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07 07:15

에니어그램 컨퍼런스

이 목사님으로부터 처음 에니어그램을 배운지 2년 정도가 되었을 무렵에 첫 웍샵을 시도해본 적이 있었다. 멤버들의 성장에 꼭 필요한 좋은 도움이 될거라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에 열심히 준비해서 몇 주에 걸쳐 진행을 했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온갖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했는지 모르겠으나, 실질적인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고자 한 원래의 취지에 비추었을 때에는 완전한 실패였다. 그 원인은 내용이나 진행 방식에 있었기보다는 '해석의 틀'의 부족함에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를 알지 못했다. 

이후에 좀 더 공부하고 자신에게 더 적용해보고 아내와 토론을 지속하면서, '해석의 틀'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적용에 영향이 크다는 사실에 눈뜨게 되었다. 마치 개별 성경에 대한 지식보다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관한 '신학적 틀'의 여부가 적용상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점과 비슷한 경우였다. 

에니어그램이 유용한 용도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된다. 

1. 나와 다른 상대방의 성향을 이해하므로써 관계 회복이나 증진을 이루는 쪽으로 도움을 얻는 것
2. 자신에게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행동과 반응에 대한 숨겨진 동기를 발견하므로써 영적 성장의 발판을 찾는 것

여기서, 전자가 '수평적' 차이에 관한 이야기라면, 후자는 '수직적' 발전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수평적' 접근의 경우엔 이론화에 바탕을 둔 단순화가 도움이 된다. 나와 다른 상대방의 성향을 단순하게 정리할수록 쉽게 이해하는 데에 용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수직적'인 접근의 경우 모든 발전 가능성에 대해 문을 열어놓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어떤 특정한 '유형'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역동적일 뿐만 아니라, 에니어그램 이론 또한 사람이 성장할 때 유형간의 차이가 점점 사라진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웍샵에서 내가 한 실수도 '영적 성장'을 위한 일에 '수평적'인 접근을 이룬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상자' 안에 가두는 것이 되고 말았는데, 이런 경우 에니어그램과 같은 typology는 '자유함'의 도구가 아니라 '억압'의 도구가 되어버려서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기가 쉬웠다.     

'영적 성장'을 위한 방면에 '수직적'으로 접근을 했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이는 에니어그램의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한데, 즉 '진단'은 할 수 있으되 '치료'는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숨겨진 면면들을 알고난 후에 갖게되는 "So what?"이라는 질문이야말로 이 도구에 대한 결정적인 질문이자 막다른 골목이 되고 만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고, 오로지 절대자께 의존해서 기도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http://www.internationalenneagram.org/conferences_calendar/index.html

이런 면들에 대해, 금년에 마침 로컬에서 있은 에니어그램 컨퍼런스는 어느 정도 확인과 위로가 되어주었다. 에니어그램의 현대적 보급의 창시자들이라 할만한 사람들이 비슷한 길로 방향 전환을 하고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뚜렷한 흐름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통합적'인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영성적' 접근으로 breakthrough의 길을 찾는 것이었다. '통합적'이라 함은 한 타입으로 나누는 데에 치중하기보다 모든 유형의 요소들을 함께 발견하여 조화시키는 접근을 의미하며, '영성적'이라 함은 수도원적 전통의 영성훈련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접근들에는 근본적인 한계도 있었다. 비즈니스 환경에의 적용을 용이하게 하기위한 취지의 '통합적' 접근은 그 자체로 영적성장 영역에 적용하기엔 아무래도 무리인 측면이 많았고, 그들이 말하는 '영성적'이란 말은 하나님을 제외시킨 일반적 영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임 만큼 궁극적으로 '앙꼬 빠진 찐방'처럼 어설픈 것이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눅 16:8)고 하신 말씀이 머릿 속에 윙윙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믿지않는 저들도 어설플지언정 방향 하나는 기가막히게 잡아내는데, 나를 포함한 우리 기독교 커뮤니티는 피상성에 깊이를 더하고 막힌 곳을 돌파하는 길을 찾는 데에 왜 이리 발길이 더디고 마음은 닫혀있는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영적 성장을 돕기위한 또 하나의 도구로서의 효용성에 관하여 시작된 생각은, 보다 큰 컨텍스트 안에서 '오늘날 왜 에니어그램이 필요하고 이런 방식의 영성훈련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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