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27 22:28

[music]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명연주?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여파로 베토벤 9번 교향곡 연주 추천에 관한 질문을 몇 번 받았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새롭게 할 말도 없고, 솔직히 그동안 들어서 안좋은 연주도 별로 없었지만, 요청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는 가져야하는 바, CD들을 다시 꺼내 들어보기도 하고 인근 도서관에 가서 좀 더 빌려다가 들어보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았던 몇 연주들을 한번 리스트업해본다. (이 바닥의 진정한 전문가들께는 송구...)  
 
1. 푸르트뱅글러(Furtwangler)
 -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축제극장 오케스트라 (1951, 라이브, EMI), 또는
 - 루체른 페스티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54, 라이브, Tahra)

요즈음엔 푸르트뱅글러 식의 해석이 예전과 같은 수준의 인정과 환영을 받지만은 않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이 곡에 관한한 그가 남긴 장대한 족적을 무시하고 지나갈 순 없을 것이다. 이 연주들을 두고서는 '압도적인 감동'이라고 환호하는 사람들과 '지나친 주관주의'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중후하고 로맨틱한 독일적 해석의 대표적 모델이며, '죽은 악보에 숨결을 불어넣는' 해석의 중요성 및 관객과의 호흡에 기인한 즉흥성을 강조한다. 비판적인 요소는 대개 자의적이라 할만큼 주관적인(idiosyncratic) 해석과 그때그때 달라지기 쉬운(spontaneous) 템포 때문일 것이나, Gramophone 매거진의 한 평론가의 표현처럼 곡 전반에 "massive current"가 흐른다고 할 정도의 자기 완성도와 설득력있는 장대한 드라마가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클래식에 갓 입문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 합창 교향곡 자체에 매료되게 만들어준 연주는 바로 푸르트뱅글러의 51년 버전이었다. 그런만큼, 이분의 연주에 깃든 열정과 완벽한 자기 음악으로의 소화는 마치 이 곡 연주에 있어서의 'archetype' 인 것처럼 느끼게되는 경향이 개인적으론 있는 편이다. 

2. 토스카니니(Toscanini)
 -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1952, 스튜디오, RCA)

토스카니니의 해석은 푸르트뱅글러와는 다른 축을 형성한다. 푸르트뱅글러가 자신이 재해석한 베토벤의 전형을 만들어냈다면 토스카니니는 '나는 죽고 내 음악 안에 작곡자가 산' 연주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래서, 솔티는 "아마 정답은 이 두 축 사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는 말로 두 사람의 존재감을 모두 인정했다. 푸르트뱅글러가 이 곡을 자신의 음악으로 재창조하려 했다면, 토스카니니는 이와 정반대의 입장에서 오로지 작곡자의 의도에 충실한 'fat-free'식 어프로취를 취했다. (푸르트뱅글러가 hermeneutic 했다면 토스카니니는 exegetic 했다고나 할까?) 템포 역시 베토벤이 지정한 속도에 따랐다고 하는 만큼, 다른 연주들에 비하면 꽤 빠른 편이다. 완벽주의자, 순수주의자로 알려진 그의 성향을 다소 느낄 수 있으며, 비록 푸르트뱅글러와는 다른 방향으로부터의 접근이긴 하지만 열정, 집중력, 그리고 다이내믹함이란 측면에서는 서로 통하는 부분도 있다. 아마도 후대의 지휘자들에게 끼친 영향으로만 볼 땐 푸르트뱅글러 이상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해석은 카라얀을 비롯한 많은 근현대 연주자들과, 더 나아가서는 최근 20여 년간 한 흐름을 만든 정격연주(authentic/periodic performance) 전통과도 맥이 닿아있는 'prototype' 이라 할만하기 때문이다. 

3. 텐슈테트(Tennstedt) 
-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85, 라이브, BBC Legend)

텐슈테트는 구 동독 출신의 지휘자인 만큼 그의 대가적 면모에 비해 카라얀, 번스타인 같은 사람들보다는 훨씬 세간에 덜 알려져있는 편이다. 주로 말러 스페셜리스트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우연찮게 도서관에서 그의 합창 교향곡 연주를 빌려서 듣고는 예상치 못한 반가운 충격을 받게 되었다. '숨은 명연'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 연주에서 푸르트뱅글러의 드라마와 토스카니니의 열정 및 집중력을 고루고루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두 축들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바로 그 '정답'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런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토스카니니보다는 푸르트뱅글러 쪽에 더 가깝긴 하지만..) 사실, 위의 두 노장들의 연주를 실제로 감상하며 '즐길' 수 있는지의 여부는 그들의 연주가 훌륭하다는 점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반세기 전의 빈약한 모노 사운드가 귀에 전혀 거슬리지 않는 사람들만이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용한 거장' 텐슈테트가 LPO를 은퇴하기 2 년전에 한 이 말년의 연주는, 열정과 서정성의 조화 및 오케스트라와의 교감도 뛰어나지만, 거기에 더해 음질도 좋고 라이브의 열기까지 더해져 있어서, 처음 이 곡을 접하는 이에게 꼭 한 연주만 권하고자 하는 경우에 추천할만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연주가 끝났을 때 우뢰와 같은 박수를 치는 관중들이 부러워지게 만드는 실황연주이다.    

4. 카라얀(Karajan)
 - 베를린 필 (1962 & 1977, 스튜디오, DG)

카라얀이 남긴 베토벤 교향곡의 여러 연주 음반들 가운데서 대체적으로 위의 두 연주를 제일 쳐주는 모양인데, 대체로 3악장 아다지오는 77년 연주가 더 아다지오스럽고, 4악장의 보컬 파트는 62년 연주가 한수 위라는 평가이다. 개인적인 선택으론, 생동감과 긴장감이 살아있고, 베를린 필의 현악 파트가 마치 빈 필처럼 들리며, 4악장의 솔로와 합창단이 뛰어난 62년 버전을 좋아한다. 카라얀은 유명세 만큼이나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대표적인 지휘자인데, 그의 해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유려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인공적인' 그의 스타일이 62년도 연주에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디. 뿐만 아니라, 매너리즘이 아직 보이지않는 가운데 오히려 신선한 측면들을 볼 수 있는 점도 62년 버전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푸르트뱅글러나 토스카니니 시대에 비하면 불과 10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그 사이에 이루어진 스테레오 녹음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놀라운 수준이다. 무난하고 구하기 쉬운 연주이다. 

5. 반트(Wand)
 -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 (1982, 스튜디오, RCA)

독일 후기 낭만파의 음악, 특히 브루크너의 권위자로 알려진 또 다른 '조용한 거장' 반트의, 역시 만년에 이루어진 이 연주도 독일적 해석의 계보 안에서 현대적 명연주의 반열에 오를만한 연주이다. 반트는 여러 레파토리를 많이 섭렵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요 레파토리를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연주, 녹음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하는데, 이 연주 만큼은 너무 만족스러워서 다시 이 곡을 녹음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반트와의 개인적인 인연으로는, 마음에 꼭 드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연주를 아직 찾지못하고 있었을 때 그의 베를린 필과의 연주가 이 목마름을 완전히 해소시켜주었던 일이 있었다. 중후함과 섬세함을 조화시키는 그의 장기가 잘 발휘된 경우였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그의 시그니처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이 연주는 퀄리티 측면 외에도, 상당히 저렴한 가격($5~7)에 구입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6. 벤스케(Vanska) 
 -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2006, 스튜디오, BIS)

북구 출신답게 원래 시벨리우스 등의 음악으로 이름을 날렸던 벤스케가 미국으로 이주해서 무명의(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미네소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화제를 불러일으킨 베토벤 교향곡 싸이클의 일부이다. 마치 토스카니니 스타일의 현대판 버전인 듯한 느낌도 들며, 3악장의 메마른 느낌을 참을 수 없게 만들곤 하는 이전 정격연주들에 비해서는 한층 풍성한 느낌이다. 그러나, 명료하면서도 리듬감과 질감이 뛰어난 그의 연주의 진가는 역시 빠른 악장들에서 더 잘 나타난다. Jonathan Del Mar라는 음악학자가 십여 년간 옛날 악보를 대대적으로 수정하여 97년에 발표한 Barenreiter 에디션의 신 악보를 기초로 연주된 만큼, 합창 교향곡의 현대적 해석의 현주소가 궁금한 사람에겐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진만을 시작으로, 아바도, 노링턴, 래틀, 맥케라스 등 현대의 많은 연주자들이 이 악보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http://www.baerenreiter.com/html/lvb/index.html 참조)  한편, SACD 겸용인 이 씨디는 음질이 매우 중요한 이슈인 audiophile들에게서 선호될만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 외, 합창 교향곡의 매력에 처음으로, 또는 다시금 빠져들게 할만한 영상물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역시 '베토벤 바이러스'이다. 전체 드라마의 중간 쯤에 나오는 두 번째 연주회에서 이 곡이 연주되는데, 이 곡에 대한 관심을 새로와지게 만드는 '비쥬얼의 힘'이 있는 것 같다. 특별히, 인생의 스토리들이 음악적 내러티브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는 설정이 나름 음악적 인사이트를 강화시켜주는 면이 있었다.

두번째는, Ed Harris가 베토벤으로 나오는 'Copying Beethoven'이다. 스토리 자체야 픽션이지만, 음악을 중심축으로 해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감사한 마음마저 들게 한다. 여기서도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합창 교향곡이 주요 부분 발췌의 형태로 전곡 연주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음악의 각 부분부분에서 등장인물들이 서로 교감하는 모습이 이 곡에 대한 새로운 감흥을 불러 일으켜준다.  


(revised, 3/29, 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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