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에 해당되는 글 55건

  1. 2009.07.22 용서에 관하여 (7)
  2. 2009.06.25 하나님의 영광 (6)
  3. 2009.06.01 자유함에 관하여
  4. 2009.03.24 [photo] Life that has never been unloved (5)
  5. 2009.03.24 [photo] Life that has never been unloved (4)
  6. 2009.03.23 [photo] Life that has never been unloved (3) (8)
  7. 2009.03.23 [photo] Life that has never been unloved (2)
  8. 2009.03.22 [photo] Life that has never been unloved (1)
  9. 2009.02.27 침묵으로 드리는 기도 (2) (2)
  10. 2009.02.23 맛있는 스테이크의 비결 (4)
  11. 2009.02.20 그들의 영이 안다! (2)
  12. 2009.01.04 새해를 맞으며
2009.07.22 19:30

용서에 관하여

T. Keating says...

"용서란, 모든이와 평화에 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이를 내 마음 안에 받아들이고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내 자신의 것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열림'은 너무나 서로에게 가까운 것이기에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게 되며, 따라서 영적 여정은
개인적 수련에 머물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영적 여정을 시작할 때마다, 모든 인류와, 더 나아가서는 창조세계까지도 그 여정을
우리와 함께 나누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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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say...

용서는 현재가 더 이상 과거에 속한 어떤 것들에 의해 지배당할 필요가 없음을 말하는 '자유함'의 선언이다.
용서는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내 자신의 의도를 내어드리는 '현재진행형' 프로세스이다.
용서는 그 또한 나와 같은 연약한 죄인이라는 사실 위에 그분의 긍휼함으로 함께 덧입는 '공동체성'의 회복이다.
용서는 잃어버린 샬롬의 회복이며 그분의 부르심대로 걸을 수 있도록 방해물을 제거하는 '영적 초기화' 작업이다.  

(a review inspired by luckhee'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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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5 17:51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

매우 익숙하나,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만치 모호하게(?)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여러 버전의 정의들 가운데서, 2세기 리용의 주교로서 영지주의에 맞서기도 했던 
이레네우스의 표현이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다. 

"The glory of God is man fully alive."  
"하나님의 영광은 완전히 살아있는 사람이다" 

완전한 살아있음 - 온전하고 영존하는 생명 - 그 안에서 샘솟는 한 동전의 두 면같은 '평화'와 '용기'...

그것이 모든 묶인 것과 제한된 것들로부터 자유케됨을 주시기 기뻐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의 영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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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8:25

자유함에 관하여

자유함은 구원이다.
구원이란 말의 의미 안에는 인간 실존의 모든 제한과 갇힘으로부터의 해방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만드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죄도 아픔도 눈물도 죽음도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자유함의 속성을 가진 구원의 완전한 모습인 것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구원하시는 그분의 속성을 배우며 체험케하는 은혜의 시간들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제한됨의 결과로 나타나는 '고통'은 제한됨이 없으신 그분의 속성을 직시하게 만드는 특별한 은혜의 장치이다.

병든 몸으로부터, 힘든 인간 관계로부터,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열리지 않는 앞길로부터, 풀리지 않는 어려움으로부터, 채워지지 않는 갈망으로부터, 이해되지 않는 생각의 한계로부터, 사랑없는 마음의 한계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라는 감옥'으로부터 자유케됨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매 순간 그분의 구원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낀다.   

그런 만큼, 자유함은 목말라할 만한 가치이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귀중한 선물이다. 

그러나, 자유함이 귀중한 '과정'일지언정 그 자체가 궁극의 '목표'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또한 깨닫는다. 자유함만을 위한 자유함은 그 자체로 '제한된' 자유함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의 자유함은 어떤 것이었는가?

하나님의 충만하신 성품은 자유함이란 말조차 필요없을 정도로 이미 완전히 자유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자유함의 속성은 스스로의 자유함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함이고 자유의지였다. 사랑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비울 수 있는 자유함이며, 섬김을 위하여 성육신할 수 있는 자유함이며, 다른이의 자유함을 위해 자신을 속박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함이었다. 곧 '자유함으로부터도 자유할 수 있는' 그런 자유함이었다.

나 자신의 '거짓 자아'라는 가장 '자유롭지 못한' 실존을 대면하고 나서야 자유함의 그 다음 단면을 가슴으로 엿보는 access를 얻는다는 사실에 경이로움과 humbled됨을 느낀다. 오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빌립보서 2:5-11의 'Christ Hymn'을 다시금 묵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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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4 21:58

[photo] Life that has never been unloved (5)



helpless longing, gratefulness, antici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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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4 21:34

[photo] Life that has never been unloved (4)



lasting fulfillment, confidence, celeb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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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3 22:14

[photo] Life that has never been unloved (3)



reaching out, connectedness, comm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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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3 08:11

[photo] Life that has never been unloved (2)



sweet rain, providence, des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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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2 09:06

[photo] Life that has never been unloved (1)



watching over, warmth, att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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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7 07:04

침묵으로 드리는 기도 (2)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편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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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06:30

맛있는 스테이크의 비결

보기에는 가장 간단해보이는 스테이크 만들기가 나는 왜이리 어려운지...

그래서,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비법'이 있을까 싶어서 찾아보았다
과연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resting' 과정이었다.

'Resting'은 조리 후 serving 전에 몇 분 동안을 잠시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조리 직후엔 육즙이 가운데로 몰리기 때문에 고기가 뻑뻑하고 맛이 없기 쉬운데, 몇 분간의
resting은 이 육즙이 스테이크 전체로 퍼져 맛이 살아나는 것을 도와준다고 한다. 
이것이 고기의 맛을 달리하는 스테이크 굽기의 마지막 스텝에서의 비결이란다.    
  
성경 말씀은 영의 양식이다.
잘 관찰하고 성실히, 겸손히 해석해낸 말씀은 과연 값비싼 스테이크에 견줄 만하다.
문제는, 말씀으로 인한 깨달음이 오기 무섭게 너무 일찍 자리를 뜬다는 것이다.

이 때에도 마찬가지로 resting은 큰 도움을 준다. 
침묵으로 하는 기도와 함께하는 말씀 묵상과 그렇지 않은 말씀 묵상 사이에는 꽤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종종 느끼곤 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실 때, 이제 성경 말씀이 나를 읽어내려가려
하기 시작할 때에도, 조금 더 '머물러'있는 것이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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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18:30

그들의 영이 안다!

다른 이와 만나고 말씀을 나누며 삶을 나누는 현장에 설 때마다 문득문득 '무서운'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의 영이 안다'는 생각이 리마인드될 때이다. 
 
일례로, 코스타와 같은 모임이 끝나고 나면 수많은 참석자들로부터 자신 또는 그 주변 누군가의 인생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고 터취되었는지에 관해 직간접적인 고백을 수없이 듣게 되는데,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그러한 일의 통로가 되어주었던 누군가의 이름은 많은 경우 소수의 특정 이름들이 계속 반복되어 거론되곤 한다는 점이다. (물론 소수에게 정성껏 진실하게 집중하였으나 끝내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이야기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비록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참석자들 자신은 나이가 어리거나 신앙적으로 초보 단계에 머물러있을 수 있다. 아직 그들의 세계관이나 인격이 많이 변화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하나님과 깊이있게 교제하는 법에 대해 미처 눈뜨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잘못된 것들에 마음이 기울고 환호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존적이고 존재적인 인생의 목마름 앞에 진솔하게 서있을 때에만은, 무엇이 진짜인지, 또 누가 진짜인지를 그들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들의 이성과 분별력으로 판단하고 표현할 수 없을 때조차도 그들의 '영'은 알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그 표현할 수 없는 '생명력'에 관해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이다.  

멘토에게 물었다. "사역자로서의 삶을 잘 살아내는 데에 꼭 필요한 덕목은 무엇입니까?" 그가 주신 대답은 예상치 못한, 그러나 매우 인사이트풀한 것이었다. "그것은 장인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자가 하나님과 더불어 말하려하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진 자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려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더라도 하나님과 함께하려하지 않는다. 아주 멀리까지 잘못나간 경우엔, 하나님을 위하여 시작했던 일이 자기 자신의 영적 커리어 관리로 전락하게 되기도 한다. 하나님이 도구화 되어가는 삶으로부터 큰 생명력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긴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의 시선이 기준이 되기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기준이 되어 거기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삶의 모습은 '피상성'이다. 만남과 예배와 교회 모임과 각양 활동, 헌신 및 사역들이 '외형적'으로 넘쳐나지만 정작 그 '안에' 삶을 변화케하는 생명의 힘이 깃들지는 못하는 것이다. 결코 시작할 때의 의도가 악하거나 잘못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딱히 하나님 편에 서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어정쩡한 삶의 모습. 그것이 피상적인 삶의 아픈 모습이며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가 '목마름의 시대'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이 시대가 그 어떤 시대 못지않은 '피상성의 시대'인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시장에서 충분히 팔릴만한 백 개의 도자기를 구워놓고도 장인으로서의 양심과 자신에게 정직한 기준 때문에 95개나 손수 깨버리는 '장인정신'이 피상성을 극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삼아질 만할 것이다.  

그럼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방향성에 관한 이야기는 도대체 누구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인가? 이제 각자가 그런 인사이트를 알려줄 선생과 멘토를 찾아나서야만 하는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런 류의 가르침은 대개 약한 자가, 낮은 자가, 가난한 자가, 어린 자가, 배우는 자가, 피인도자가 강한자에게, 높은 자에게, 부유한 자에게, 나이든 자에게, 선생에게, 지도자에게 훨씬 잘, 그리고 자주 가르쳐주는 일들인 것같아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나아가 귀기울이고 그들로부터 배워야만 할 것이다. 이런 컨텍스트에서라면 세상의 눈으로 보는 이른바 '베풂'은 더이상 내가 '가진' 무언가로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다. 가장 귀한 것들을 '가르쳐주는' 그들에게 은혜갚는 마음으로 하는 '섬김'이 된다. 
   
지금 조국의 백성들은 고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 앞에서, 이 땅의 종교인들에게, 리더들에게, 또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들이 가진 목마름은 어떤 것인지, 그들은 어떤 사람을 기다리는지에 관해 조용히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들이 무언으로 전하는 이 큰 울림의 메세지를 진지하게, 겸허하게, 아프게, 그러나 소망 가운데 오늘 귀기울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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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4 21:51

새해를 맞으며

새해 첫날을 맞으며 새해 resolution을 정리해 보았다.  

(why?)  loving God / loving neighbors / aligned self
(what?)  '사랑의 사람'이 되는 첫 걸음을 내딛는 데에 꼭 필요한 알아야할 것들을 배우기
(how?)  주로 인하여 / 주를 위하여 / 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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