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1 14:09

나는 왜 재즈를 좋아하는가?

1. 흑인들의 삶의 무게가 실린 음악이다.
- 억압받고 고단하고 가난했던 흑인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있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정서가 절대자를 바라보게 하는 마음과 결합되어 나온 가스펠을 기반으로 하여, 블루스와 재즈가 발전되었다. (블루스 또한 재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재즈에서 관악기들이 주류를 이루는 이유도 뉴올리언스에 해군기지가 폐쇄되면서 버려진 군악대 악기를 흑인들이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즈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50~60년대에 녹음된 Prestige, Blue Note 레이블의 명반들 대부분이 그저 불러주는 곳으로 달려가는 세션맨들이 한두 번 정도의 리허설만 허락받은 상황에서 만들어낸 것들일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는 사람의 역량에 의존하는 의존도가 클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표현하는 음악에도 그래야만 하는 어떤 필연적인 이유들이 담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만큼 가식적이지 않은 인간의 솔직담백한 아우성과 풋내가 묻어나는 진솔한 음악이기가 쉬웠다. (그런 면에서, 재즈의 현대적 이미지가 중산층 이상이 즐기는 칵테일바/와인바 분위기의 음악으로 자리잡히게 된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다.)

2. 함께하는 음악이다. 
- 재즈는 아주 드물게 독주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앙상블 음악이다. '상호 의존적'인 즉흥 음악인 만큼 밴드의 모든 구성원들이 거의 '동등하게' 중요하며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강한 신뢰'를 가져야 마음놓고 즉흥 연주를 펼쳐가는 것이 가능했다. 솔로도 돌아가면서 하고, 팝이나 록 등 다른 장르에 비해 베이스, 드럼 주자도 밴드의 리더가 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유명한 밴드 리더들 가운데, 아트 블레이키와 맥스 로취는 드럼 주자, 찰스 밍거스와 데이브 홀랜드는 베이스 주자들이다. Serving하는 악기/연주자와 served되는 악기/연주자가 따로 존재하는 음악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마일스 데이비스의 제 2기 quintet의 경우, '리드악기'(관악기) 주자들은 같은 음만 계속 연주하면서 철저히 곡의 백업을 맡고, 통상적으로 '리듬악기'인 베이스와 드럼이 곡의 진행과 솔로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 식의 신자유주의적 경향으로부터 가장 역행하는 음악 장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소편성 밴드를 중심으로한 50~60년대 류의 재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인간 의식을 반영한 음악이다.
- 왕년의 소프라노 색소폰 주자 시드니 베셋에 의하면, 즉흥연주는 흑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감정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백인성을 탈피해서 흑인성의 존엄함을 음악적으로 실현하고자 한 노력이 발견된 방식과 예는 허다하다. 백인 구매자들이 좋아하는 멜로디와 춤곡 위주의 상업적인 음악에 반발하여 예술성을 추구하고 화음과 박자를 세분화하여 그 변형의 지경을 끌어올린 것(찰리 파커의 bebop), 아프리카의 poly-rhythmic 패턴으로 백인/서구의 리듬 구조의 틀을 벗어나고자 한 것(아트 블레이키의 hard bop), 모드를 사용하여 백인/서구의 화성 구조의 틀을 벗어나고자 한 것(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연주자의 즉흥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박자와 화성의 제한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탈피하고자 한 것(오넷 콜맨 등의 free jazz), 존 콜트레인이 상투적인 스탠다드 멜로디들을 해체하여 재구축하고 구도자적인 예술성을 추구했던 것("Giant steps," "My favorite things," "A love supreme"), 등... (이런 면에선, 현대에 유행하는 smooth jazz류의 음악들은 상대적으로 거의 '아무생각 없는' 음악인 것처럼 들린다...)  흔히 재즈의 코드는 '자유'라고들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 '자유 실험'이 어떻게 성공하였고 어디서 왜 한계에 봉착하거나 실패하였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음악에의 적용뿐만 아니라 인간의 추구와 반응과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삶의 모습에 관해서도 많은 insight을 제공한다.    

4. 열린 음악이다.
- 재즈의 본질은 애초의 태동기 때부터 퓨전이었다. 아프로-아메리칸의 리듬감과 웨스턴 음악의 화성적 틀이 결합하여 근간을 이룬 음악으로 발전한 것이다. 초기 발전 과정에서 흑인과 유럽/프랑스인의 혼혈인 크레올(예: 듀크 엘링턴)들이 이 음악을 주도한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즈는 이미 이룬 것에 타협하지 않고 'Next!'를 추구하는 뮤지션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형 및 발전을 이루어왔으며, 다른 장르로부터의 학습 또는 다른 장르와의 결합이 그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드뷔시 등 인상파 음악가들이나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등 현대음악가들뿐만 아니라, 쿠바, 브라질, 인도, 동구 유렵의 음악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90 년대 이후 음악계의 특징 중 하나로 나타난 '월드 뮤직'의 전형을 모드 음악, 보사노바 등의 형태로 수십 년 전에 이미 제시하였다. 이는, 미국 문화의 두드러진 특성이자 그들이 지난 세기 끊임없이 생동감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던 면들과도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면에 관해서도, 재즈를 가리켜 "the American music"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당히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5. 나름대로 예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음악이다.
-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뮤지션들이 화성의 한계를 추구하고 리듬의 한계를 추구하였으며 지속적으로 실험하였고 음악에 헌신했다. (그렇기에 클래식을 이해하려면 작곡가들을 짚어가야 하고, 재즈를 이해하려면 연주자들을 짚어가야 한다.) 자기 장르 안에서 음악적 한계치에 이르도록 예술성을 추구한 음악의 예는 사실 그리 많지는 않다. 이것이 내가 그 큰 스타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클래식과 재즈를 동시에 좋아하는 이유이다. 사실 이 두 음악에 헌신했던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영역에 깊은 관심을 보인 이가 많았다. 쿨 재즈나 빌 에반스 식의 피아노 트리오는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깊이 받은 것이다. 한편, 스트라빈스키나 바르톡같은 이는 재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당대의 지휘자 토스카니니, 피아니스트 호로비츠 등이 살고있던 뉴욕은 또한 재즈의 본거지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할렘에서 태어난 가난한 맹인으로서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워 자기 스타일의 음악을 개척한 아트 테이텀 같은 이가 연주하는 클럽을 즐겨찾고 칭송한 팬들로도 알려져있다. 그러나, 자유와 음악성을 추구하고 그 스트레스로 인한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많은 뮤지션들이 마약중독에 빠지거나 자신을 망친 사례가 적지않았던 것은 또한 인간의 가능성에 수반하는 한계성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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