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8.07 에니어그램 컨퍼런스 (1)
  2. 2010.07.04 전환기 내면여정 (5) - 에니어그램
  3. 2009.08.07 에니어그램
2010.08.07 07:15

에니어그램 컨퍼런스

이 목사님으로부터 처음 에니어그램을 배운지 2년 정도가 되었을 무렵에 첫 웍샵을 시도해본 적이 있었다. 멤버들의 성장에 꼭 필요한 좋은 도움이 될거라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에 열심히 준비해서 몇 주에 걸쳐 진행을 했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온갖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했는지 모르겠으나, 실질적인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고자 한 원래의 취지에 비추었을 때에는 완전한 실패였다. 그 원인은 내용이나 진행 방식에 있었기보다는 '해석의 틀'의 부족함에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를 알지 못했다. 

이후에 좀 더 공부하고 자신에게 더 적용해보고 아내와 토론을 지속하면서, '해석의 틀'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적용에 영향이 크다는 사실에 눈뜨게 되었다. 마치 개별 성경에 대한 지식보다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관한 '신학적 틀'의 여부가 적용상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점과 비슷한 경우였다. 

에니어그램이 유용한 용도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된다. 

1. 나와 다른 상대방의 성향을 이해하므로써 관계 회복이나 증진을 이루는 쪽으로 도움을 얻는 것
2. 자신에게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행동과 반응에 대한 숨겨진 동기를 발견하므로써 영적 성장의 발판을 찾는 것

여기서, 전자가 '수평적' 차이에 관한 이야기라면, 후자는 '수직적' 발전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수평적' 접근의 경우엔 이론화에 바탕을 둔 단순화가 도움이 된다. 나와 다른 상대방의 성향을 단순하게 정리할수록 쉽게 이해하는 데에 용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수직적'인 접근의 경우 모든 발전 가능성에 대해 문을 열어놓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어떤 특정한 '유형'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역동적일 뿐만 아니라, 에니어그램 이론 또한 사람이 성장할 때 유형간의 차이가 점점 사라진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웍샵에서 내가 한 실수도 '영적 성장'을 위한 일에 '수평적'인 접근을 이룬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상자' 안에 가두는 것이 되고 말았는데, 이런 경우 에니어그램과 같은 typology는 '자유함'의 도구가 아니라 '억압'의 도구가 되어버려서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기가 쉬웠다.     

'영적 성장'을 위한 방면에 '수직적'으로 접근을 했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이는 에니어그램의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한데, 즉 '진단'은 할 수 있으되 '치료'는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숨겨진 면면들을 알고난 후에 갖게되는 "So what?"이라는 질문이야말로 이 도구에 대한 결정적인 질문이자 막다른 골목이 되고 만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고, 오로지 절대자께 의존해서 기도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http://www.internationalenneagram.org/conferences_calendar/index.html

이런 면들에 대해, 금년에 마침 로컬에서 있은 에니어그램 컨퍼런스는 어느 정도 확인과 위로가 되어주었다. 에니어그램의 현대적 보급의 창시자들이라 할만한 사람들이 비슷한 길로 방향 전환을 하고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뚜렷한 흐름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통합적'인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영성적' 접근으로 breakthrough의 길을 찾는 것이었다. '통합적'이라 함은 한 타입으로 나누는 데에 치중하기보다 모든 유형의 요소들을 함께 발견하여 조화시키는 접근을 의미하며, '영성적'이라 함은 수도원적 전통의 영성훈련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접근들에는 근본적인 한계도 있었다. 비즈니스 환경에의 적용을 용이하게 하기위한 취지의 '통합적' 접근은 그 자체로 영적성장 영역에 적용하기엔 아무래도 무리인 측면이 많았고, 그들이 말하는 '영성적'이란 말은 하나님을 제외시킨 일반적 영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임 만큼 궁극적으로 '앙꼬 빠진 찐방'처럼 어설픈 것이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눅 16:8)고 하신 말씀이 머릿 속에 윙윙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믿지않는 저들도 어설플지언정 방향 하나는 기가막히게 잡아내는데, 나를 포함한 우리 기독교 커뮤니티는 피상성에 깊이를 더하고 막힌 곳을 돌파하는 길을 찾는 데에 왜 이리 발길이 더디고 마음은 닫혀있는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영적 성장을 돕기위한 또 하나의 도구로서의 효용성에 관하여 시작된 생각은, 보다 큰 컨텍스트 안에서 '오늘날 왜 에니어그램이 필요하고 이런 방식의 영성훈련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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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4 07:15

전환기 내면여정 (5) - 에니어그램

우리는 옳은 일을 하지만 종종 옳지않은 동기로 그렇게 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친절을 베풀 때에도 종종 그 동기가 순수한 사랑 이외의 것일 때가 있다. 사역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헌신이지만 방법상으로는 세상을 그대로 닮은 논리와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면에서, 신앙 여정이 도달해야할 궁극의 지점은 '동기'와 '의도'의 문제라는 지적에 나 또한 전적으로 동감한다.     

에니어그램이 영성훈련의 도구로서 유용할 수 있는 이유는, 각 성향의 긍정적인 면들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면들도 보여주며, 더 나아가서, 특정한 형태의 행동이 유발되는 동기에 관한 인사이트를 주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장점이 동시에 그 사람의 어두운 그림자와 동전의 양면같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측면은 우리 내면에 관한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데에 특히 유용하다.  

물론 에니어그램은 진리도 아니고 법칙도 아니며, 과학적이라고 하기엔 기원도 다소 불분명하고 다분히 직관적인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보고, 특히 내밀한 어두움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숙고해볼 거리를 제공하는 점은 영적성장을 위한 '진단'의 도구로서 유용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진단'의 도구인 만큼 '치료'를 보증하지는 못하며,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일 자체도 사실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에니어그램처럼 사람의 성향을 다루는 typology를 사용하는 경우에 가장 빠지기 쉬운 일반적인 잘못은 자신과 상대방을 어떤 특정한 타입이라는 '상자' 안에 가두어두는 일이다. 이를테면,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의 특성을 바탕으로 한 사람을 A 성향이라고 판단한 후부터는 A 성향의 일반적인 특성으로 알려진 사실들을 역주입해서 사람을 틀에 가두는 것이다. 이런 경우 영혼의 자유함을 위한 도구로서 기능하기보다는 오히려 영혼을 속박하는 도구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내가 3번 성향인지 아니면 과거에 어느 기간을 이 성향처럼 살았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한 가지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후로부터 내 삶에 주어진 하나의 큰 과제는 3번 성향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는 점이다. 영적 성숙의 과정에서 '알아차림(mindfulness)'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에니어그램을 알기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온 어떤 일에 관해 그 내막을 이해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 도움을 받게해준 경험은 이 도구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한 자연스런 계기가 되었다.  

3번 성향의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는 활기차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부지런하고 유능하고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목표와 성취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가 있고 올인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만큼 실제로 많은 것을 성취하기도 하고 소극적인 성향의 사람들로부터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센스와 언변이 뛰어나므로 타고난 홍보담당자나 팀에 동기부여를 해주는 분위기메이커의 역할을 잘하기도 한다. 특정 영역, 특히 과다한 업무량과 빠른 판단력을 요구하는 현장에서는 이 성향들이 아니면 효율적인 일처리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거기에 더해서 미국식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가치체계 자체가 이 성향이 추구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서 실제로 유명한 경영자나 정치가 등 가운데 이 성향의 사람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 유형이 갖는 장점이 많은 만큼, '빛'이 강할수록 그것이 만들어내는 '어두움'의 그림자도 더욱 깊어진다. 3번 성향의 경우는, 무한하고 충만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때의 삶이 갖는 '가치'가 상실된 빈곳을 인간적인 노력의 산물로 대체하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모든 굴절과 어려움이 야기된다고 에니어그램은 설명한다. 여기서의 대체 가치는 '성취'이다. 하나님도 자신도 다른 사람도 아닌, 성취, 업적이란 '제 3의 자아'가 다른 이들에게 투영되어 나타난 반응으로 자기의 정체성의 근본을 삼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과정보다는 성취의 결과를 중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중시하며 이미지메이킹에 많은 신경을 쓴다. 자신이 속한 사회적 기준이나 요구에 부응하고 인정을 받고자 끊임없는 변신을 이룬다. 좋은 의미에서 adaptive한 이 성향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일관성이 없고 deceiving한 모습이 되기도 한다. 효율을 중시하는 만큼, 일이 성취되는 데 필요한 이상의 수준을 추구하거나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영역으로 혼자만의 깊이를 더해가고자 하지 않는다. 그래서, 뛰어난 언변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의 분량에 비해 실제 이해하는 바는 더 피상적인 경우도 생긴다. 실패를 극도로 회피하는 만큼 성공이 확실해보이는 일에만 뛰어드는 경향이 있고, 명문 학교나 사회의 이름에 기대어 자신의 정체성을 높이고자 하기도 한다. 성취에 방해가 되는 감정을 억누르므로 모든 유형들 가운데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잘 모른다고 알려져있다.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이면에는 자기 감정에 대한 엑세스가 적다는 점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적극적인 성향과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는 면이 결합되면 공격적인 적개심을 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자신이 유능하다는 정체성이 중요한 만큼 자기자랑을 하지 않기도 무척 어려운데, 이미지를 아는 사람이므로 '세련되고' 은근한 방법으로 한다. 그런 가운데 삶은 점차로 '만들어낸 가치'의 이미지와 임팩트에 염두를 둔 '연기'에 가까와져간다... 

대인관계의 영역에서 3번 유형에게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조건없는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케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자신의 목표에 도움이 되고 유용한 사람에게 마음도 따라가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람의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외교에 능하고 어떤 사람과도 원만하게 지내는 편이지만, 솔직하게 깊은 속을 나눌만한 친구는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가 아니라 필요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은 때로 무심코 내뱉는 말이나 농담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자신의 솔직하지 못함을 인식한 사람 가운데서는 더러 지나치리만큼 자신을 오픈하는 경우도 있다. 덜 '세련되어' 보이지만 내면여정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 걸음 앞서간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이룬 성과의 크레딧을 자기에게 돌려버리는 것은 이 성향의 큰 문제이다. 대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므로, 그런 모습을 주위에서 인식해도 스스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성취의 목표를 위해서는 냉혹한 승부사가 되어 주위 사람들이나 가정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역할도 '공동 창조자' 또는 '공동 운영자'에 가까운 면이 있어서 여러가지 장단점을 함께 가져올 수 있다. 

이 성향의 문화가 지배하는 그룹도 개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취동기나 업적은 뛰어나지만 인간미는 부족하기가 쉽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하며, 특히 미국 사회와 오늘날의 한국 사회의 문화, 그 가운데서도 기업문화는 이 유형의 성향과 맞닿아있는 부분이 많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 안에서 '성공'하여 높은 자리에 이른 정치, 기업,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 존경할만한 사람을 찾기가 드문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교회마저도 성공주의, 물질주의적 철학으로 향해가는 것도 이런 문화적 영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3번 유형이야말로 모든 유형들 가운데서 진정한 영적 성장이 가장 힘든 유형이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여러 영성가들로부터 들었다. 그들이 그와 같이 입을 모으는 것은, 첫째, 자기 자신을 은밀하게 속이는 경향이 모든 유형들 가운데서 가장 크기 때문이며, 둘째, 내면과 영혼이 망가진 상황에서도 외면적 삶에서는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드문 유형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런 이슈들을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발견하고 인정하는 과정은 실로 depressing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때로는 '성취하지 못해도 괜찮아' 하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줄 필요도 있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유형에게 주어진 최대의 위로의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첫 백성을 조성하실 때 다름아닌 3번 유형의 archetype인 야곱을 택해서 '이스라엘'을 만드셨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가장 작은 사람과 족속을 택하시고 가장 당신께 어렵고 불리한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는 전능하신 그분의 면모는 야곱을 선택하신 점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그러나, "속이는 자"라는 이름을 가졌던 야곱으로서는, 자신의 거짓자아를 벗고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갈만한 사람으로 다시 빚어지기까지 더 많은 속임을 당하고 평생 "험악한 세월"을 살아야했다. 하지만, 그 결과로, 한때 자신의 안전을 위해 처자를 형 에서의 군사들에게 넘겨버릴 생각도 할 수 있었던 그가, 결국에는 그토록 문제 많던 열두 아들 중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이스라엘의 지파들로 세우는 삶의 경지에 이르는 복을 누리게 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2-23)



참고) 
1. 에니어그램은 '수평적 다양성(즉, 9 가지의 유형)' 뿐만 아니라 '수직적 성숙도(즉, 9 가지의 레벨)'를 제시하는데, 전자는 인간관계의 측면에, 후자는 영적훈련의 측면에 활용할 수 있다.  
2. 오늘날 소개되는 에니어그램의 내용은, 전래된 프레임웍 위에 지난 30년 동안의 심리학적 성과와 일부 영적 영역에 대한 고찰의 결과들을 덧입힌 형태인 것으로 이해된다.  
3. 이론화는 대개 단순화를 의미하므로 이론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 에니어그램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부가적인 이론이나 예외에 관한 이론들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소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4. 에니어그램에 대한 첫 소개는 이재천 목사님, 영적 진단의 도구로서의 적용은 권희순 목사님, 그리고 수직적 성숙도와 현재 진행중인 이슈들에 관해서는 미국 에니어그램 협회 소속 웍샵 인도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한편, 일반적인 이해와 적용은 Riso & Hudson, 영적 측면에 관한 이해와 적용은 Rohr와 Zuercher의 책들이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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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7 18:45

에니어그램

처음엔
환경과 상황에 반응하는 다양한 메카니즘과 각 사람마다 다른 성향에 눈뜨는 과정이 흥미로왔고 insightful 했다. 

내 삶에 나타나는 특징과 반복성에 대하여 깨닫고,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자연스런 반응으로 나타나곤 하던 고유한 '해석 메카니즘'이 어떠한 것인지를 발견하면서
이를 통해 자기성찰을 이루는 거울로 조금이나마 삼을 수 있었던 면은 특별한 유익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제는
각기 다른 유형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에 많은 공통점과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더 amused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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