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0.11.15 NYCP inaugural concert (10/2-3/2010) (2)
  2. 2010.05.26 요즘 듣는 음악들 - May 2010 (4)
  3. 2010.04.29 음악 평론에 관한 단상 (v.1.2) (4)
  4. 2010.04.14 MTT와 SF Symphony의 말러 2번 공연 - SF Chronicle (3/14/10) (9)
  5. 2010.04.14 정명훈의 샌프란시스코 Ravel 공연 - SF Classical Voice (3/7/10)
  6. 2010.04.12 [김마에의 음악 가이드] 실내악, 현대음악, 비올라... (11)
  7. 2009.03.27 [music]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명연주? (3)
  8. 2009.01.22 [music]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 by Furtwangler & Berlin Phil. (1943) (4)
  9. 2008.11.19 [music] "St. Thomas" - by Sonny Rollins (1956) (3)
  10. 2008.11.05 [music] "Tea for two" - by Art Tatum (1933) (2)
  11. 2008.07.12 [music] Billie Holiday, "Fine and mellow" (1957) (2)
  12. 2008.06.19 [music] Duke Ellington, "Take the 'A' train" (1956)
2010.11.15 21:30

NYCP inaugural concert (10/2-3/2010)


10
주말 맨해튼의 장소에서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즈(이하 NYCP) 창립 연주회가 있었다. 음악가들이 직접 청중들에 다가간다는 취지를 바탕으로 여러 장소를 돌며 무료 공연으로 모든 연주회를 진행하는 그들의 연주 실험’이 이제 막이 오른 것이다.

NYCP
창단 동기와 관련해서 지휘자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인근 공공도서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던 어떤 노신사와 몇 번 마주치게 되었는데, 음악에 기울이는 순간 만큼은 마치 세상의 어떤 시름도 초월한 것처럼 보였던 그의 표정을 통해서 NYCP의 사명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였. 삶에 지친 이들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동기 하나되어 이제 이렇게 함께 무대에 젊은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전해오는 신선한 감동이 있었다.

 

연주회를 위해 선곡된 곡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을 그들이 담아내고자 하는 생각과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볼 있었다. 각각 개별적인 곡들의 합은 상호 유기적인 어떤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되었는데, 요약하면, '젊은 음악''모차르트' (또는 '전통의 새로운 확장'), '음악에 대한 애정'  가지 키워드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았. 그리고, 이는 다시 그들 스스로 정체성 및 지향점 연결되는 듯 보였다. 즉,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프로그램을 보는 그 자체로 그들의 출사표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쇼스타코비치의 “Two Pieces”(Op. 11) 제목 그대로 두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가 평생을 흠모한 바흐의 푸가를 듣는 듯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알레그로와 현대 아방가르드적 분위기의 스케르초가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 약관 19세의 나이에 작곡가로서 인상적인 데뷰를 하게 만들었던 1 교향곡과 거의시에 작곡된 젊은 음악’으로, 곡을 통해 비로소 현대음악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몸담게 되었다고 친구에게 고백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쳐나가기 시작한 청년 작곡가의 기상이 녹아있는 곡을 자신들의 연주회 곡으로 선택한 NYCP 선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메세지처럼 다가왔.

 

번째 곡인 슈베르트의 바이올린을 위한 론도역시 작곡자의 나이 십대 마지막을 장식한  하나의 젊은 음악이다. 협주곡이 없는 슈베르트의 음악들 가운데서 드물게 협주곡 형태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는 듯한  분위기도 주로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많은 슈베르트의 작품들 가운데서는 드문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결코 유명세나 특별한 주목을 누리지 못하고 수줍게 숨겨져(?)있던 이런 작은 보물을 실제 연주를 통해 재발견하는 일은 즐거운 경험이다. 설득력을 가지고 빛을 발하듯 연주한 독주자의 기량이 돋보이는 연주였던 만큼 연주효과도 뛰어나서 청중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번째 곡은 29세의 젊은 작곡가 클린트 로드햄이 NYCP 위해 작곡한 “Driving Music”이란 곡으로 이번 공연에서 초연되었다. 가장 미국적인 일상의 단면이라고 있을 장거리 운전에서의 여러가지 느낌과 무드의 반전을 음악으로 표현한 곡인데, 마치 베토벤의 대푸가처럼 여러 파트가 안에서 계속적인 진화와 진전을 이루는 형식이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의 아방가르드적인 분위기는 앞서 연주된 쇼스타코비치의 스케르초와도 연결되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재능있는 젊은 음악가의 음악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박수를 보내는 일은 시대를 살아가는 애호가들에게 영광스럽게 부여된 특권이자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았. 

 

마지막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였다. 이 곡과 동시에 작곡된 유명한 “1812 서곡”에 대해서는 작곡자 자신의 흥미로운 코멘트가 남아있다. 따르면,서곡 깊이도 얕고 안에 담긴 예술적인 가치도 적지만 세레나데’ 만큼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감동으로 작품이라는 것이. 이전까지 개인적으로 익숙했던 곡의 연주 스타일은 대편성 오케스트라 버전이었는데, NYCP는 느리지 않도록 잡은 템포를 바탕으로 완급의 변화와 리듬감을 살린 소편성 해석으로 이전에 미처 알지못한 서정성과 발랄함을 맛보도록 도와주었다. 작곡자가 모차르트를 흠모하며곡을 했다고 언급한 사실을 고려하면, 그 느꼈을 감동은 어쩌면 이런 방식일 때 원형에 더 가깝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휘자까지 합해서 14명으로 구성된 챔버 오케스트라의 장점은 오케스트라적 풍성함과 아울러 실내악적인 디테일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점이 아닐까 한. 공연의 장소는 상대적으로 잔향이 적은 현대적인 공간이었던 데에 반해 둘째 공연장은 공간이 크고 울림이 많은 유럽의 성당같은 곳이었다 장소에서 연주 같은 프로그램 곡들이 서로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왔지만, 거기에 더하여 소편성 챔버 오케스트라야말로  가지 상반된 공간적 여건에 다재다능하게 대응하기에 좋은 형태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도 흥미로운 체험이었. 잔향이 적은 곳에서는 오케스트라적 풍성함이 플러스가 되고 울림이 많은 공간에서는 반대로 실내악적 측면이 플러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장소로 사람들을 찾아가게 NYCP에게 챔버 오케스트라라는 구성은 매우 적합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

 

심리학자 융은 음악 안에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음악이 영혼의 영역에 관련되어 있다고 믿는다. 음악에 담겨진 감동이 주저앉은 마음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 안에 담긴 생명력이 영혼의 터치와 치유로 이어지는 일들이 NYCP의 젊은 음악인들을 통해 이곳 저곳에서 많이 일어나게 되기를 바란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잔의 맑은 물'을 직접 선사하기 원하는 그들의 포부에 마음의 박수를 전한다. 나 또한 음악의 힘을 믿기에, 그런 소망들이 단순한 꿈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함께 기대도 해본. 더 나아가서, 내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순회공연도 성사되어 서부의 사람들도 찾아가는 젊은 음악’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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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6 21:22

요즘 듣는 음악들 - May 2010

1. 베토벤 - 9 교향곡 (벤스케, 무티) 
~ 클래식 음악을 듣는한 앞으로도 베토벤 교향곡은 어느 버전이든 최소한 한 가지는 늘 곁에 끼고 살게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엔 '구' 버전 가운데선 무티, '신' 버전 가운데선 벤스케 연주에 제일 손이 자주 간다. 무티의 연주는 중고 가게에서 아무 기대없이 한 장에 1불 주고 샀는데, 그 뜨겁고 단단한 연주 퀄리티에 깜짝 놀랐다. 벤스케 전집은 이 곡을 전혀 다른 곡처럼 신선하게 듣게 해주는 맛이 있어 좋다. 정격연주 식의 깔끔함을 살리면서도 대편성의 다이내믹함과 아다지오의 풍성함을 하나도 잃지 않았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볼륨 키워놓고 들으면 타악기 - 특히 팀파니 - 소리도 정말 일품이다.  

2. 말러 - 9+ 교향곡 (아바도)
~ 기념 연도가 2년이나 지속되는 금년과 내년엔(탄생 150주년 & 사망 100주년) 어차피 여기저기에서 말러 이야기를 계속 듣게될 것임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 흐름에 적극적으로 발맞추어 그의 음악 전체를 한번 조명해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 같다. 나의 경우에 말러의 음악에 본격적으로 입문하도록 귀를 열어준 연주는 아바도의 1번이었다. 아바도의 묘미는 뭐랄까? 번스타인 식의 '오버' 없이도 충분히 말러의 '드라마'를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렇게 미묘하게 템포를 변화시키면서도 전체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려하게 이끌고가는 점과 디테일에 강한 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나 싶다. 연로하신 아바도 선생이 살아계시는 동안 그가 말러 지휘하는 모습을 한 번쯤 볼 수는 있을런지...  

3. 하이든 - 피아노 3중주 (하이든 트리오 아이젠슈타트)
나이가 든 것일까? 요즘 스스로에게서 발견하는 경향 가운데 하나는, 옛 거장들이 말년에 남긴 소위 중후장대심오한 연주들보다 현대 젊은 연주자들의 정갈하고 때로 소박한 연주들에 훨씬 마음이 끌리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곡을 처음 접할 때 어떤 연주로 시작하느냐가 나름 입맛을 결정하는 데에 끼치는 영향이 있는 것 같은데, 요즘 실내악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고 있는 만큼 젊은 연주를 선호하는 경향을 실내악 쪽에서 더 두드러지게 느끼는 것 같다. 쉬운 실내악부터 도전해보라는 SK의 조언에 따라서 하이든 트리오 전집을 찾던 중 사실은 '싼 맛에' 이 젊은 연주자들의 전집 세트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들을수록 "이 이상 더 무엇을 바라리오?"하는 느낌을 받게된다. 그 유명하다는 보자르 트리오나 안드라스 쉬프 연주로도 몇 곡 들어보았지만 굳이 여기서 더 나은 버전을 찾아 헤멜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다. 이런건 콜렉터에게 그리 자주 찾아오는 일이 아닌데... 

4. 베토벤 - 중기 현악4중주 (에머슨, 타카슈 사중주단)
모든 후세 작곡자들의 영감이자 영원한 현대음악이라는 베토벤의 사중주인 만큼, 실내악을 배우려면 이 부분을 익혀나가는 진도도 게을리해선 안된다는 뭔가 책임감(?)같은 것을 느낀다. 베토벤의 경우, SK는 중기부터 시작해보라고 하고, DK는 초기-후기-중기의 순서로 들어보라시니, 일단은 먼저 컨설팅한 'SK 접근법'을 따라보고 그 후론 'DK 감상법'으로도 들어보고자 한다. 중기 곡들 가운데선 라주모프스키 3번, 그 가운데서도 마지막 악장에 귀가 번쩍 띄인다. 특히 에머슨의 연주로 들으면 이건 거의 하드락의 경지라고 해야할 듯 하다. 에머슨 연주는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해석에만 익숙해지면 왠지 decadant한 초콜렛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듯한 죄책감(?)이 들 것 같기도 해서 '우리 시대의 모범'이라고들 하는 타카슈와 함께 듣고있다.

5. 닐센 - 교향곡 2,4번 (2번-굴드, 4번-마르티농, 전곡-쿠차)
~ 김마에 가라사대 "닐센은 저평가 우량주"라는데 어쩌겠는가, 열심히 들어봐야지.. 우선은 추천곡인 2번을 시작으로 들어보니 약간은 영화음악스럽기도 하고 상당히 괜찮게 들린다. 북구판 '발라드의 황제'인 그리그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게스도 들고.. 사실 최근들어 그리그, 시벨리우스는 물론, Gade, Atterberg, Stenhammer, 그리고 최근의 Rautavaara에 이르기까지 '북구' 아저씨들과 조우하는 인연이 왠지 잦은 편이다. 고전-낭만 계열에서야 독일-오스트리아 쪽이 워낙 꽉잡고 있었지만, 국가/민족별로 다변화하는 19-20세기 음악의 경우엔 이렇게 지역별로 들어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접근 방법인 것 같다.       

6. 스트라빈스키 - 신고전주의 시대 작품들 (Craft) 
~ 음열주의 작곡가들 작품에 기가죽은 후 '현대음악가는 다 무서운 사람들'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때에는 스트라빈스키도 막연히 같은 족속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 알고볼수록 참 재미난 분이다. 다재다능하다 해야할지, 약삭빠르다 해야할지.. 어떤 때는 전위적인 사람 같아보이다가도, 다른 때 보면 바로크로 낭만파로 변신하면서 모든 색을 다 보여주는 카멜레온 같아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음악의 가능성을 다 실험해봤다는 말에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다양성과 적응성을 중시하는 미국문화 코드에 딱 맞았기에 그러한 성공을 누린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궁금함이 들기도 한다..    

7. 존 콜트레인 - 1959년 앨범들
~ 1956년 앨범들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들어온 '콜트레인 전곡 듣기'의 진도가 재즈 역사에서 특별히 의미심장한 한 해였던 1959년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는 사람이라면 애틀랜틱 시대의 최고작 "Giant Steps"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유명한 "Kind of Blue"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재즈 역사상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최고의 명반들이자 베스트셀러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호기심과 놀라움이 가는 대목은, 겨우 몇 달 간격으로 어떻게 '극한 하드밥'(Giant Steps; 매 한두 음마다 조 바꿈)과 '모드음악'(Kind of Blue; 열 마디 스무 마디 가도 조 절대 안바꿈) 사이를 왔다갔다할 수 있었는지 하는 대목이다. 그는 남보다 늦은 30세에 녹음을 시작해서 남보다 이른 40세에 사망할 때까지 10 년 동안 매 2-3 년을 주기로 스타일이 확확 달라지곤 했다. 연주 인생 자체가 실험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각 연도별로 스타일은 매우 달랐지만, 자기철저함을 지닌 장인정신의 소유자였던 만큼 각 스타일 안에서 추구한 완성도의 레벨만은 매우 일관적이었다고 생각된다. 

 
cf. 다음 예약곡들 (언제가 될런진 모르겠지만) - 드보르작 사중주집, 슈베르트-슈만-브람스 라인의 실내악곡들, Art of Fugue 다양한 악기로 듣기, 빌 에반스 트리오(59-61년) 


6/13 업데이트)
1. 서로 비슷한 에머슨-타카슈 비교보다는 대비가 더 뚜렷한 이탈리아노 또는 베그 등 전세대의 명연주들과 비교하면 어떻겠느냐는 추천이 있었음.  
2. 닐센은 덴마크 출신이므로 좁은 의미에서 '스칸디나비아'라고 볼 수 없다는 지인의 지적에 따라 '북구'로 수정함.
3. 비록 스트라빈스키의 스타일이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스타일을 뛰어넘는 관현악법과 특히 리듬이라는 '시그니처'가 있음에 눈떠보라는 지적이 있었음. (시간을 두고 계속적으로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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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9 17:18

음악 평론에 관한 단상 (v.1.2)

음악을 사랑하는 한 애호가로서, 듣고싶은 음반을 다 구입할 수 없는 한 구매자로서, 그리고 음악이 주는 행복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픈 소박한 바램을 가진 한 이웃으로서, 이래저래 평론가들이 이야기하는 곡/연주 해설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평론가도 천차만별이라서, 자기의 비평에 대한 나름대로의 근거를 디테일하게 대는 '실질적인' 사람에서부터, 신중하고 공정한 입장을 견지하느라 좋다는건지 나쁘다는건지 조차 알기 어려운 '모호한' 사람과, 자기 주장은 매우 강한데 왜 그런지에 대한 근거는 밝히지 않는 '권위적인' 사람에 이르기까지 천양각색의 스타일들을 만나게 된다. 

최근 한 연주회에서 감상한 말러 교향곡 2번을 다시 한번 제대로 비교 청취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음반평을 참고하다가 흥미로운 경우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한 연주에 대한 두 곳의 평가가 다를 뿐 아니라 평론의 스타일 자체도 정반대인 경우였다. 둘 다 간편한 인터넷 서취가 가능해서 많이 알려진 웹진들이며(allmusic.com, classicstoday.com) 대상 음반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루체른 페스티발 실황연주 말러 2번이었다. 

먼저, 전자의 경우 이 음반에 만점을 주었다. http://allmusic.com/cg/amg.dll?p=amg&sql=43:121660  그리고, 평론이라기 보다는 거의 찬양에 가까운 찬사를 보냈다.

"You have to listen to this disc. It justifies the whole invention of recording sound"
"... performances here are more than magnificent: they are truly and profoundly transcendent"
"One of the greatest recordings ever made in the history of sound recording"


이 연주를 못들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흥미를 느낄만한 이야기들이긴 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들이 그렇게까지 - 레코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준으로 - 좋았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백그라운드 정보와 전체적인 소감만을 최상급의 표현으로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구체적인 사항은 알 필요없이 일단 사서 들어보라는 것인지...

아뭏든 위의 글을 쓴 평론가는 아바도의 다른 말러 음반들에 대해서도 대부분 최상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와 그(들)의 연주에 감사하고 좋아하는 일이야 나무랄 수 없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제대로 한번 들어보지 않고서도 어쩌면 쓸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를 하는 수준에 평론이 머무르고 말았다는 점일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같은 연주에 대한 후자의 입장은 상당한 혹평이라고 볼 수 있다.  
http://classicstoday.com/review.asp?ReviewNum=8360 

"... there's the question of what business Claudio Abbado had in approving the release of his third recording of Mahler's Second Symphony..."
"Interpretively there's nothing new here. Abbado's still far too placid in the scherzo, which flows along as if anesthetized, with unremarkable wind solos"

그러면서 여기저기 구체적인 예를 들고 있는데,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알 수 있는 '근거'는 제시되고 있지만 전체를 판단하는 기준치고는 다소 지엽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몇몇 디테일을 바탕으로 전체를 평가한 '혹평'인 셈인데, 앞의 경우처럼 디테일 없이 전체적인 소감만 제시한 '호평'과는 정반대의 입장 및 스타일을 가진 예라고 볼 수 있다.
 
이 평론가의 경우, 곡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기준을 나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문제는 조금 다른 곳, 즉 평론가로서 가지고있는 그의 자세에서 엿보이는 듯하다. 아바도가 지휘한 말러 3번의 경우을 예로 들어보자. http://classicstoday.com/review.asp?ReviewNum=5302 

"It's performance characteristics such as these that lead me to conclude that Abbado doesn't have a real sense of how this symphony should sound... This is music that should startle and stun; instead Abbado makes it sound boring."

그러면서 이 연주를 번스타인의 같은 곡 연주와 비교하였다. 

"considering that... DG in the meantime recorded a magnificent version of this symphony with Leonard Bernstein and the New York Philharmonic (who beat the Berliners like Lennox Lewis beat Mike Tyson), you have to wonder if there was a real need for a new Abbado Mahler Third."
"Bernstein's is bold, brazen, and sharply articulated, while Abbado's rounded sonorities sound more like a gentle reminder than an urgent summons."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번스타인의 연주가 있는데 왜 아바도의 연주가 필요하냐고?

한 가지의 해석 스타일로 모든 이의 동의를 얻어내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대개의 작품들이 마찬가지이지만, 이런 성향은 말러의 음악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그의 음악이 갖는 복잡성과 규모 때문일 것이다. 번스타인이나 텐슈테트와 같은 다이내믹하고 중후장대하며 감정기복이 심한 스타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규범이지만, 길렌 또는 아바도처럼 투명하고 담백하며 디테일에 강한 어프로취 역시 오늘날엔 많은 지지자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거의 정반대의 스펙트럼에 놓여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이런 스타일들이 두루 인정되며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이 어쩌면 말러 음악의 묘미인지도 모른다. 

위의 평론가가 아마도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모를리는 없었을텐데... 그렇다면 왜 이런 비교를 공정한 비교인양 제시한 것일까? 이 사람은 아마도 연주의 완성도를 논하는 것과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에 부합하게 연주하는 것을 잠시 혼동하고 있었던 것일까? 

다니엘 하딩이 챔버 규모로 연주한 말러 4번 평론을 예로 들면, 소위 '평론가의 오만함'이 어디까지 나갈 수 있는지를 보게된다. http://classicstoday.com/review.asp?ReviewNum=8524

"I fell asleep twice trying to get through this sterile, benumbed performance of Mahler's Fourth Symphony, and the bottom line is that the Mahler Chamber Orchestra (at least under Daniel Harding) has no business playing it."

음악을 듣는 도중에 본인이 두 번씩이나 졸았단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본인을 졸게 만든 연주를 한 악단이므로 연주금지 또는 해산의 조치라도 취해야한다고 주장할 권리가 정말 자기에게 있다고 그는 믿은 것일까? 

이 정도의 태도라면, 음악적 진실 여부를 떠나서, 한 사람의 상식인으로서 상무식하단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나 또한 하딩의 연주를 그리 비범한 연주로 기억하진 않는 편이지만, 그것은 그가 시도한 해석 안에서의 설득력과 완성도에 동의하지 않은 때문이었지, 그가 시도한 소규모 챔버 스타일의 해석 자체가 잘못인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을 가지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 행위는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적어도 누군가 다른 사람들의 노력의 산물인 작품/연주를 가지고서 '공적 평론'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공정성의 이슈에 대해 윤리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이 평론가는 최근엔 다소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유로(즉, 현악군이 비브라토를 쓰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노링턴의 말러 시리즈에 대해서도 사망선고에 준하는 악평을 내린다. http://classicstoday.com/review.asp?ReviewNum=11071  

"I still hope, if only for the sake of the talented Stuttgart players, that someday they will summon up sufficient nerve to tell the management that either this tiresome quack has to go or they will... Don't they realize how foolish Norrington is making them look?"

그러나 실제로 역사를 돌이켜보면, 정말 "foolish"한 모습으로 남은 사람은 여러가지 실험을 한 음악가들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말미암아 초월성을 획득했던 이들의 면모를 알아채지 못한 당대의 평론가 자신들 가운데 더 많았다. 즉, 바하의 수난곡을, 베토벤의 대푸가를, 말러의 첫 교향곡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전문가들' 자신의 자신만만한 혹평의 말들이 먼 훗날 그들을 판단하였다. 음악가는 제 1선에 선 창조자들이요, 평론가를 포함한 감상자는 제 2선에서 그들의 창조의 결과를 누리는, 이를테면, 소비자들이다. 그렇다면, '누리는 자들'은 기본적으로는 '누리도록 돕는 자들'에 대한 감사와 겸손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건설적인 비평의식이 자라나고 이해의 깊이가 더해지는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음악가들이 잘한 것을 감상자들이 알아보고 기꺼이 박수를 보내며 부족한 부분은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향해가도록 건설적인 비평을 제공하는 기반환경 마련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음악예술 발전의 토양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음악가들을 길러내는 데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는 사회적 자원과 에너지가 감상자들을 교육하는 데에도 좀 더 분배될 수 있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누구나 평론가가 되어야할 필요는 없지만, 누구나 평론의 결과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평론은 때로 공동체성을 획득하기도 하고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건전한 평론의 중요성은 더해지는데, 이는 음악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음악을 향한 애정어린 열정 위에 상호 존중의 자세가 더해질 때에 달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ps. classicstoday.com의 David Hurwitz의 글에는 사실 부정적인 평보다는 supportive한 평론이 더 많은 편이다. 특히, 나로서는 듣도보도 못한 현대음악 작품/연주를 소개하고 지지하는 데 보여주는 그의 해박한 이해와 열정은 감탄과 도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비판적인 글 가운데서도 많은 경우는 구체적인 지적을 통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서 볼 수 없는 시원시원한 느낌을 들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위와 같은 경우는 오히려 소수임을 밝혀두는 것이 공정한 처사일 것이다. 이분이 보다 존중어린 자세를 가지기를 바라는 것 만큼이나 나 자신 또한 그와 같은 평론가들이 기여한 '창조물'들에 대해 동일한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유지하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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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20:05

MTT와 SF Symphony의 말러 2번 공연 - SF Chronicle (3/14/10)

말러의 2번 교향곡은 아마도 말러의 교향곡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는 곡의 하나일 것이다. "부활"이란 부제가 붙었지만 그리스도적 의미에서의 부활이라기 보다는 지금 주어진 삶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살아 승리하라는 의미에 가까운 메세지를 담고 있다. (e.g. 4악장에서 이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에 대한 5악장 도입부의 강력한 "No!")  음악적으로는 다양한 주제들이 인간의 희로애락의 여러 면면들을 그리다가는 다시 기본 주제로 돌아오곤 하는 소나타 형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인생의 실존적 질문에 대한 질문을 제시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전체 악장이 진행되는 구조를 파악하는 데에 하나의 감상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된다. 

틸슨 토마스가 이끄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녹음한 말러 2번은 몇 년 전에 아쉽게 작고한 Lorraine Hunt Lieberson이 참여한 음반으로 개인적으로도 즐겨듣는 연주의 하나인데, 이번 연주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의 하나가 메조 소프라노 Katarina Karneus가 노래하는 부분들이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던 만큼, 급히 프로그램을 다시 보면서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가 하고 찾아보게 만들 정도로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가 된다. 

이날 연주는 꽤 호연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3-5악장으로 이어지는 부분들이 좋았던 것 같다. 3악장은 충분히 유머러스했고, 4악장 'Urlicht'는 독창자의 노래를 듣느라 관현악 반주가 어땠는지 거의 기억이 안나는 정도였으며, 5악장에선 지휘자의 구성력이 돋보였던 것 같다. 1악장의 저음 주제와 2악장의 피치카토 부분도 훌륭했다. 아쉬운 것은, 1악장과 5악장에서 군데군데 - 아래 평론가의 지적처럼 - 흐트러지는 느낌이 있었던 점, 2악장의 템포를 너무 느리게 잡아서 전체 구조가 깨지는 듯한 다소 불안한 느낌이 있었던 점, 그리고 지난주 프랑스 국립 라디오 오케스트라에 비해 현저히 딸리는 듯한 금관악기군이 다소 안습이었던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타악기군은 좋았다. 

전반적으로, 곡에 몰입해서 감상하기에 충분히 좋은 연주였다고 생각된다. 가까운 곳에 누군가 열심히 '음악 만들기'에 애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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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al writing is a relatively small component of Mahler's Second Symphony, occupying only the last two movements of the work's broad five-movement span. But it loomed large and inviting in Davies Symphony Hall on Thursday night, during an intermittently potent and sometimes frustrating performance by Michael Tilson Thomas and the San Francisco Symphony.

It was during the vocal passages - primarily the superb contributions of the Symphony Chorus under director Ragnar Bohlin, but also the solo turns by mezzo-soprano Katarina Karnéus and soprano Laura Claycomb - that the evening came most fully and uncompromisingly to life.

If Mahler meant to echo the formal trajectory of Beethoven's Ninth Symphony by driving toward a towering vocal climax, in which the power of a text heightened the mute eloquence of instrumental music, this was a performance to make good on that scheme.

Karnéus, a Swedish artist whose guest appearances with the Symphony have been reliable delights, outdid herself with a stylish and probing performance. Her singing in the fourth movement, "Urlicht," was at once dark-hued and buoyant, imbuing the music with an oracular impact that never sounded heavy-handed.

Claycomb made a suave contribution to the finale, and the chorus moved with assurance between passages of close-knit intimacy - particularly in the hushed expression of wonderment that introduces the symphony's choral segment - and the thunderous explosions that dot the movement.

Even the orchestra was inspired to accomplish great things, from the lovely, fine-tuned brass introduction to "Urlicht" to the roof-rattling final pages of the symphony.

But the hour or so leading up to the final movements found both Thomas and the orchestra sometimes struggling to maintain a clear sense of direction amid Mahler's far-reaching excursions.

It's been six years since the orchestra last played this piece - in a brilliant performance caught live for the Symphony's complete Mahler recording cycle - and Thursday's concert showed signs of some blurring of focus in the interim.

The principal points of articulation were firmly in place, sometimes gloriously so - the fierce outbursts that mark the formal junctures in the first movement, or the quick, sardonic tread of the third-movement scherzo. 

- by Joshua Kosman, Chronicle music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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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20:01

정명훈의 샌프란시스코 Ravel 공연 - SF Classical Voice (3/7/10)

모처럼 기억에 남을만한 훌륭한 공연을 감상했다. 그 정도의 연주를 만들어낸 사람이 같은 한국인 정명훈씨였기에 더욱 자랑스럽고 감사하기도 했다. 이날 특히 비범했던 관악기와 타악기군을 보면서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도 이렇게 잘할 수 있구나'하고 잠깐이나마 뿌듯한 느낌을 가졌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지휘자를 따라 프랑스에서 온 국립 라디오 오케스트라였음을 알게되어 다소나마 허탈하기도 했다. 다 좋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Daphnis, 그리고 그 중에서도 마지막 general dance에서 고조되어 완결짓는 그 귀를 잡아끄는 음악의 이미지의 여운이 지금도 쉽게 사라지질 않는다.  '음악의 '텍스츄어'란 이런 것을 뜻하는 거였구나' 하는 진가를 알게해준 음악인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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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vishing Ravel"

Last week was a big week for Maurice Ravel’s music at Davies Symphony Hall. Hard on the heels of the four San Francisco Symphony subscription concerts that included Ravel’s Valses nobles et sentimentales, Sunday evening saw a large, all-Ravel program by the visiting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under its conductor, Myung-Whun Chung. Yet in a way, the most memorable part of all this was Sunday’s glorious vocalism by mezzo-soprano Anne Sofie von Otter.

Chung began with the complete Ma Mère l’oye (Mother Goose) ballet score, which was followed by von Otter’s sensational performance of the composer’s Shéhérazade cycle. Following intermission, there were the first and second Daphnis et Chloé Suites. Plus La Valse! The concert was so overpoweringly plush that I wondered if I had been putting on weight via my ears. And to my surprise, Chung conducted all of this long program almost entirely from memory, and with consistent artistry of the highest kind.

Shéhérazade, Ravel’s most erotic work, consists of three songs: the large “Asie” (Asia) with full orchestra, followed by two more intimate creations using smaller forces, “La Flûte enchantée” (The enchanted flute) and “L’Indifférent” (The indifferent one). In the first, the singer dreams of traveling to Asia, underlined by undulating sea music, followed by a kind of sonic travelogue.

Initially, there’s “ ... Damascus and the cities of Persia” where “Vizirs, who, with the crook of a finger, dispense life or death as the spirit moves them.” That’s followed by an absolutely magical moment in the history of orchestral music as the singer intones, “... and then — China.” Whereupon the large orchestra swoons into an orgy of glorious sounds, before the words, “I desire to see roses and blood, I’d like to see men dying of love or else of hate.” (Tristan Klingsor’s art deco poetry will tolerate no restraint of taste.)

“The Enchanted Flute” depicts a maiden at night, awake as her master sleeps, listening to a sensuous flutist out in the night. Whereas “The Indifferent One” covers a woman in her doorway, as a pretty young man passes, and she offers him a glass of wine, calling out, “Enter, and let my wine refresh you. But no, you pass on.”

These songs obviously require a wide variety of emotional timbres, volume levels, and sonic coloration. Most of the singing must be barely above a whisper, and yet there are spots in “Asie” where the singer had to raise her volume to near-Wagnerian levels to overcome Ravel’s fierce orchestral tuttis.

Von Otter, attired in an Asian-style dress of teal-blue sheen trimmed in gold cloth, met the full measure of the composer’s demands. Her control over extreme dynamics, her flawless intonation, her rhythmic accuracy — all seemed so effortless as to be uncanny. She made everything sound as natural and as easy as projecting a chorale in whole notes. Here we heard vocal artistry at its finest.

Mother Goose began life as a set of five easy pieces for piano four hands for children, and then, like Topsy, it just grew and grew. Ravel orchestrated the Suite for a modest-size orchestra in 1911, after which it became an international hit. He then added another orchestral movement and several interludes to form his half-hour ballet score.

The music is, like its composer, filled with childish innocence and charm, and on the podium Chung caught that aroma to a fare-thee-well. Similarly, the moods for the two virtuoso Daphnis and Chloe Suites for very large orchestra were well-judged and to the point throughout, by turns delicate, sensuous, or blazingly bravura. The finale of Daphnis No. 2 felt like running into a brick wall at full speed in an 18-wheeler.

Therein lay the one major problem of the program: It’s impossible to top, or even match, such sonic splendor. La Valse was well-played, yet it failed to make the sort of impression it usually does, standing as it did in the shadow of Daphnis No. 2.

As for the Radio France orchestra, it was fine indeed, highlighted by a superb woodwind section and uncommonly artistic percussionists. The timpanist was amazing in his sensibility to timbre, constantly switching sticks within a given composition to get a match for the section he was supporting at the moment. The brass were acceptable, if a tad messy in articulation; the strings quite able though a little lacking in depth of resonance, especially from the violins.

Still and all, it amounted to a most successful event that brought the audience to its feet more than once. After so arduous an evening for the musicians, no encore was played.

Heuwell Tircuit is a composer, performer, and writer who was chief writer for Gramophone Japan and for 21 years a music reviewer for the San Francisco Chronicle. He wrote previously for Chicago American and the Asahi Evening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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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2 21:06

[김마에의 음악 가이드] 실내악, 현대음악, 비올라...

[1. 실내악과 친해지려면?]

사람 숨소리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잘 하는 실내악 들어보면요,
정말.... 기가 막히거든요.
Mozart violin sonata같은 것도 좋고, Mendessohn Octet 같은 곡은,
이게 실내악 곡인지 바이올린 독주곡인지 잘 구분이 안되지만,
불꽃튀는 연주자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장이 바로 소편성이지요.

이런 실험도 재미 있으실 것 같은데요. 예를 들자면, Beethoven String Quartet전곡을
한꺼번에 들으면 좀 그러니까.. ^^
일단 Op. 18의 여섯곡 먼저 쭉 들어보세요.
저는 그중 6번이 제일 좋은데요.
제가 유학 와서 친구들이 연주하는 걸 가까이서 들었는데....
정말 말그대로 불꽃이 튀는 연주였거든요.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그 친구들 중 첼리스트가 크로노스에 들어갔지요.  하여간...
그 이후에 Op. 59 전체와 Harp, Serioso를 건너 뛰고 후기를 들어보시면
Beethoven의 일생과 더불어 작풍의 scope가 대충 들어오실겁니다.
그 다음에 중기를 들어보시면 재미있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2. 현대음악에 입문하기에 좋은 곡?] 

현대음악 입문곡이라...
사실 Shostakovich나 Bax나 이런 사람들은 현대음악으로
치지는 않고요.. 보통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통 현대음악이라고 하는 거 같아요.
그러고보니 저도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지를 모르겠네요. ^^

이게 입문곡까지는 아닐지 모르겠는데요. 최근 100년 사이의 곡들 가운데
그나마 듣기 쉽고 귀에도 잘 들어오는 곡을 추천해보라시면....

- Korngold / Violin Concerto (제일 좋아하는 곡 중 하나죠)
- Christopher Rouse / Flute Concerto (딱 한 군데 때문에 이 곡을 연주합니다ㅎㅎ)
- Bernstein / Serenade for Solo Voilin, Strings, Harp and Percussion (다른 곡들은 좀 아실 거 같아서..)
- Lutoslawski / Concerto for Orchestra (그나마 자주 연주되는 곡)
- Schnittke / Concerto for Piano and Strings (이 곡은 실연을 보실 기회가 있다면 추천합니다)
- Prokofiev / Symphony No.5 (일곱개(인가?) 중에 제일 자주 연주되는 곡이라 할 수 있죠)
- Bloch / Schelomo (첼로 협연곡으로 major repertoire입니다)
- Bliss / Color Symphony (작풍이 상당히 보수적입니다)
- Carl Nielsen / Symphony No.2 "The Four Temperaments" (제 생각에 Nielsen은 저평가 우량주입니다)
- Carl Nielsen / Violin concerto (아마 10년 후쯤 되면 지금의 Sibelius concerto의 자리에 오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Howard Hanson / Symphony No.2 "Romantic" (쿨~ 하지요)


[3. 비올라의 필수 레파토리?]

Viola Rep로는

- Bartok / Viola concerto (Tabea Zimmermann 껄로 들어보세요)
- Hindemith / Viola sonata Op.11 No.4 (개인적으로 가장 명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 Rebecca Clarke / Viola Sonata (비올리스트에게 딱 한 곡만 연주하라면 열명중 다섯은 이 곡을 정할겁니다)
- Shostakovich / Viola Sonata (죽기 마지막 작품이지요)
- Walton / Viola Concerto (혹자는 비올라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하는데.. 저는 별로...)
- J.S.Bach / Viola da gamba Sonata (전체 세 곡인데.. 비올라로도 연주됩니다.)
- Brahms / Viola Sonata (F minor와 E-flat major가 있는데... 그야말로 비올라 곡의 대표 repertoire라 할 수 있죠)


(추천: 김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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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7 22:28

[music]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명연주?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여파로 베토벤 9번 교향곡 연주 추천에 관한 질문을 몇 번 받았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새롭게 할 말도 없고, 솔직히 그동안 들어서 안좋은 연주도 별로 없었지만, 요청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는 가져야하는 바, CD들을 다시 꺼내 들어보기도 하고 인근 도서관에 가서 좀 더 빌려다가 들어보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았던 몇 연주들을 한번 리스트업해본다. (이 바닥의 진정한 전문가들께는 송구...)  
 
1. 푸르트뱅글러(Furtwangler)
 -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축제극장 오케스트라 (1951, 라이브, EMI), 또는
 - 루체른 페스티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54, 라이브, Tahra)

요즈음엔 푸르트뱅글러 식의 해석이 예전과 같은 수준의 인정과 환영을 받지만은 않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이 곡에 관한한 그가 남긴 장대한 족적을 무시하고 지나갈 순 없을 것이다. 이 연주들을 두고서는 '압도적인 감동'이라고 환호하는 사람들과 '지나친 주관주의'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중후하고 로맨틱한 독일적 해석의 대표적 모델이며, '죽은 악보에 숨결을 불어넣는' 해석의 중요성 및 관객과의 호흡에 기인한 즉흥성을 강조한다. 비판적인 요소는 대개 자의적이라 할만큼 주관적인(idiosyncratic) 해석과 그때그때 달라지기 쉬운(spontaneous) 템포 때문일 것이나, Gramophone 매거진의 한 평론가의 표현처럼 곡 전반에 "massive current"가 흐른다고 할 정도의 자기 완성도와 설득력있는 장대한 드라마가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클래식에 갓 입문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 합창 교향곡 자체에 매료되게 만들어준 연주는 바로 푸르트뱅글러의 51년 버전이었다. 그런만큼, 이분의 연주에 깃든 열정과 완벽한 자기 음악으로의 소화는 마치 이 곡 연주에 있어서의 'archetype' 인 것처럼 느끼게되는 경향이 개인적으론 있는 편이다. 

2. 토스카니니(Toscanini)
 -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1952, 스튜디오, RCA)

토스카니니의 해석은 푸르트뱅글러와는 다른 축을 형성한다. 푸르트뱅글러가 자신이 재해석한 베토벤의 전형을 만들어냈다면 토스카니니는 '나는 죽고 내 음악 안에 작곡자가 산' 연주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래서, 솔티는 "아마 정답은 이 두 축 사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는 말로 두 사람의 존재감을 모두 인정했다. 푸르트뱅글러가 이 곡을 자신의 음악으로 재창조하려 했다면, 토스카니니는 이와 정반대의 입장에서 오로지 작곡자의 의도에 충실한 'fat-free'식 어프로취를 취했다. (푸르트뱅글러가 hermeneutic 했다면 토스카니니는 exegetic 했다고나 할까?) 템포 역시 베토벤이 지정한 속도에 따랐다고 하는 만큼, 다른 연주들에 비하면 꽤 빠른 편이다. 완벽주의자, 순수주의자로 알려진 그의 성향을 다소 느낄 수 있으며, 비록 푸르트뱅글러와는 다른 방향으로부터의 접근이긴 하지만 열정, 집중력, 그리고 다이내믹함이란 측면에서는 서로 통하는 부분도 있다. 아마도 후대의 지휘자들에게 끼친 영향으로만 볼 땐 푸르트뱅글러 이상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해석은 카라얀을 비롯한 많은 근현대 연주자들과, 더 나아가서는 최근 20여 년간 한 흐름을 만든 정격연주(authentic/periodic performance) 전통과도 맥이 닿아있는 'prototype' 이라 할만하기 때문이다. 

3. 텐슈테트(Tennstedt) 
-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85, 라이브, BBC Legend)

텐슈테트는 구 동독 출신의 지휘자인 만큼 그의 대가적 면모에 비해 카라얀, 번스타인 같은 사람들보다는 훨씬 세간에 덜 알려져있는 편이다. 주로 말러 스페셜리스트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우연찮게 도서관에서 그의 합창 교향곡 연주를 빌려서 듣고는 예상치 못한 반가운 충격을 받게 되었다. '숨은 명연'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 연주에서 푸르트뱅글러의 드라마와 토스카니니의 열정 및 집중력을 고루고루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두 축들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바로 그 '정답'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런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토스카니니보다는 푸르트뱅글러 쪽에 더 가깝긴 하지만..) 사실, 위의 두 노장들의 연주를 실제로 감상하며 '즐길' 수 있는지의 여부는 그들의 연주가 훌륭하다는 점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반세기 전의 빈약한 모노 사운드가 귀에 전혀 거슬리지 않는 사람들만이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용한 거장' 텐슈테트가 LPO를 은퇴하기 2 년전에 한 이 말년의 연주는, 열정과 서정성의 조화 및 오케스트라와의 교감도 뛰어나지만, 거기에 더해 음질도 좋고 라이브의 열기까지 더해져 있어서, 처음 이 곡을 접하는 이에게 꼭 한 연주만 권하고자 하는 경우에 추천할만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연주가 끝났을 때 우뢰와 같은 박수를 치는 관중들이 부러워지게 만드는 실황연주이다.    

4. 카라얀(Karajan)
 - 베를린 필 (1962 & 1977, 스튜디오, DG)

카라얀이 남긴 베토벤 교향곡의 여러 연주 음반들 가운데서 대체적으로 위의 두 연주를 제일 쳐주는 모양인데, 대체로 3악장 아다지오는 77년 연주가 더 아다지오스럽고, 4악장의 보컬 파트는 62년 연주가 한수 위라는 평가이다. 개인적인 선택으론, 생동감과 긴장감이 살아있고, 베를린 필의 현악 파트가 마치 빈 필처럼 들리며, 4악장의 솔로와 합창단이 뛰어난 62년 버전을 좋아한다. 카라얀은 유명세 만큼이나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대표적인 지휘자인데, 그의 해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유려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인공적인' 그의 스타일이 62년도 연주에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디. 뿐만 아니라, 매너리즘이 아직 보이지않는 가운데 오히려 신선한 측면들을 볼 수 있는 점도 62년 버전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푸르트뱅글러나 토스카니니 시대에 비하면 불과 10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그 사이에 이루어진 스테레오 녹음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놀라운 수준이다. 무난하고 구하기 쉬운 연주이다. 

5. 반트(Wand)
 -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 (1982, 스튜디오, RCA)

독일 후기 낭만파의 음악, 특히 브루크너의 권위자로 알려진 또 다른 '조용한 거장' 반트의, 역시 만년에 이루어진 이 연주도 독일적 해석의 계보 안에서 현대적 명연주의 반열에 오를만한 연주이다. 반트는 여러 레파토리를 많이 섭렵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요 레파토리를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연주, 녹음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하는데, 이 연주 만큼은 너무 만족스러워서 다시 이 곡을 녹음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반트와의 개인적인 인연으로는, 마음에 꼭 드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연주를 아직 찾지못하고 있었을 때 그의 베를린 필과의 연주가 이 목마름을 완전히 해소시켜주었던 일이 있었다. 중후함과 섬세함을 조화시키는 그의 장기가 잘 발휘된 경우였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그의 시그니처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이 연주는 퀄리티 측면 외에도, 상당히 저렴한 가격($5~7)에 구입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6. 벤스케(Vanska) 
 -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2006, 스튜디오, BIS)

북구 출신답게 원래 시벨리우스 등의 음악으로 이름을 날렸던 벤스케가 미국으로 이주해서 무명의(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미네소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화제를 불러일으킨 베토벤 교향곡 싸이클의 일부이다. 마치 토스카니니 스타일의 현대판 버전인 듯한 느낌도 들며, 3악장의 메마른 느낌을 참을 수 없게 만들곤 하는 이전 정격연주들에 비해서는 한층 풍성한 느낌이다. 그러나, 명료하면서도 리듬감과 질감이 뛰어난 그의 연주의 진가는 역시 빠른 악장들에서 더 잘 나타난다. Jonathan Del Mar라는 음악학자가 십여 년간 옛날 악보를 대대적으로 수정하여 97년에 발표한 Barenreiter 에디션의 신 악보를 기초로 연주된 만큼, 합창 교향곡의 현대적 해석의 현주소가 궁금한 사람에겐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진만을 시작으로, 아바도, 노링턴, 래틀, 맥케라스 등 현대의 많은 연주자들이 이 악보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http://www.baerenreiter.com/html/lvb/index.html 참조)  한편, SACD 겸용인 이 씨디는 음질이 매우 중요한 이슈인 audiophile들에게서 선호될만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 외, 합창 교향곡의 매력에 처음으로, 또는 다시금 빠져들게 할만한 영상물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역시 '베토벤 바이러스'이다. 전체 드라마의 중간 쯤에 나오는 두 번째 연주회에서 이 곡이 연주되는데, 이 곡에 대한 관심을 새로와지게 만드는 '비쥬얼의 힘'이 있는 것 같다. 특별히, 인생의 스토리들이 음악적 내러티브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는 설정이 나름 음악적 인사이트를 강화시켜주는 면이 있었다.

두번째는, Ed Harris가 베토벤으로 나오는 'Copying Beethoven'이다. 스토리 자체야 픽션이지만, 음악을 중심축으로 해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감사한 마음마저 들게 한다. 여기서도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합창 교향곡이 주요 부분 발췌의 형태로 전곡 연주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음악의 각 부분부분에서 등장인물들이 서로 교감하는 모습이 이 곡에 대한 새로운 감흥을 불러 일으켜준다.  


(revised, 3/29, 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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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23:42

[music]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 by Furtwangler & Berlin Phil. (1943)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청력 상실의 고난과 싸우며 불후의 명작들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로서 원래 연주방면으로 보다 많은 활동을 하고있던 그가 훗날 작곡에 '전념'하게 된 것도 어쩌면 이런 고난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선배 작곡가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그만의 '장르'를 개척할 뿐만 아니라 곡들 자체의 깊이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는 그의 'Middle Period'의 시작점이 청력 상실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 시기와 오버랩된다는 점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운명'으로 더 잘 알려진 5번 교향곡과 6번 '전원' 교향곡은 그의 청력 상실이 본격화되어가는 시점에 착상되어 거의 같은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처럼 서로 전혀 상반된 분위기의 두 곡을 동시에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다는 점으로부터도 당시 그의 내면에서 겪고 있었을 감정적 동요와 굴곡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7번 교향곡은 그가 더이상 아무 것도 들을 수 없게 된 시점인 1812년에 작곡되었다. 완전한 청력 상실이 이제 현실로 다가온 시점에서 쓴 첫 곡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전반적으로 밝고 역동적인 느낌을 주지만, 2악장에서 만큼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흐르고 있었을 절제된 아픔과 슬픔에 대한 단상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최근의 "베토벤 바이러스"나 예전의 "Mr. Holland Opus" 같은 드라마/영화를 보면 등장인물이 청력을 상실하는 장면에 이 2악장의 선율이 흘러나오는데, 이러한 곡의 배경을 생각하면 매우 적절한 선곡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세기의 연주가들 가운데 베토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의 하나는 단연 지휘자 푸르트뱅글러이다. 그는 레코딩 및 라디오 기술의 태동과 시대를 같이하며 '수퍼스타 지휘자' 시대의 문을 연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그의 생을 이야기할 때 나치 독일 치하에서 겪은 고난과 영욕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점은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일찌기 30년대 초부터 나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유태계 작곡가 힌데미스의 곡이 금지 처분되었을 때에는 맡고있던 여러 자리로부터 사임하기도 하였다. 그의 망명설이 흘러나오면서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으로부터 상임 지휘자 제안이 밀려들기도 하였지만, 막상 전쟁이 일어나고 나치의 잔혹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때에 그는 오히려 본국에 머물 것을 결정하였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자기 조국으로의 망명'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였고, 다른편에서는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나치의 선전에 활용된 면을 들어 그의 본국체류 결정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물론 나치 협력에 관하여 그에 대해 이루어진 모든 고발은 전후에 벌어진 재판 및 심사 과정에서 모두 무혐의로 선언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유대인 음악가들을 숨겨주고 탈출을 도왔던 사례들이 후에 알려지기도 하였다. 종전 직후에 예후디 메뉴힌과 같은 유태인 음악가들이 종종 그와 협연한 사실은 많은 유태인들이 심정적으로 그를 지지했음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오히려 그는 나치의 지배하의 조국에서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던 듯하다. 그가 종전 재판 과정에서 한 말을 들어보자.
 
"독일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고, 나는 독일 음악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이 위기 상황에서 가능한 한 살아남는 것이 나의 임무였습니다. 나의 음악이 (나치의) 선전에 오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독일인들에게 주어진 음악을 지켜야만 한다는 더 큰 우려 앞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바하와 베토벤, 모짜르트 및 슈베르트와 같은 혈통을 지닌 이 사람들은 이제 전면적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정권의 컨트롤 아래에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이 상황 안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그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판단할 수 없을 것입니다...

'히믈러(유태인 대량 학살의 기획/실행자)의 독일' 치하에선 베토벤 음악이 연주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히믈러의 공포 아래에 살고있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자유와 인류애라는 베토벤의 메세지에 그 누구보다 더 필요와 갈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었겠습니까? 나는 그들과 함께 머물기로 했던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습니다."

(from Wikipedia; "The Furtwangler Record" by John Ardion)

여기에 링크된 연주는 1943년도 베를린필의 전용 연주회장에서 이루어진 연주 실황녹음이다. 당시 나치는, 지휘자를 체포하겠다, 교향악단을 해체하겠다, 연주자들을 모두 군대에 보내겠다, 하는 식으로 협박과 회유를 반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43년 당시는 또한 유태인들이 수용소에서 본격적으로 죽어나가고 있는 시점이었으며, 그럼에도 나치 독일은 아직 유럽의 여러 곳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함'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악인'이 다름아닌 자신의 나라라는 자괴감, 그리고 자신들 각자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등이 아마도 복잡하게 연주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본 연주가 이루어진 베를린필 전용 연주장은 몇달 후인 44년 1월에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지게 될 만큼 그들은 전화의 한 가운데에 서있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현이 울고있는 듯한 환청에 잠기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이 연주에 대한 고난은 작곡자와 연주자들의 것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45년에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은 이 녹음 마스터를 포함한 베를린필의 연주녹음 테입들을 모두 소련으로 압송해갔다. 테입이 본 주인들의 손에 되돌아오기까지는 앞으로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데 걸려야할 40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렇듯 본 연주는 한 시대와 인간의 실존적 고난에 대한 여러가지 방향의 증언을 담고 있다.  

이 음악을 들으면 늘 떠오르곤 하는 한 사람이 있다. 이 음악이 연주되고 있을 같은 무렵 같은 독일 땅 어딘가에서 차가운 감방에 갇힌 채, 안으로는 "나는 누구인가?" 고뇌하고 삶으로는 '그리스도의 사람'다운 양심과 온화함을 몸으로 보여주던 디트리히 본회퍼가 바로 그이다. 그 또한 모든 망명 제의와 권유를 뿌리치고 "그들과 함께 고난의 현장에 있기 위해" 동포들이 있는 독일로 다시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피아노에 능했던 그도 음악을 무척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푸르트뱅글러가 말하는 '자유와 인류애'의 메세지가 그 이상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작곡도 연주도 녹음도 모두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있기에 우리에게 오늘날 또 다른 이야기를 불러일으켜주는 이러한 연주야말로 '인류 문화유산'이라고 불러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실존적 고난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자신들의 마음을 노래했고 다른이를 위로해온 음악이었기에, 오늘날 고난의 현장에 서있는 이들에게도 이 음악은 그들의 상한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지는 손으로서 동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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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00:05

[music] "St. Thomas" - by Sonny Rollins (1956)

소니 롤린스는 5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도록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는 최장수 재즈 뮤지션의 한명이다. 지난 여름에도 80을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로 이곳 베이지역에 와서 연주를 하고갔다. 
 
오랜 커리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중반에 이르는 10년 동안의 연주들이 워낙 찬사를 독점하다보니 이후의 시기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같은 기간 동안 테너 섹소폰 계를 양분하다시피한 존 콜트레인이 끊임없는 변신을 이루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던 것을 고려할 때, 그의 경우는 일찌감치 창작력의 탄약이 고갈되어 조로 현상을 나타낸 것처럼 비교되기도 하였다.  

콜트레인의 경우는 사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100미터 달리기' 식의 스타일을 보인 커리어였다. 하드밥에서 모드음악으로, 아방가르드에서 발라드와 다시 프리재즈로, 2~3년 사이마다 그의 음악 스타일은 그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10년 동안 활동한 것 치고는 실로 수많은 음반(또는 음원)을 남겼다. 후대의 팬들과 음악인들은 이러한 그의 구도자적인 dedication에 아낌없는 존경을 보냈지만, 40세에 때이른 죽음을 맞이한 것에는 사실 과로사의 의미도 적지않았다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이에 반해, 롤린스의 경우는 철저한 '마라톤' 스타일이었다. 그는 연주와 창작활동을 하다가 영감이 고갈되면 몇년 동안 잠적했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는 일을 반복했다. 그의 길디 긴 커리어는 그러한 재충전이 없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콜트레인이 '짧고 굵게' 살다 갔다면 롤린스는 상대적으로 '가늘고 길게' 살았다고나 할까? 아뭏든, 한 시대를 상징한 두 사람은 이렇듯 다른 두 가지 삶의 방식의 강렬한 대조를 보여준다. 

"St. Thomas"는 1956년 앨범 "Saxophone Colossus"에 실린 그의 대표곡이자 카리브해의 칼립소 리듬을 도입해서 하드밥으로 소화한 명곡으로 유명하다. 색소폰도 훌륭하지만, 그의 단짝이자 당대 대표 드러머의 한 사람이었던 맥스 로취가 마치 정교한 붓으로 수채화를 그리듯 만들어내는 드럼의 조형미 또한 대등한 솔로 악기로서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그들의 젊은날이 함께 빚어낸 욱일승천하는 듯한 창작력의 기개는 50년의 세월을 넘어 동일한 신선함을 전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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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5 06:36

[music] "Tea for two" - by Art Tatum (1933)

Art Tatum은 미국 재즈 음악의 비교적 초창기인 30 년대에 등장하여 클래식, 스트라이드, 스윙, 부기우기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을 선보인 아티스트이다.

빠른 손놀림과 정확한 박자 감각, 그리고 동일한 곡이지만 코드 진행의 변화를 주어 독특한 느낌을 주는 방식의 화성 응용법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40 년대 비밥/모던재즈 혁명의 주역들에게도 큰 영감이 되었다. 그의 영향력은 특별히 아티스트들에게 더욱 커서, 모던 재즈의 꽃이 만개한 50 년대 중반에 한 잡지사에서 현역 재즈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재즈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하고 설문을 하였을 때 2/3가 그의 이름을 언급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창조적 음악성과 실력은 클래식 음악의 대가들에게도 정평이 나있어서, 토스카니니, 호로비츠, 루빈스타인 등 당시 뉴욕에 살았던 음악가들도 그가 연주하는 클럽을 즐겨찾곤 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에 대하여, 재즈 음악 씬에서 그 자신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인 오스카 피터슨, 데이브 브루벡, 테디 윌슨이 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자 (from wikipedia):  
   
 오스카 피터슨 - "If you speak of pianists, the most complete pianist that we have known and possibly will know, from what I’ve heard to date, is Art Tatum."

 데이브 브루벡 - "I don't think there's any more chance of another Tatum turning up than another Mozart."

 테디 윌슨 - "You get all the finest jazz pianists in the world and let them play in the presence of Art Tatum. Then let Art Tatum play ... everyone there will sound like an amateur."

그는 흑인으로 거의 눈이 실명된 상태에서 태어났으며, 거의 독학으로 피아노를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장로 부부인 부모 밑에서 어릴 때부터 교회 음악을 접하며 자라난 것이, 척박한 조건이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정신적인 힘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아마도 남보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세워나갔기에 거꾸로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할 수 있었을 것이다.

"Tea for two"는 1933 년에 녹음한 그의 첫 데뷔 녹음 4 곡의 하나로, 당시 잘 알려진 곡을 그의 스타일대로 jazzy하면서도 classical한 멋이 풍기도록 편곡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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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2 14:02

[music] Billie Holiday, "Fine and mellow" (1957)



빌리 할리데이는 참으로 드라마틱한 삶을 산 재즈 보컬리스트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엄마는 불과 열세 살의 '철부지' 소녀였고, 그의 아빠는 몇 년 동안의 동거기간 후에 곧 가족들을 떠나는 "무책임한" 열여섯 살 십대 소년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할렘에서 엄마와 함께 먹고살기에 급급한 하루하루를 살면서 마약, 매춘, 폭행, 감옥생활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가수로서 성공하고난 후에도 남편(들)로부터의 abuse와 마약중독에 시달리곤 했다. 아마도 1920~30 년대의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 여성으로 살았던 많은 이들이 그와 비슷한 연약함과 고단함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Fine and mellow"는 질곡의 삶을 살았던 그가 남긴 몇 안되는 자작곡의 하나로, 그 자신의 삶을 전통적 블루스-재즈의 틀 안에 있는 그대로 담아낸 투명한 자전적 고백이다. 여기에선 그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쏟아내는 사랑받고픈 자의 목마름과 좌절감이 삶의 육성으로 묻어나온다.  

 "My man don't love me, he treats me, oh, so mean...
  But when he starts in to love me, he's so fine and mellow."

 "Love will make you drink and gamble, make you stay out all night long.
  Love will make you do things that you know is wrong."

 "Treat me right, baby, and I'll stay home everyday..
  But you're so mean to me, baby, I know you're gonna drive me away."

 "Love is just like the faucet. It turns off and on.
  Sometimes when you think it's on, baby, it has turned off and gone."

건강 악화로 1959년 44세의 나이에 노환에 가까운 건강 상태로 생을 마감한 그의 '50 년대 performance에는 많은 이들의 호불호가 엇갈린다. 한창 때와는 크게 비교될 정도로 피폐해진 목소리와 기력 때문에 '40 년대 결과물들에 비해 음악적으로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메마르고 연약한 목소리를 상쇄하는 더욱 풍성해진 표현력과 empathy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생의 매 시점마다 '그 자신'이었다는 면에서 모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 이 곡은 전통적인 '12-bar 블루스'(열두 마디가 한 코러스를 이루어 기본단위를 구성하는 형태의 블루스)의 형식과 내용적 틀에 충실한 곡으로, 여기서의 연주는 각각의 연주자들이 기본적으로 한 코러스(i.e. 12 마디)씩을 담당하는 형태로 반복된다.

 A1  /  B1 - B2
 A2  /  B3 - B4
 A3  /  B5 - B6
 B6'  /  A4 - A4'

(A는 빌리 할리데이가 담당하는 보컬 파트를, B는 각 솔로악기를 맡은 연주자들의 즉흥연주를 가리킨다.)
 
 B1 -  Ben Webster (tenor saxophone)
 B2 -  Lester Young (tenor saxophone)
 B3 -  Dick Dickenson (trombone)
 B4 -  Gerry Mulligan (baritone saxophone)
 B5 -  Coleman Hawkins (tenor saxophone)
 B6 & B6' -  Roy Eldridge (trumpet)  <-- 아마도 노장을 우대한 듯...

이 비디오 클립은 CBS의 1957년도 TV 기획물인 "The Sound of Jazz" 프로그램에 실린 한 부분으로,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드문 라이브 재즈 영상물들 가운데서 첫 손에 꼽히는 '보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연주자 한명 한명은 재즈의 역사를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가들로, 그들의 이름을 듣고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낄 재즈 애호가들이 많을 것이다.

듀크 엘링턴 밴드와 카운트 베이시 밴드에서 활약했던 소위 '3대(?) 색소폰 거장' 벤 웹스터, 레스터 영, 콜맨 호킨스와 '쿨 재즈'의 선봉장 제리 멀리건, 스윙 시대의 대표 주자라고 할만한 트럼펫의 로이 엘드릿지와 드럼의 조 존스... 올 스타를 모아놓았다고 해서 그 결과도 꼭 최고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 연주의 경우는 올 스타가 모여 만들어낸 명연주라는 면에서 어쩌면 흔치않은 예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여기에 나오는 빌리 할리데이와 레스터 영은, 같은 해에 생을 마감한 그들이 죽기 2년 전의 모습들로,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이 하나의 기록만으로도 후세에 훌륭한 재즈 뮤지션으로 기억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백조의 노래'를 선보이고 있다. (이 둘은 당시 서있기 힘든 건강상태 때문에 앉아서 연주하도록 배려되었다.)  빌리의 보컬은 다른 악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당한 하나의 '악기'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모두의 즉흥 연주가 탁월한 가운데에서마저도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레스터 영의 연주는(두 번째 솔로) 어떤 한 평론가의 다소 열광적인 표현에 따르면 "한 번만 들어도 DNA에 새겨지듯 기억되는" 명연주이다. (And he adds, "Lester Young stole the whole show with that 38 seconds!" - Ken Burns documentary "Jazz")  20 년간이나 함께 연주해온 레스터로부터 지금 막 펼쳐지고 있는 이 연주가 어떤 의미인지를 빌리는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기쁘게 반응하는 그의 얼굴을 이 비디오에서 볼 수 있는 점도 잔잔한 감흥을 주는 대목이다.    

인생의 무게가 실린 음악...
화려하고 상업적인 음악의 홍수 속에서 한 잔의 '마실 물'을 찾기란 요원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시대이기에, 자신들의 삶의 질곡과 고난의 한 가운데에서 물에 빠진 이가 지푸라기를 붙잡듯 붙잡은 결과물이었던 '그들의' 음악은 흑백 영상에 담긴 빈약한 사운드이건만 오늘날에도 시공을 초월한 어떤 메세지들을 더욱 힘있게 전달해준다.

흔히 재즈는 '자유'의 음악이라고들 한다. 
그들은 struggle하였고, 자유로운 영혼을 노래하고자 하였으며, 그래서 때로 '음악'이라는 이름의 '진주조개'를 잉태하기도 하였지만, 과연 한 '인생'으로서 그토록 갈망하던 참 자유와 참 사랑을 끝내 맛보았을까? 그런 생각에 더욱 인간적이고 마음이 울릴 수 밖에 없는 '삶의 testament'로서의 그들의 음악..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솔직하였고 치열하였기에, 그들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 만들어낸 이 '흑인 음악'은 인간사의 한 위대한 다큐먼트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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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9 02:59

[music] Duke Ellington, "Take the 'A' train" (1956)

그 유명한 듀크 엘링턴의 "Take the 'A' train".
56년 Newport 재즈 페스티발에서의 실황 연주이다.
충분히 흥겹고, 음악적으로 세련미가 있으며, 라이브 연주의 분위기도 한껏 살아난 스윙재즈의 명곡이다.

그가 작곡하여 연주한 곡이 천 곡이 넘을 정도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지난 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대표 작곡가의 한 사람이었지만, 막상 그 자신의 signature tune으로 알려진 이 곡은 그와 평생을 같이하며 음악적 파트너쉽의 롤 모델을 함께 세웠던 빌리 스트레이혼의 작품이다.
경제 공황의 여파와 세계대전으로 인해 고단해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을 제시하고자 했던 시대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작곡되었고, 낙관주의가 흐르고 있던 50년대 미국의 컨텍스트 가운데서 연주되었다.

음질과 스타일의 한계를 넘어 '음악의 에센스'에 귀기울여보면 누구든 쉽게 매력을 발견할 만한 accessibility가 있다.


cf. 'A' 라인은 할렘으로 들어가는, 당시에 신설된 뉴욕 지하철 노선이다. 한편, 할렘에는 오랜 기간 동안 그의 빅밴드와 함께 정기적으로 연주했던 카튼클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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