 그의 영향력은 특별히 아티스트들에게 더욱 커서, 모던 재즈의 꽃이 만개한 50 년대 중반에 한 잡지사에서 현역 재즈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재즈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하고 설문을 하였을 때 2/3가 그의 이름을 언급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창조적 음악성과 실력은 클래식 음악의 대가들에게도 정평이 나있어서, 토스카니니, 호로비츠, 루빈스타인 등 당시 뉴욕에 살았던 음악가들도 그가 연주하는 클럽을 즐겨찾곤 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에 대하여, 재즈 음악 씬에서 그 자신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인 오스카 피터슨, 데이브 브루벡, 테디 윌슨이 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자 (from wikipedia):  
   
 오스카 피터슨 - "If you speak of pianists, the most complete pianist that we have known and possibly will know, from what I’ve heard to date, is Art Tatum."

 데이브 브루벡 - "I don't think there's any more chance of another Tatum turning up than another Mozart."

 테디 윌슨 - "You get all the finest jazz pianists in the world and let them play in the presence of Art Tatum. Then let Art Tatum play ... everyone there will sound like an amateur."

그는 흑인으로 거의 눈이 실명된 상태에서 태어났으며, 거의 독학으로 피아노를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장로 부부인 부모 밑에서 어릴 때부터 교회 음악을 접하며 자라난 것이, 척박한 조건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정신적인 힘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아마도 남보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세워나갔기에 거꾸로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할 수 있었을 것이다.

"Tea for two"는 1933 년에 녹음한 그의 첫 데뷔 녹음 4 곡의 하나로, 당시 잘 알려진 곡을 그의 스타일대로 jazzy하면서도 classical한 멋이 풍기도록 편곡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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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11:49

본회퍼가 말하는 공동체

“The physical presence of other Christians is a source of incomparable joy and strength to the believer... The believer feels no shame, when he yearns for the physical presence of other Christians.”

“Christianity means community
through Jesus Christ and in Jesus Christ. No Christian community is more or less than this… We belong to one another only through and in Jesus Christ.

- from Life Togther


 

Human community
Spiritual community
자기 자신을 위한 동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동기
욕망에 근거를
진리에 근거를
계산적이고 agenda있는 섬김
단순하고 겸손한 섬김
형제자매를 자신에게 복종시킴
형제자매에게 겸손히 복종함
상대의 이미지를 스스로 만듦
그분에게 받은 그분의 이미지로 인식
말씀+사람의 영향력이 결속케
말씀이 결속케 (주께로)
Immediate relationship
No immediate relationship
필요한 놓아주지 못함
자유함
유익관계의 상실시에 중단됨
유익을 넘어선 지속
Human absorption
그리스도의 소유일 자유 인정
원수를 사랑할 없음
원수를 사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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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명저 "Life Together"에 나와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참다운 '영적 공동체'와 '인간적 공동체'에 관한 비교이다. 본회퍼는 당시 나치 치하에서 독일교회가 변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핍박 상황 아래에서 복음의 가치를 지키고자 고백교회 신학교 공동체와 함께하면서 이 책의 묵상들을 하게 된다.  
 
참된 '영적' 공동체성이 상실되어가면 공동체의 모습에 변질이 일어나는데, 일례로 리더 자신의 '사역적 커리어'라는 욕망이나 어떤 특정한 결과들을 염두에 둔 계산적 아젠다가 말씀이 제시하는 바와 공존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그는 경고하고 있다. 즉, 말씀의 영향력과 사람의 영향력이 공존하는 형태가 되어, 사람의 영향력만 있는 경우에 비해서도 오히려 덜 위험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게 된다. 그 결과로, 구성원들은 사람의 아젠다와 목적에 복종하게 되고, 사람들의 이미지는 그리스도의 이미지의 반영이기 보다는 그러한 아젠다의 도구로서 삼아지게 된다. 이런 경우, '조직'은 필요한 자를 놓아주기 어려우며, 거꾸로 더이상 도움이 되지않는 사람과 함께할 수도 없게 된다. 또한, '조직'의 유지를 위해 리더 개인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활용하는 모습과 인간적인 매력을 (세상적인 측면으로서의) 강화하고 호소하는 'human absortion'이 기능하게 된다. 이 모든 결과로 공동체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는 공동체가 된다...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당시 나치 치하에서의 상황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본질적 의미에서도 다르다고 결코 안심할 수만은 없는 모습들을 오늘날 조국의 교회와 주변의 공동체들로부터 그리 드물지만은 않게 볼 수 있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 더 무서운 것은, 성령의 다스리심에 충분히 굴복하지 않고 있을 때에는 내 안에서조차 그러한 어두운 면모가 언제든지 튀어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일이다. 당시 일차적으로 히틀러를 두고 했던 본회퍼의 이야기들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기억되어야할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가진 권위의 근거와 권한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은 리더는 잘못된 리더(misleader) 되기 쉽다. 사람들은 자기가 따르는 지도자를 우상화하고자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되는데, 이에 스스로 굴복할 리더는 하나님을 모방하는 자의 자리에 앉게 되며,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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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3 00:53

[Stanford BS] 바울의 제 3차 선교여행 preview (7/17/2008)

1. 강론의 주 내용은 '하나님 나라' (19:8 & 20:25)
~ 그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 "예수는 그리스도"(18:5)가 주 내용이었던 것과 관련하여 어떤 특정한 확장성을 지니는가?
~ "하나님의 도"(18:26)와는 어떤 관련을 가지는가?

2. 사역의 내용이 기존의 '18번'(i.e. "reasoning," "persuading," "teaching")에서 좀 더 다양해지고 있다.
~ '성령'이란 말이 다시 빈번히 등장하는 것과는 어떤 관련이 있나?

3. "바울이 딴 사람이 되었다!" --> 그 하이라이트는 20:18-35에 나타난 장엄하고 원숙한 '한 사역자의 고백'
~ 그의 분별력이야 워낙 알아줄만한 것이었다 치더라도, 어찌 이리 자기 소명에 대해 확신에 차있는가?
~ 그가 인격적 원숙함의 경지에 도달한 '비결'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그 단서는?

4. 바나바와 결별 후 줄어들었던 여행 기간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 1차(3년), 2차(2년), 3차(4년), 4차(5년)
~ 바울은 '부흥사'에서 '목회자'로 변신(?)한 것이었을까?
~ 고린도에서 시작된 그 무엇이 에베소에서 무르익은 것이었을까? 그때 무슨 일들이 있었길래..?

5. 에베소에 '부흥'이 일어났다! --> 근거는, 죄를 회개함(19:18)과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음(19:20).
~ 오늘날 '원리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볼 만한 것은 무엇인가?  한 사역자로서는?

6. 로마로! --> 그는 "성령에 매여"(20:22) 있으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 완전히 align되어 있다...
~ 로마에 살다온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영향은? 그들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 자신의 소명이 '하나님 나라'란 큰 그림에 어떻게 mapping되는지 깨달은 것은 어떤 계기와 시점에서였을까?

7. 사도행전에는 각각 다른 상황에 대해 주어진 메세지 '샘플' 전문들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 그 가운데서도 아마 가장 어려운 것은, 세운 목양자들에게 자신을 예로 권면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 예수님의 마지막 메세지(요한복음 21장)의 echo에 대한 바울 사도 자신의 감회는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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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2 14:02

[music] Billie Holiday, "Fine and mellow" (1957)



빌리 할리데이는 참으로 드라마틱한 삶을 산 재즈 보컬리스트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엄마는 불과 열세 살의 '철부지' 소녀였고, 그의 아빠는 몇 년 동안의 동거기간 후에 곧 가족들을 떠나는 "무책임한" 열여섯 살 십대 소년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할렘에서 엄마와 함께 먹고살기에 급급한 하루하루를 살면서 마약, 매춘, 폭행, 감옥생활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가수로서 성공하고난 후에도 남편(들)로부터의 abuse와 마약중독에 시달리곤 했다. 아마도 1920~30 년대의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 여성으로 살았던 많은 이들이 그와 비슷한 연약함과 고단함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Fine and mellow"는 질곡의 삶을 살았던 그가 남긴 몇 안되는 자작곡의 하나로, 그 자신의 삶을 전통적 블루스-재즈의 틀 안에 있는 그대로 담아낸 투명한 자전적 고백이다. 여기에선 그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쏟아내는 사랑받고픈 자의 목마름과 좌절감이 삶의 육성으로 묻어나온다.  

 "My man don't love me, he treats me, oh, so mean...
  But when he starts in to love me, he's so fine and mellow."

 "Love will make you drink and gamble, make you stay out all night long.
  Love will make you do things that you know is wrong."

 "Treat me right, baby, and I'll stay home everyday..
  But you're so mean to me, baby, I know you're gonna drive me away."

 "Love is just like the faucet. It turns off and on.
  Sometimes when you think it's on, baby, it has turned off and gone."

건강 악화로 1959년 44세의 나이에 노환에 가까운 건강 상태로 생을 마감한 그의 '50 년대 performance에는 많은 이들의 호불호가 엇갈린다. 한창 때와는 크게 비교될 정도로 피폐해진 목소리와 기력 때문에 '40 년대 결과물들에 비해 음악적으로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메마르고 연약한 목소리를 상쇄하는 더욱 풍성해진 표현력과 empathy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생의 매 시점마다 '그 자신'이었다는 면에서 모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 이 곡은 전통적인 '12-bar 블루스'(열두 마디가 한 코러스를 이루어 기본단위를 구성하는 형태의 블루스)의 형식과 내용적 틀에 충실한 곡으로, 여기서의 연주는 각각의 연주자들이 기본적으로 한 코러스(i.e. 12 마디)씩을 담당하는 형태로 반복된다.

 A1  /  B1 - B2
 A2  /  B3 - B4
 A3  /  B5 - B6
 B6'  /  A4 - A4'

(A는 빌리 할리데이가 담당하는 보컬 파트를, B는 각 솔로악기를 맡은 연주자들의 즉흥연주를 가리킨다.)
 
 B1 -  Ben Webster (tenor saxophone)
 B2 -  Lester Young (tenor saxophone)
 B3 -  Dick Dickenson (trombone)
 B4 -  Gerry Mulligan (baritone saxophone)
 B5 -  Coleman Hawkins (tenor saxophone)
 B6 & B6' -  Roy Eldridge (trumpet)  <-- 아마도 노장을 우대한 듯...

이 비디오 클립은 CBS의 1957년도 TV 기획물인 "The Sound of Jazz" 프로그램에 실린 한 부분으로,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드문 라이브 재즈 영상물들 가운데서 첫 손에 꼽히는 '보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연주자 한명 한명은 재즈의 역사를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가들로, 그들의 이름을 듣고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낄 재즈 애호가들이 많을 것이다.

듀크 엘링턴 밴드와 카운트 베이시 밴드에서 활약했던 소위 '3대(?) 색소폰 거장' 벤 웹스터, 레스터 영, 콜맨 호킨스와 '쿨 재즈'의 선봉장 제리 멀리건, 스윙 시대의 대표 주자라고 할만한 트럼펫의 로이 엘드릿지와 드럼의 조 존스... 올 스타를 모아놓았다고 해서 그 결과도 꼭 최고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 연주의 경우는 올 스타가 모여 만들어낸 명연주라는 면에서 어쩌면 흔치않은 예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여기에 나오는 빌리 할리데이와 레스터 영은, 같은 해에 생을 마감한 그들이 죽기 2년 전의 모습들로,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이 하나의 기록만으로도 후세에 훌륭한 재즈 뮤지션으로 기억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백조의 노래'를 선보이고 있다. (이 둘은 당시 서있기 힘든 건강상태 때문에 앉아서 연주하도록 배려되었다.)  빌리의 보컬은 다른 악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당한 하나의 '악기'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모두의 즉흥 연주가 탁월한 가운데에서마저도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레스터 영의 연주는(두 번째 솔로) 어떤 한 평론가의 다소 열광적인 표현에 따르면 "한 번만 들어도 DNA에 새겨지듯 기억되는" 명연주이다. (And he adds, "Lester Young stole the whole show with that 38 seconds!" - Ken Burns documentary "Jazz")  20 년간이나 함께 연주해온 레스터로부터 지금 막 펼쳐지고 있는 이 연주가 어떤 의미인지를 빌리는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기쁘게 반응하는 그의 얼굴을 이 비디오에서 볼 수 있는 점도 잔잔한 감흥을 주는 대목이다.    

인생의 무게가 실린 음악...
화려하고 상업적인 음악의 홍수 속에서 한 잔의 '마실 물'을 찾기란 요원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시대이기에, 자신들의 삶의 질곡과 고난의 한 가운데에서 물에 빠진 이가 지푸라기를 붙잡듯 붙잡은 결과물이었던 '그들의' 음악은 흑백 영상에 담긴 빈약한 사운드이건만 오늘날에도 시공을 초월한 어떤 메세지들을 더욱 힘있게 전달해준다.

흔히 재즈는 '자유'의 음악이라고들 한다. 
그들은 struggle하였고, 자유로운 영혼을 노래하고자 하였으며, 그래서 때로 '음악'이라는 이름의 '진주조개'를 잉태하기도 하였지만, 과연 한 '인생'으로서 그토록 갈망하던 참 자유와 참 사랑을 끝내 맛보았을까? 그런 생각에 더욱 인간적이고 마음이 울릴 수 밖에 없는 '삶의 testament'로서의 그들의 음악..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솔직하였고 치열하였기에, 그들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 만들어낸 이 '흑인 음악'은 인간사의 한 위대한 다큐먼트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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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9 23:33

Chuck Colson on Duke Ellington - "A jazz genius" (4/1999)

A JAZZ GENIUS
The Music of Duke Ellington

By Chuck Colson
4/29/1999

Today marks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birth of Duke Ellington, one of the giants of twentieth century music. Few would contest the claim that Ellington contributed more to the development of jazz music than anyone else who ever lived. But there is one thing about him that is not widely known: his abiding Christian faith.

Ellington was raised in a deeply Christian home. Every Sunday his mother took him to at least two church services, and she frequently told her son that he was blessed and that God would take care of him. The Duke never forgot those early lessons.

As a young man, Ellington immersed himself in the Scriptures. A friend from Ellington's early days in Washington, D.C., recalled how the musician would often come home after a performance and read the Bible while taking a bath, and continue reading until the water turned cold. Ellington was meticulous about saying grace before meals, and he once wrote that "the greatest thing one man can do for another man is to pray for him."

During his middle years Ellington was not exactly a model Christian. He was thought to be somewhat of a womanizer, and he didn't attend church regularly. But according to biographer James Lincoln Collier, "there can be no questioning the sincerity of his religious feelings."

It was in 1965 that Ellington made his deep faith public. That year he was commissioned to do a liturgical composition for the inauguration of San Francisco's Grace Cathedral. This work, the first of three sacred concerts, signaled a permanent change for Ellington.

"This music," he declared,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ve ever done or am ever likely to do. This is personal, not career. Now I can say openly what I have been saying on my knees."

The centerpiece of this concert from Duke Ellington: A Concert of Sacred Music from Grace Cathedral is a 15-minute piece entitled "In the Beginning God." There was also an a cappella version of the Lord's Prayer, and the closing number, featuring famous tap dancer Bunny Briggs, is called "David Danced Before the Lord with All His Might."

From then on Ellington saw himself as "God's messenger," and he dedicated his last years to serving God through his music, writing three sacred concerts before his death in 1974.

The reception to these works was mixed. Some religious people thought jazz inappropriate for praising God. And many jazz musicians thought praising God inappropriate for Duke Ellington.

When people complained that Ellington's third sacred concert was taking too long to complete, Ellington defended his meticulousness, saying "You can jive with secular music, but you can't jive with the Almighty."

Ellington joins other musical giants like Bach and Mendelssohn as geniuses who sought to serve God through their music. Music historians rarely mention Ellington's faith but you and I ought to reclaim cultural heroes like Duke Ellington and proclaim the truth about his beliefs.

Why not celebrate the Duke's birthday today by purchasing his sacred concerts. Listen to them with an unsaved friend who likes jazz. After all, God has never been praised in quite the same way... before or since.


Copyright (c) 1999 Prison Fellowship Ministries (http://www.breakpoin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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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4 00:50

[music] Bach, "Liebster Jesu, wir sind hier" BWV 731- by Albert Schweitzer (1936)

슈바이처 박사는 의사, 인류학자, 신학자로서, 자신의 삶으로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에게 헌신했을 뿐만 아니라
구미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좋은 동기로' 아프리카를 향하도록 만들었던 실천적 지성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에 비해,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가 또한 당대에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 오르가니스트였다는 점이다.

그는 매일 아침 이른 새벽에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서 바하의 곡을 오르간으로 연주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강요함이나 서두름 없이 원주민들의 영혼을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가꾸어 주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그의 30년대 바하 곡 연주 음반들은 지금까지도 전해오는 '인류의 문화유산'인데, 작품번호 731번 코랄전주곡
"Liebster Jesu, wir sind hier" (Beloved Jesus, We are Here)는 그 가운데서도 백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연주 & 녹음: 1936년)

클래식에 큰 흥미가 없더라도 들으면 느낄 수 있도록 '큰 사랑'과 '영혼의 고귀함'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이 곡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의 마음 또한 훈훈하게 적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작품, 최고의 연주이다.

오늘날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운, 참 인간의 '영혼'과 '정신'의 무게가 담긴 음악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런지...


('소개한 이'를 능가하여 appreciate하는 '소개받은 자(SJ)'와 이 유산을 함께 누림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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