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1.03.21 워낭이 이야기 (5)
  2. 2010.12.16 [아내의 글] 열매 맺지 못하는 시간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 (3)
  3. 2009.04.12 아내의 기도 (2) (4)
  4. 2009.02.03 아내의 기도 (6)
  5. 2008.11.10 SJ, the urban planner (11)
2011.03.21 20:36

워낭이 이야기

워낭이란 이름은 내가 붙여주었다. 원래 이름은 Cow Belle 이지만 Cow Bell 처럼 읽힐 수도 있는 것에 착안하였다. 워낭이가 처음 우리집으로 오게된 즈음에 보게 된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에 힘입은 바 크다. 나이든 소와 한 평생을 함께한 어느 농촌 노인의 삶과 우정을 잔잔하게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가 마치 나이든 워낭이와 앞으로 쌓아갈 우정을 시사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해준 것 같다.  




워낭이는 열살. 개의 인생으로 치면 50대 후반 중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Muttvill 이라는 유기견 구호 및 입양 기관을 통해서 아내가 입양해오게 되었다. 그동안 어떤 인생(견생?) 역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는 다 알 수 없지만, 나름 쉽지않은 여정을 거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눈도 안좋고 귀에 염증도 있고 피부 앨러지와 복부 종양이 있을 뿐 아니라 척추도 약간 휘어있는 모습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찾아가는 주인이 없는 유기견의 경우 일정 기한이 지나면 죽게 되는 모양인데, 워낭이는 그렇게 예정된 바로 당일날에 구해진 경우라고 한다.

워낭이가 많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강아지이다보니 아내는 마치 어미와 같은 심정으로 강아지를 아끼며 돌보아준다. 하지만, 아내가 워낭이에게 사랑을 흘려보내주는 일을 통해서 거꾸로 스스로 보살펴지는 듯한 효과도 있는 듯 보인다. 아내는 원래 누구를 돌보든 자신의 전부를 주곤 하던 스타일인데, 그동안 일종의 '어두운 밤' 과정을 거치면서 사역의 폭이 축소되는 동안에 충분히 흘려보지 못하고 있던 사랑을 흘려보내게 된 것이 아내의 내면을 위로하고 건강하게 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워낭이는 성품이 매우 좋은 강아지이다. 아직까지 이만큼 착한 강아지를 보지 못한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난 강아지 키우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워낭이의 팬이 되어가는 듯하다. 물론 아내가 귀하게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내게도 점차로 귀해지는 면도 있을 것이다. 워낭이는 조용하고 사람을 잘 따르며, 행동은 어수룩한 데가 많아 코믹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당당한 면도 함께 가지고 있다. 종류명인 '시추'라는 이름의 의미('Big hearted')처럼 넉넉하고 착한 모습에 볼 수록 매력을 느끼게 된다. 어느날 아내가 몸이 좋질 않아서 누워 쉬고있던 오후에 자기도 덩달아 기운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옆에 와서 함께 누워있다가 잠이 들어버린 장면을 찍어두었는데, 요즘 전화기를 킬 때마다 한번씩 보며 웃곤 한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며, 누군가를 사랑할 때 행복한 존재라는 새삼스런 사실을 리마인드 해주는 역할을 요즘 워낭이가 우리 집에서 그의 존재로써 해주고 있는 것 같다. 아내와 또 한 생명체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랑과 교감의 작용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아내의 행복과 강건함과 사랑의 양육의 선기능들을 소망하고 축복하는 마음도 더 깊어진다. 이에 더하여, 더 연약하고 작은자가 실제로는 돕는자의 역할을 훌륭히 해주기도 한다는 사실, 사랑받는 자가 사랑받음을 통해 도리어 섬겨주기도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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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6 07:30

[아내의 글] 열매 맺지 못하는 시간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

아내가 사랑하는 공동체를 위해서 예전에 기고했던 글이다. 
다시 읽어보니 오히려 그때 보았던 것보다 더한 감동과 감사의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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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 ( 1:1-3).

 


웹진 이번 주제 Meditation(묵상) 주제 구절이 시편 1:1-3이라는 소개를 읽는데 속이 아려왔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는 했지만 즐거워하지도 못했고 열매를 맺지도 못했으며 잎사귀는 커녕 나무껍질까지 벗겨진 헐벗었던 시간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비슷한 기억을 떠올리시는 분들과 공감과 격려를 나누고픈 마음에 시간을 정리해 보려한다.

 

나는 89년도 미국에 때까지 좇아온 나의 기준, 사회의 기준의 무의미함을 사무치게 경험했지만 대안을 찾지 못하고 무기력과 무관심 일색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던 95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 받았고, 사랑으로 인해 사랑하며 희망을 갖게 되었다.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직접적인 전달자였고 나의 삶의 변화의 원동력이었으며 내가 나누어 있는 최대의 선물이었다. 자연히 말씀 묵상은 나의 매일의 축이며 등대며 잔치가 되었다.

 

그러나 2000 정도부터인지 말씀이 생명으로, 영감으로, 빛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책에 쓰여있는 선한 , 내가 이해하고 정리해서 전해야 하는 숙제일 뿐이었다. 감동이 없진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선명케 되는 문제의식과 그에 따른 결심들도 잦아졌지만, 어두운 터널에서 희미한 빛으로 발걸음이 옮겨졌다는 확신이 들기까지는 8년이 걸린 같다. 지나온 굴곡을 돌아보며, 그런 시간이 나에게 찾아 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같다.


먼저
, 때까지의 묵상을 통한 열매들이 교만의 씨가 되었다. 내가 말씀의 원리를 파악한 같았고, 원리를 벗어나 있거나 미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정답을 주고 싶었다. "너무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는다"는 시인의 고백과는 달리( 131:1), 스스로 제한해 놓은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오히려 나 한계를 벗어나는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 안달을 부렸다.

 

또한, 묵상이 율법이 되어 버렸다. 간사에게 요청되는 하루 시간 묵상의 지침이 하나님과 이웃을 알아가는 기쁨의 수단이 아니라 미달되어서는 되는 속박의 틀이 되었다. 정해진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조급함과 짜증이 일었고, 정해진 시간을 채워도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자리에 앉아 성경책을 펴놓고 있어도, 단어 문장 적혀있는 이외에 무엇을 짜내야 하는지 깜깜했다. 예를 들어 "주님은 사랑이시다" 말씀을 읽으면, "그래, 주님은 사랑이시지. 근데 이걸 어떻게 깨닫고 설명한단 말이지?" 하는 생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채워갔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묵상의 근원과 주체를 분명히 주셨고, 그로부터 내가 얼마나 멀어져 가고 있었는지를 지적해 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하지 않습니다. 의롭다고 하여 주시는 것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2:20-21)" 어느 말씀을 읽는 가운데, 자아의 지식과 성취욕과 강박관념에서 비롯되는 '묵상' 율법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만든다는 사실에, 새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충격 이후에도 정상 궤도에 들어가기까지는 한참이 걸렸고, 기간을 다음 가지 몸부림으로 간신히 채워갈 있었다.

 

- 빳데루 -

어떤 분이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을 "빳데루" 비교하셨다. 레슬링 시합에서 반칙을 선수가 바닥에 엎드려서 종이 때까지 견디면 다음 회를 새롭게 시작할 있게 된다는 것이다. 빳데루의 관건은, 화려한 공격도 적절한 방어도 아니고 그저 납작 엎드려 버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교만과 율법의 반칙으로 인해 어떤 방식의 묵상도 통하지 않았을 어떻게든 하나님께 붙어 있었던 것이, 다음 장을 있는 토대가 되어 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붙어 있는 것인가" 하고 질문한다면, 내가 의식할 있는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없을 같다.

 

- 기도 -

빳데루의 표현으로, 전과는 다른 형태의 기도가 잦아졌다. 전에는 의식적으로 사람과 상황을 말씀에 비추며 부탁 드리는 의지적인 기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성과 지각을 통한 말씀과의 교감이 막히자, 비슷한 수단을 사용한 기도도 어려워졌고, 따라서 말이나 의식상에서 표현되지 않지만 혼미하고 어지러운 마음 자체를 하나님께 드릴 밖에 없게 되었다. 기도라고 명명하기도 민망한 그런 시간을 보내며 구체적인 중보기도가 부족하다는 자책감도 들었지만, 당시로서는 바닥에 뻗어서 하나님께 붙어있게 땀방울이었다.

 

- 돌아보기 -

전까지 설정한 하나님과의 관계의 공식이 들어맞지 않게 되면서, 자신을 총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비추어 보게 되었다. 우연치 않은 여러 기회들을 통해 나의 과거, 성향, 동기들을 돌아보았으며, 나의 인생에 깊이 간섭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을 막고 있는 매듭들을 보게 되었다.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자, 다른 사람들을 향한 관심과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사람을 섬세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초월하심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잣대에서 조금씩 자유로와지게 되었다.

 

모든 과정을 거쳐, 이제는 묵상의 운행이 정지된 듯한 터널을 지난 것이 아닌가 가늠하며 미래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두운 기간의 많은 부분이 현재의 길과 여전히 얽혀서 구체적으로 어디로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도 하다. 하지만, 터널의 이전보다 지금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이전에 상상했던 보다, 그리고 바랄 있던 것보다 축복의 열매였음을 분명히 고백할 있다. 오늘도 희미하게 떠오르는 말씀으로 마음과 소통하시며 세계를 붙들고 계시는 기이함이 놀라와서 다시 말씀으로 돌아갈 밖에 없다. 터널의 안도 바깥도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 있기에, 인생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인도해가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사랑을 드린다.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며, 밤도 대낮처럼 밝으니, 주님 앞에서는 어둠과 빛이 같습니다. ( 139:12)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선생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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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2 08:30

아내의 기도 (2)

>> 의롭게 사는 사람,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권세를 부려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는 일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 살인자의 음모에 귀를 막는 사람, 악을 꾀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산다…  (사 33:15-16)


제가 일을 하면서 특히 신경써야 할 것은, 얼마나 주어진 일을 탁월하게 처리하는가 보다도, 얼마나 정직하고 깨끗하며 공의롭게 일에 임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친구들에게도 제가 자주 강조했던 부분인데, 저 자신도 자꾸 후자보다는 전자를 탐내게 되네요…

하나님,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관심을 두시는 사람의 묘사가 얼마나 멋진지요.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거룩함에서 나옴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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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뜻 가운데 선하게 이루시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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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3 12:30

아내의 기도

하나님의 도시가 우리 안에 세워지길
내가 그 도시의 길바닥이 되길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그 길바닥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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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뜻 가운데 선하게 이루시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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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0 07:09

SJ, the urban planner

SJ가 샌프란시스코 정부에서 교통계획을 담당하는 '도시계획가'로 일을 시작한지 이제 만 두 주가 되었다.

삶-사역-직업이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는 '같은 일'이 될 수 있는 경우란 아주 소수의 선택된 전공 분야
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인데, 아내의 분야가 그런 분야의 하나인 것 같다. The underprivileged 분들의
이웃이 되고, 그들을 복음으로 섬기며, 그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어떤 일을 직업적 차원에서도 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나같이 기계나 만지곤 하는 사람들로선 감히 언감생심 꿈꾸어보기 힘든 축복(?)이다. 

정작 씨티 안에 살 때에는 한 시간 이상 거리인 샌호제로 다니곤 하던 그녀가, 이제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로 
이사오고나니까 씨티 안에서 덜컥 일을 시작해버리는 저 아이러니.. 더우기 오피스는 예전에 살던 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그렇지만 매일 기차타는 일도 교통 현장 경험의 일환이라며 밝은 얼굴로 받아들이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지난 주에 있었던 선거 항목에, 교통 정책 수립/실행에 어드바이저가 필요한지 여부를 묻는 법안이 있었단다.
만일 그 법안이 거부되었다면 입사 후 얼마 안되어 바로 실직될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을 그녀가 말하자면
시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일할 기회를 다시 얻은 셈이다. 
도시계획가 그대는 시민들의 참다운 섬김이가 될지어다~!

오늘 아침 6시 15분. 한 시간에 한 번 다니는 기차 도착시간 10분 전이다.  5시부터 아침을 준비하신 장모님, 
어젯밤에 점심 도시락을 미리 싸놓은 우리 식구 혜진 자매, 그리고 커피 담당 남편의 합작품으로 채워진
든든한 먹거리 가방 하나 집어들고서 집을 나서는 그녀. 
늦으면 큰일!  길 비켜랏, 신참 도시계획가 나가신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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